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필사하는 이유
‘논어 필사 모임 괜히 신청했나 봐’
필사 2개월 차가 되니 처음의 호기심과 새로움은 반감되고 지루함만 몰려왔다. 하루 2편 짧은 논어 구절 필사지만 한자를 쓰고 운을 달고, 한자 해석 그리고 ‘생각 쓰기’까지 쓰려면 1시간 이상 걸리고, 거기다가 논어 배경지식을 찾다 보면 2시간도 훌쩍 지나간다. 정해진 분량의 필사하기가 간단한 미션이지만, 독서지도를 하면서 생각 쓰기가 중요한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3시간이 걸릴지라도 혼자서 ‘생각 쓰기’를 시작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모집하는 글만 보고 신청한 조급함과 책임감 사이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신청했더라? 그만한다고 할까?’
1개월 과정인 줄 알고 신청을 했는데 완필하려면 1년이 걸릴 것 같다. 1개월 과정 후 다시 신청하는 시스템이었다. 논어 필사팀 리더의 모집 공지글에 진정성이 느껴졌고 처음이라는 말에 끌렸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내린 결정이라서 시간이 지나니 후회가 되었다. 깊은 내면에서는 부분 부분만 읽었던 논어를 이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걱정과 달리 이 내면의 속삭임은 또 뭔가?
1개월 쓴 필사 내용도 아깝다. 포기해버리면 나 자신을 마주하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포기하는 명분도 없네, 없어. 언젠가 또 논어를 다시 집어 들 것을 알기에 필사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건만 갈수록 내용은 깊어지고 어려워지면서 거기다가 공자님의 제자들은 많기도 하다.
'나는 왜 필사를 계속 하지?'
논어 필사를 하면서 무엇이 좋았길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이겨내고 10개월 장기 필사 여행을 완주했던 걸까? 왜 필사적으로 필사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10명의 필사 멤버들 덕분이다. 같은 구절, 같은 해석을 보고도 각기 가진 생각과 경험을 나누니 공자의 논어는 1권이 아니라 10권 이상을 읽는 재미를 느꼈다. 어떤 멤버는 공자의 제자 중 안연이 최고라고 하고, 어떤 멤버는 질문하는 자공이 최고라고 한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좋아하는 제자도 다르니 한 구절에 관한 생각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기원전 5세기 공자의 말로 각기 2021년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2500년을 쭈~욱 살고 있는 공자님이다.
'기분 나쁘다. 필사나 하면서 가라앉히자.'
필사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몰입을 하게 된다. 남편과 다투거나 아이들이 짜증을 낸 후 가만히 앉아 필사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집중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근심·걱정에 휩싸이다가도 필사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들은 저절로 물러나간다. 한꺼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없음이 무척 감사한 순간이다. 할 일은 많은데 집중이 되지 않을 때 필사부터 시작하면 좋다. 운동을 하기 전에 워밍업을 하는 것처럼 필사하게 되면 뇌가 최적의 준비를 해놓는다. 운동과 필사가 고민된다면 운동을, 필사와 다른 일이 고민된다면 필사 먼저 하기를 권한다.
'일기보다 더 자주 쓰는 필사'
매일 필사하고 생각 적기를 하다 보니 글을 쓰는 습관도 길러진다. 일기는 안 쓰더라도 필사는 주 6일 꼬박꼬박 했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14 ~ 2021년 5월 15일까지(총 10개월) 일요일, 연휴, 말일 빼고는 하루 2편씩 필사하고 덧붙여 생각 쓰기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논어 필사부터 시작했다.
끝나고 나니 왠지 모를 허전함과 2 기간이나 소요되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생각 쓰기를 하려면 어떻게든 그 문장에 관한 이해를 해야 하고 깊은 성찰을 해야만 글이 나오게 된다. 쓸 내용이 정 없으면 한 낱말을 골라 논어와 상관없지만, 낱말과 관련된 경험을 썼다. 마지막 물기까지 꽉 짜내는 수건처럼 글쓰기를 짜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떤 논어 구절이 주어지더라도 글을 지어낼 수 있는 순발력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논어와 상관없어도 상관없다.
