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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⑤어머니 앞에 출두한 금기(禁忌)의 단어 참척

by 박인권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⑤어머니 앞에 출두한 금기(禁忌)의 단어 참척(慘慽)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 참척(慘慽)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참담한 심경(心境)을 참척(慘慽), 이라 한다. 참혹할 참(慘), 근심할 척(慽), 근심이 참혹할 지경이라는 비통(悲痛)한 어의(語義)는 한자(漢字)의 심한 굴절과 좌우상하로 복잡하고 거칠게 삐져나간 획(劃)에서도 느껴진다.


나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기는 존재는 이 세상에 부모 말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살아서는 소환되지 말아야 할 참척이라는 금기(禁忌)의 단어가 어느 날, 어머니 앞에 출두(出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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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의 초등학교 운동회 때 둘째 형, 나, 고종사촌들과 함께 놀러 가 찍은 옛날 사진. 앞줄 맨 왼쪽이 나, 내 옆에 배를 내밀고 있는 아이가 고종사촌 동생.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는 아이가 큰형, 그 옆으로 둘째 형과 고종사촌 형이 서 있다. 하나같이 표정이 없거나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다. 큰형이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인 1966년 아니면 1967년쯤으로 짐작된다.


#오지 말았어야 할 기별(奇別)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번째 기일(忌日)을 약 5개월 앞둔 2004년 7월 8일, 이른 아침에 거실 탁자 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침 일찍 집으로 걸려 온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불길한 예감은 불행히도 현실이 됐다. 수화기를 든 집사람이 지른 외마디소리가 슬픈 물기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구에 사는 큰형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둘째 형수였다. 둘째 형도 대구에 살고 있었다. 오지 말았어야 할 기별(奇別)은 큰형이 어젯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의식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로 굳어진 기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목석(木石) 같았던 큰형의 모습

급하게 KTX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안절부절,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어머니는 푸석푸석한 얼굴에 퀭한 눈으로 둘째 형과 함께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 시간에 맞춰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큰형은 내가 알고 있는 큰형이 아니었다. 큰형이 목석(木石) 같고, 목석이 큰형 같아 목이 메었다.


큰형의 두 눈은 감겨 있었다. 자는 듯한 숨소리만 들릴 뿐, 큰형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저렸다. 아버지가 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어머니가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이 무슨 망발(妄發)인가, 하고 큰형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했다.


2.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포구 방파제1687559517695.jpg

저 바다에 인생무상은 어떤 의미일까. 무의미일까, 자연의 섭리일까, 이도 저도 아닌 하나의 현상일까.


#불가역적인 뇌출혈과 무기력한 현실

둘째 형은 주치의의 소견이라며 의학적 회생 확률이 기대를 걸 만 하지 못하다고 내게 알려줬다. MRI(magnetic resonance imager, 자기 공명 단층 촬영 장치) 검사 결과 급성 뇌출혈로 밝혀졌는데, 뇌의 혈관이 터진 부위가 너무 넓고 혈액의 유출 정도가 심해 회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고, 기적적으로 깨어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한 기운이 목구멍 위로 전해왔다. 아버지, 왜 벌써 큰형을 데려가려 하십니까, 혼자 있는 그곳이 적적해서 인가요, 그래도 이거는 아니잖아요. 나는 괜히 아버지를 책망(責望)하려다가 아버지인들, 지금 속이 속일까, 하고 불경스러운 망상(妄想)에 빠진 나를 책망했다.

병원 1층 로비 의자에 어머니도 앉고, 둘째 형도 앉고 나도 앉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나는 할 말이 없다기보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40대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어머니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큰형의 직장 동기들이었다.


그들은 어머니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다. 괜찮을 리 없는 어머니는 괜찮다는 말을 표정으로 대신하고 그들의 손을 차례대로 잡아주었다. 큰형의 동기들은 황망(慌忙)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바랄 수 없는 희망과 필연적 절망(絶望)

나는 큰형의 MRI 검사 결과를 스캔한 CD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직장 후배의 형이 원장으로 있는 모 병원을 찾아갔다. CD를 본 원장은 큰형의 주치의와 비슷한 말을 하면서 원한다면 대구 지역의 명망(名望) 있는 의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조금 전 MRI 촬영 사진을 보면서 짧게 한숨을 쉬던 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원장은 절망적인 큰형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차마 동생인 내게 사실대로 전할 수가 없어 에둘러 위로의 말을 던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원장은 그럴 수 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회사로 돌아가면서 나는 산다는 게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가혹한 현실을 어찌할 수 있는 도리가 없다는 무력감에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자연법칙 앞에서 그림자처럼 드리운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교훈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생무상은 삶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교훈적 한자 성어(成語)인데, 나에게는 슬픔의 언어로 들렸다. 나는 인생무상이 시사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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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하늘 너머 또 다른 삶이 있다고 했다. 삶과 또 다른 삶은 무엇일까.


#슬픔의 언어, 인생무상(人生無常)

-무한(無限) 욕망의 늪에서 허덕이다 뒤늦게 후회하는 세속적인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다.

-세월 앞에 장사(壯士) 없다는 인생 황혼기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음을 일깨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의 유한성과 예측불허의 사고(事故)에 봉착할 개연성(蓋然性)에 눈뜨게 한다.

불행히도 나는 아버지나 큰형의 사례를 마주하면서 인생무상의 교훈은 검증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지 않고, 삶을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可逆的) 기회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교훈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무상을 슬픔의 언어로 간주(看做)하게 된 시기도 이때였다.


그런 점에서 인생무상의 메시지는 전화위복(轉禍爲福), 상전벽해(桑田碧海),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은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언어가 아니라, 가혹하고 불가역적인 회한(悔恨)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참척을 외면한 어머니

큰형의 상태는 쓰러지고 이틀이 지난 3일 전보다 그저께가 안 좋았고, 그저께보다 어제가 더 안 좋았고, 오늘(2004년 7월 13일) 회생 불능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지 만 5일 만에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큰형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큰형의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례식 절차가 모두 끝날 때까지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금기의 단어, 참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형은 나보다 다섯 살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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