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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빛 Aug 17. 2023

서핑을 통해 배운 인생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이번 여름휴가는 강원도 동해로 향했다. 지인들에게 동해로 간다고 하니 강릉? 속초? 양양? 동해 어디? 라며 다들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나의 도착지는 동해시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나 보네 하며 오히려 좋았다. 2박 3일 여행에서 2일 동안은 파도가 굉장히 강했다. 먹구름이 잔뜩 껴있어서 타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파도가 강한 탓에 초보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서핑은 하지 못하려나 싶었는데 마지막 3일 차에 날이 갰다. 파도는 여전히 강했지만 강습을 들을 수 있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처음으로 서핑 강습을 들었던 것은 벌써 2년 전의 이야기이다. 파도가 꽤나 잔잔한 탓에 일어나는 것은 쉽게 성공했지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지게 파도를 가르는 것은 하지 못해 아쉬웠다. 평소 균형감각이 좋기도 하고 강사분이 정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립서비스를 잔뜩 해주셔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강한 파도에 무너져버렸다...라는 클리셰적인 이야기와는 반대로 역시나 쉽게 성공했다. 이 정도면 더 멀리 나가도 된다는 말에 강사님과 함께 더 먼바다로 향했다. 오히려 바다로 나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부서지는 높은 파도에 휩쓸리며 물을 잔뜩 먹었다. 그러나 강사님의 요령을 뒤에서 잔뜩 흡수하며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도 소리를 해변에서 들으면 무서울 정도다. 하얀 거품을 잔뜩 내며 무너지는 파도가 내는 소리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평온했다. 자, 이제 파도를 타보자. 그런데 강사님은 자꾸만 파도를 흘려보냈다. 내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파도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니 그냥 물에 떠있기 위해 온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힘껏 헤엄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내 고막에 닿자마자 미친 듯이 헤엄을 쳤다. 그리고 UP! 파도가 높기에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하지만 금세 균형을 잡고 내 키보다 높이 올라와있는 파도를 대각선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시원했고, 빨랐다. 파도가 부서지며 물에 빠졌다. 강사님은 해맑게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가자고 했다. 그렇게 2시간을 내리 파도에 올라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기다린 게 반이다. 정작 파도를 탄 것은 몇 분 안 된다. 


잔잔한 파도 몇 개를 흘려보내며 보드에 앉아 생각했다. 꽤 좋아 보이는 유혹을 보이며 다가오는 파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정말 좋은 파도에 완벽한 타이밍의 헤엄과 업스탠드로 파도를 탈 줄 알아야 비로소 서핑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게 인생과 다를 게 없구나. 달콤해 보이는 사람과 기회들이 종종 나타난다. 하지만 금방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것들도 많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한다. 정말 좋은 기회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몰입하면 좋은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설령 중간에 넘어져봐야 여전히 바다 안이다. 다시 헤엄쳐서 잔잔바리 파도들을 뚫으며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다시 기다리면 된다.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서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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