'항상 신중하라고 가르치는 논어'
글쓰기뿐만 아니라 필사하며 자아 성찰을 하다 보니 말과 행동에도 조심하게 되었다. 논어에 나오는 대로 행동과 말에 신중하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실천하기’ 내용으로 ‘말과 행동에 신중하자’를 여러 번 다짐하고 글로도 썼으니 각인되어 실제 행동에도 조심하게 된다.
사람들이 책을 읽어도 변화하지 않거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는 책에 나온 내용을 1가지라도 꾸준히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라도 1가지 이상은 배울 점이 있고 실천을 꾸준히 한다면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읽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실천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진정한 독서다. 대부분의 작가는 독자가 책을 그냥 읽는 것보다 책에 나온 내용대로 실천하여 성장하기를 바란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 게 독서라면 필사는 필자와 같은 생각으로 쓰고 읽는다. 한 마디로 작가를 빙의해서 쓴다면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보다 한자 선생님의 한자 쓰는 자세에 매료되다'
처음 논어 구절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한자 시간이었다. 칠판에 또박또박 한자를 정성스럽게 쓰신 한자 선생님이 생각난다. 45분 후면 지워버릴 내용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미리 오셔서 수업할 내용을 분필로 정성스레 써두시고는 수업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셨다. 논어 1장 학이편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리곤 잊었다.
지금까지 논어를 읽지 않았던 이유는 뻔한 이야기, 훈계하는 말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읽지 않았다. 논어를 전체 필사하거나 몇 번이나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읽고 필사하니 왜 그렇게 썼는지 사람들이 이해되고 상황이 이해가 간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시간이 지날수록 왜 오랫동안 읽혔을까 실감하게 된다. 쏟은 시간만큼 애정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물론 현시대에 맞지 않는 문장도 있지만, 그것 또한 재해석하거나 예스러운 시대의 과거 상황이었다고 여기고 지금과 비교하면 된다. 100년 후의 후손들이 2021년을 보면서 “와~ 세상에 2021년에는 핸드폰으로 소통했대, 뇌에 칩을 넣고 생각만으로도 다 전송이 되는데 말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통찰력이 생기는 논어 필사'
그 외에도 부분과 전체를 보는 유연한 사고, 읽는 것과는 아주 다른 사고와 성찰의 깊이, 통찰력, 반복해서 읽고 곱씹어 읽기, 자아 성찰(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성찰), 자기 관리 능력이 길러졌다. 매일 질문하기와 실천하기를 1가지 이상 쓴 덕분에 그냥 필사만 하는 것과 달리 깊이 생각하게 되고 하나라도 실천해보려고 했기에 더 많이 성장했다. 무엇보다도 문장을 보고 그 이면을 보고 과연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고민하다 보니 글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는 통찰력이 생겼다.
경제모임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는데 항상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한다. 나만의 철학과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나 투자에도 자기만의 철학이 있으면 주가 등락에 동요되지 않고 긴 패턴을 보고 여유를 가지게 된다. 경제, 투자를 하고 싶으면 먼저 마음공부 먼저 하라고 추천하며 그 기저에는 자아성찰과 필사가 있다.
'얼떨결에 한 결정도 좋을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 없이 얼떨결에 한 결정도 본인의 내면에 관련된 한 조각이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인연에 책임감, 인내, 애정을 갖는 태도가 더해진다면 생각하지도 못한 성과를 얻게 된다. 때론 깊은 생각 없이 직관적으로 신청해도 괜찮다. 나에게 논어 필사가 그랬다.
그랬던 논어 필사가 끝날 즈음엔 필사팀을 직접 운영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내가 경험한 필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접 필사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필사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과 같다. 내가 필사적으로 필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