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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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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Dec 14. 2021

흐린 겨울날의 산책

한걸음 내딛기



추적추적 비 오는 초겨울이다. 하늘은 뿌옇고 보슬보슬 안개비가 내린다. 예전에는 맑고 푸른 날만 좋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흐린 날도 좋다. 뭔가 마음이 차분해진달까. 기분 좋아지는 날은 아니지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날. 내 맘과 같은 날이라 위로가 된다. 인생에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음을 몸이 알아가나 보다.



비 오는 겨울날에 일부러 밖에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젖기 싫고 우산 쓰기 귀찮기만 하다. 따뜻한 방이 좋다. 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고민 끝에 한 발 내딛는다. 마음에 드는 우산을 펼치니 예쁜 나만의 하늘이 생겼다. 한발 두 발 걷다 보면 어느새 귀찮음은 사라지고 뻐근함이 녹아내린다. '아, 나오길 잘했다'





비 내리는 날의 공원엔 고요함만이 가득하다. 커다란 공간에 적막감이 감돈다. 한 마리 가냘픈 새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 넓은 곳에 아무도 없으니 온통 내 것처럼 누릴 수 있다. 인적 드문 공원에서 나만의 산책 시간은 커다란 기쁨이다. 이러니 비 오는 날에도 산책을 나올 수밖에.





비가 그쳤다. 촉촉이 젖은 데크길을 홀로 걷는다. 물에 비친 나무들이 예뻐 보인다. 거울 같은 물, 비로 인해 길에 하늘을 비춰주는 거울이 생겼네. 어제와 다른 왠지 새로운 길이다. 한발 한발 걸으며 차박차박 밟히는 물자국에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기도 하다.





몇백 년을 살았음직한 아주아주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여름에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던 고마운 나무인데 지금 보니 꼭대기에 새둥지 하나만이 남아있다. 언제 저 많은 잎들을 떨어뜨린 걸까.. 매일 지나던 길이지만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살아내는라 힘들었겠다. 토닥토닥. 그동안 살아내느라 힘들었지? 나에게도 토닥토닥..



며칠 전 갑자기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목과 어깨가 잔뜩 굳어있더니 결국 그분이 또 오셨다. 컴퓨터를 종일 사용해서 얻은 직업병, 겨울만 되면 돋는 고질병이다. 심하지 않아 마사지 기기로 어깨를 풀고 출근했다. 오후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점점 더 뻣뻣해지는 어깨와 목.



파스를 붙여도 전혀 나아지질 않고 조금 후에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고개를 돌릴 때는 물론이고 떨어진 스카프를 주울 때도, 키보드에 팔을 가져갈 때도 고통이 밀려왔다. 내 목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나. 병원 가는 퇴근길은 어찌나 길던지.. 살살 운전하는데도 차가 덜컹 덜컹이다. 운전하는 내내 식은땀을 쏟았다.



아파보니 알겠다.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당연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없구나. 일상이 무너지는구나. 내 몸이 먼저이고 다른 것은 그다음이구나...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워있고만 싶다. 그냥 쉴까... 가만히 있고 싶지만 이럴 때 오히려 한발 내딛기. 지금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다.





비 내린 겨울날의 산책. 헐벗은 나뭇가지, 흐려서 더 쓸쓸한 겨울 풍경이지만 그 가운데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그래, 나오길 잘했어.




힘들지만  발 내딛길 잘했다. 힘들 땐 한 발만, 딱 한 발만 내딛자. 그럼 두 번째 발이 따라오고 그렇게 조금씩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괜찮아진다. 걷다 보면 길이 생기고 그 길을 계속 걷다보면 그다음 가야 할 길도 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딱 한 발만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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