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대한 기억 ⑦벙어리장갑과 털스웨터
#대구의 더위와 추위
초등학교 때 대구(大邱)의 겨울은 추웠다. 내륙 분지인 대구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대구의 더위는 전국구 급이다. 오죽하면 아프리카를 빗댄 대(大)프리카, 라고 부를까.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77년 7월 31일, 학교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낮 최고 기온이 39.5도였다. 역대급 더위였다. 선풍기 하나 없는 찜통 교실에서 살인적인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한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대구의 겨울도 만만찮았다. 어릴 때, 대구는 눈이 아주 귀했는데, 어쩌다 가끔 눈발이 날리기라도 하면 지역 방송에서 뉴스특보를 내보냈던 기억이 난다.
대구의 명소 수성못. 내가 학창 시절 때인 70년대 겨울이면 수성못이 꽁꽁 얼어 스케이트장으로 변했다. ⓒDaegu City Officia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한겨울이 되면 집 근처 하천이 꽁꽁 얼어붙어 우리들의 썰매장으로 변했고, 유원지로 유명한 수성못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금은 웬만해서는 하천이나 못이 얼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옛날 추위가 더 매서웠던 것 같다.
#벙어리장갑의 추억
초등학교 시절 겨울을 생각하면 늘 벙어리장갑이 떠오른다. 벙어리장갑은 엄지손가락을 뺀 나머지 네 손가락이 한꺼번에 한 곳에 함께 들어가도록 제작한 장갑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꼭 벙어리장갑을 챙겨주셨다. 알록달록한 털실로 짠 수제 벙어리장갑은 어머니의 작품이었다. 나뿐 아니라 형들도 벙어리장갑을 끼고 학교에 다녔는데, 그 역시 어머니가 손수 뜨개질로 만든 것이었다.
털실 벙어리 장갑. ⓒMagpie 999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두 짝의 벙어리장갑을 털실로 길게 이어 목에 걸고 다녔는데, 벗고 끼고 하다가 분실할 염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의 염려는 한 번씩 현실이 되곤 했다. 수업 시간에 벗어놓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방해가 돼 다른 곳에 보관했다가, 깜빡 잊고 그냥 집에 왔을 때 그랬다.
#어머니의 뜨개질
어머니는 틈만 나면 뜨개질을 했는데, 주로 저녁 식사 후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 난 한가한 시간 때였다. 어머니가 대바늘과 코바늘, 털실을 이용해 뜨개질로 짠 창작품은 다양했다. 우리 3형제가 겨우내 끼고 다닐 벙어리장갑을 비롯해 겨울 스웨터와 두툼한 목도리, 털모자까지 모두 어머니가 한 뜸 한 뜸, 정성을 다해 만든 것이었다.
뜨개질. ⓒLisa Risager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 쌍으로 된 대바늘은 대나무 소재였고, 대바늘보다 작은 코바늘은 알루미늄 소재였던 것 같다. 대바늘 관련 자료에 털모자를 짤 때는 4개를 하나로 묶은 대바늘 세트를 사용한다고 나와 있는데,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내 기억에는 스웨터가 가장 인상 깊이 남아 있다. 내가 입고 겨울을 난 스웨터의 색깔은 언제나 노란색, 하나였다. 왜 그랬는지는 어머니께 확인한 적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아마 어머니 당신 생각에 나하고 제일 잘 어울릴 법하다는 색을 고른다고 고른 결과가 아니었나, 짐작할 뿐이다.
다양한 종류의 뜨개질바늘. ⓒDanielle Keller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노란색 털스웨터
벙어리장갑은 내가 수시로 잃어버린 까닭에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여러 개를 끼고 다녔다. 굵은 털실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얽어 짠 노란색 스웨터는 정말 따뜻했는데, 내복(內服)과 스웨터를 안에 입고 겉옷을 걸치면 한겨울 추위를 어렵잖게 이겨내곤 했었다.
노란색 스웨터의 역사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계속됐다. 신촌 하숙집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하숙집 겨울 난방은 기름보일러 방식이었는데, 기름값을 아낄 심산(心算)으로 보일러 작동 스위치를 야박하게 튼 주인아주머니의 깐깐한 살림 정책 탓에 한밤중 하숙방은 선득선득한 날이 많았다.
털실. ⓒUmaranishanmugam, shanmugamstudio, Kollam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럴 때면 어머니의 체온과 정성이 담긴 노란색 스웨터를 껴입고 고향 집에서 가져온 솜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사지(四肢)를 웅크리고 새우잠을 청했었다. 노란색 스웨터는 내가 오랫동안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고마운 옷이자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겨울 운동용 털모자.
#털모자와 구슬, 딱지치기
털모자와 관련한 일화도 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 때 동네 친구들과 구슬치기와 딱지치기할 때면, 귀가 시려서 꼭 털모자를 쓰고 나갔다. 컨디션이 올라오고 운 발까지 따라줘 구슬과 딱지를 많이 딴 날, 호주머니가 넘칠라치면 얼른 털모자를 벗어 그 속에 집어넣었던 기억이 있다. 흙먼지가 풀풀 나는 구슬과 딱지에 더럽혀진 털모자를 본 어머니에게 혼도 많이 났지만, 그 버릇은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집안에서 뜨개질 광경을 보기가 어렵다. 기성복 시대인 요즘에도 한 번씩 그때 생각이 난다. 아련한 옛날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