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gjeje Jul 12. 2024

창가에 비의 계절이 머물 때

매일 우리 눈앞에는 수 많은 풍경들이 알게 모르게 스쳐 사라집니다.

그중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의 풍경을 재현하는 듯 되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같은 모습으로 어느새 찾아와 스며들고 있는 계절의 순환이 그렇습니다. 

     

밤새 폭우를 내리느라 시달린 하늘이 짙은 회색빛 구름서클을 한 채 비를 쏟으며 아침 창가에 있습니다. 아직 사회 초년생 딸아이가 피곤한 속내를 드러내는 눈그늘 (다크서클) 처럼 무겁고 칙칙한 모습입니다.     

굳게 닫힌 베란다 창살을 흔드는 바람살이 한층 더 거센 비를 몰고 올 것 같아 창문을 단속하려고 베란다로 나갑니다. 비를 뚫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미 물속에 잠겨있고 작은 언덕은 세찬 물살을 견디지 못해 그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빗속을 1초의 오차도 없이 이른 출근길에 나선 남편과 딸에 대한 애잔함이 집 앞을 지나고 있는 이웃 아이의 뒷모습으로 다가가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그 안타까움은 갑자기 지나간 날 있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히며 두려움과 함께 슬픔을 불러옵니다.   

   

비의 계절에 대한 두려운 기억, 사람들의 저항이 클수록 비의 속도도 비의 양도 그 저항을 삼켜 버릴 기세로 달려오던 물살의 기억은 잠시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리게 합니다.

혼자 남은 집안의 고요는 거세지는 빗소리의 아우성으로 나의 기억을 다시 건드리며 몇해 전 찾아왔던 비의 계절을 소환해 왔습니다. 

그리고 미처 닫지 못한 베란다 창문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오는 빗줄기 속에서 전 지난 비의 계절에 떠난 한 아이의 엄마를 떠올립니다.   

  

비 오는 계절이 아니어도 숨을 몰아쉴 만큼 가슴이 먹먹해지며 찾아오는 아이엄마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조차 또렷하고 선명해 때론 눈을 감아버리게 합니다. 잊을 수 없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의 실루엣. 

비의 계절이 오면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그 실루엣의 형체를 바라보며 전 몇해를 그렇게 이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는 물살의 포효로 떠나야 할 분노와 슬픔의 눈물을 해소 하나 봅니다. 거세지는 맨홀 물살에서 겨우 아이를 끌어내고 일어서려는 아이 엄마를 한순간에 휘감아 버리던 물살, 미처 손을 뻗을 틈도 없이 아니 외마디 소리 한번 지를 시간도 주지 않고 그녀를 삼키던 그 비의 위력이 결국 아이로부터 엄마를 뺏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웃들은 한동안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어떤 말이나 인사도 주고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외쳐대는 비명도 울부짖음도 거센 빗소리와 물살의 포효로 묻혀 버리던 그날의 공포를 한동안 하나의 풍경처럼 기억의 액자에 끼워 마음의 벽에 걸어놓은 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잊을 수도 없지만 때만 되면 찾아오는 비의 계절, 오늘 아침 다시 그 비의 계절은 시작되고 그 빗줄기는 제 곁에 찾아와 지금 제 창가에서 재현하듯 다시 같은 눈물로 같은 포효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방송에서는 비 피해로 인한 사망자 소식과 삶의 공간을 빼앗긴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과하지 않은 비의 계절에 도사린 위험.

맞서 싸워보고 싶지만, 몸을 사리고 조심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인 저는 매지구름이 다급하게 흘러가는 곳을 응시하며 먼산바라기가 되어 그저 비의 우사(비의 신)에게 기도할 뿐입니다. 

부디 올해는 놀러 온 듯 찾아온 가루비가 되어 잠시만 머물다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비의 계절, 여러분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봅니다.   


#비 #풍경 #우사 #매지구름


 메거진 https://.kpeoplefocus.co.kr  윤슬마을

                  

매거진의 이전글 서촌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