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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⑥혼식(混食) 장려 운동과 보리밥

by 박인권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⑥혼식(混食) 장려 운동과 보리밥


#혼식 장려 운동

70년대에 중고교를 다닌 사람은 다 아는 추억 하나, 혼식(混食) 장려 운동 이야기다. 지금이야 쌀이 남아돌아 혼식을 건강식이나 별미(別味)로 먹는 시대지만, 그때는 쌀이 귀해 정부 차원의 혼식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혼식은 쌀 반, 보리 반을 말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선생은 무슨 대단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일제히 학생들의 도시락 검사를 밀어붙였다. 하긴, 담임선생이라고 하고 싶어서 했을까. 위에서 시키니 하는 수 없이 한 담임선생도 우리처럼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분명 장려 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도 의무적으로 검사를 했다는 점이 거슬렸지만, 정부의 시책(施策)이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시락 검사의 합격 기준은 쌀밥과 보리밥이 절반씩 사이좋게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눈대중으로 하는 검사라 보리밥이 절반에 약간 못 미쳐도 통과됐지만, 3분의 1 미만으로 눈에 띄게 쌀밥이 많으면 혼찌검이 나곤 했었다.


1. 보리쌀로 지은 보리밥..jpg

보리쌀로 지은 보리밥. ⓒLombroso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번거롭고 귀찮지만 들볶이기는 더 싫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도시락 검사가 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꼼수이면서 묘책을 스스로 궁리해 냈다.


첫 번째 꼼수는 보리밥을 도시락 위쪽에 아주 얇고 넓게 깔고 그 아래에 쌀밥을 감추는 방법이었다. 이 노림수는 담임 선생이 도시락에 담긴 밥을 휘저어 확인하지 않고서는 들킬 수가 없어, 꼼수라기보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해도 된다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게 많았던 권위주의 시절인데도 학생들은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다 짜내 나름의 탈출구를 잘도 개척해 냈다. 시도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이 비책(祕策)에도 걸림돌이 없지는 않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들의 세심한 정성, 즉 정교한 손길이 필요한 데다, 인정사정없이 요동치는 만원 통학버스 안에서 수적 우위인 아래의 쌀밥이 허술한 보리밥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뒤죽박죽 뒤섞이는 바람에 원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특히 하얀 쌀밥과 거무튀튀한 보리밥은 색의 대비 원리상 육안(肉眼)으로 금방 식별된다는 점에서 애초의 의도는 무산되기 십상이었다.


#단명(短命)으로 끝난 꼼수

두 번째 꼼수는 첫 번째 꼼수가 의도치 않은 복병(伏兵)을 만나 무산될 부담을 의식한 학생들이 고안한 것인데, 역시 아래에 쌀밥을 깔고, 그 위에 보리밥을 다소 두껍게 덮는 방식이었다. 버스 안에서 도시락이 흔들려도 쌀밥이 주위로 뚫고 들어가기에는 보리밥의 방어벽이 두꺼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아쉽게도 이 방법은 시도 초기에 와르르 무너졌다. 선생님들도 귀가 있고 눈치가 빤한지라 이미 첫 번째 꼼수의 낌새가 노출된 데다 도시락 검사의 예봉(銳鋒)을 피하기 위한 학생들의 격상된 술수(術手)가 레이더망에 포착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도시락 검사 때, 담임선생은 지금부터 도시락을 책상 위에 뒤엎는다, 실시!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뒤집힌 도시락 속 내용물의 실체가 담임선생 앞에서 고개를 내미는 순간, 꼼수의 정체는 꼼짝없이 탄로가 나고 애꿎은 손바닥에만 매질 세례(洗禮)가 쏟아졌다.


#보리밥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

중학교 때 꼼수가 적발된 후로 나는 혼식 운동을 몸소 실천했는데, 점심때마다 잘 씹히지도 않는 보리밥 알을 억지로 삼키느라 애를 먹었었다. 지금은 보리밥에 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 비빔밥 잘하는 집을 찾아다니는 세상이 됐지만, 혼식이 강요되던 때 보리밥은 환영받는 음식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보리밥의 엉성한 식감(食感) 때문이다. 보리밥을 먹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보리밥은 밥알의 겉면이 미끄럽고 속이 찰지지 않아 씹는 저작감(咀嚼感)이 나지 않고 단맛도 없이 입 안에서 맴돌 뿐이라 도무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음식의 맛은 치아(齒牙)로 씹는 저작(咀嚼) 활동이 출발점이자 주요 변수다. 치아 상태가 불량(不良)하거나 잇몸이 성치 않으면 음식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예부터 건강한 치아를 오복(五福) 중 하나로 꼽은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리밥과 방귀

보리밥이 인기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포만감이 떨어지고 배가 일찍 꺼진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이유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찰지고 식감 좋고 입맛을 돋우는 쌀밥과 달리, 밥알이 날리는 느낌이라 배가 부르지도, 음식의 풍미(風味)가 전해지지도 않아 당연할 결과라고 생각된다.


내친김에 농(弄) 삼아 여담(餘談)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보리밥은 익히 다 아는 방귀 유발자(誘發者)다. 우리가 가스, 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방귀는 소화 기능이 뛰어나 일어나는 신진대사 현상이라고 알고 있으나, 소화 능력에 장애가 있어도 발생하는 신체적 반응이다.


보리밥은 이 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궁금하다. 배가 빨리 꺼지는 것을 보면 소화가 잘된다고 할 수 있고, 씹는 둥 마는 둥 삼키듯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보면 소화가 안 됐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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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비빔밥. 보리밥이 애물단지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리밥 비빔밥이 건강 별미 음식으로 대접을 받는 시대다. ⓒPARK IN KWON


#애물단지, 보리밥

어쨌거나 그 시절, 보리밥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애물단지였다. 보리밥은 먹기도 불편했지만, 밥 짓는 일은 더 성가셨다. 쌀과 달리 보리는 딱딱함이 만만찮아 밥을 짓기 전에 꼭 물에 불려야 한다. 물에 불리는 과정을 건너뛰고 밥을 하면 보리쌀의 여문 성질이 살아 있어 씹기가 곤란하다. 어머니는 저녁 설거지를 다 마친 후 보리쌀을 깨끗이 씻은 뒤 물을 붓고 밤새도록 불렸다.


보리밥은 밥 짓는 과정도 까다롭다. 보리쌀과 물을 1대 1 비율로 솥에 안친 뒤 센 불보다는 약하고 중간 불보다는 센 불로 맞춘다. 끓는 소리가 나면 솥뚜껑을 열고 나무 주걱으로 골고루 저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밑에 깔린 보리쌀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약한 불로 전환해 뚜껑을 닫고 10분 정도 뭉근히 끓인 뒤 불을 끄고 뜸을 들여야 하는데, 이 시간이 15분~20분 걸린다. 씻고 물에 불리고, 젓고 뜸을 들여 밥을 완성하기까지 길고 지루한 과정의 연속이다.


#보리밥의 재탄생

보리밥의 골칫거리는 또 있다. 먹고 남은 보리밥은 처치 곤란이다. 보리밥만 먹자니 입안에 가시가 돋칠 것 같고, 버리자니 아깝고, 그래서 궁리해 낸 게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꽁보리 비빔밥이다. 식은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잔뜩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두른 뒤 잘 비벼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났다. 요즘의 보리밥 비빔밥도 그때 방식과 다를 바 없다.


미끄덩거리는 불편한 식감과 밍밍한 맛으로 애물단지 신세였던 보리밥이 지금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에 좋다는 이유로 건강 별미 음식으로 대접받는다니, 시대가 변해도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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