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대한 기억 ⑨어머니와의 이별(下)
#자는 듯, 떠나고 싶어 한 어머니, 자는 듯 떠난 어머니
어머니는 평소 입버릇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자다가 홀연히 떠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는 실제로 자는 듯 내 곁을 떠났다. 떠나는 방식은 찰나에 생사가 갈리는 심장마비였다. 나는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찰나, 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불교식으로 해석하면 찰나는 지극히 짧은 75분의 1초라 찰나가 불러온 죽음은 역설적으로 가장 평화스러운 생명의 소멸이랄 수도 있겠다. 인간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찰나의 죽음을 꼭 무서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철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네 글자로 압축한 사자성어(四子成語)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했다.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는 것, 그것이 부처가 속세의 인간들이 깨우치기를 바라는 주문일 텐데, 범인(凡人)들의 귀에 과연 그 말이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졸견(拙見)을 보탠다면, 나는 그것이 윤회(輪迴)와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성철 스님이 대로(大怒)할까, 두렵다.
어머니는 속된 말로 가방끈은 짧았지만, 불심(佛心)의 끈은 길고 유연했다. 방금까지도 멀쩡하던 어머니의 심장마비는 바로 그런 이유로 공포(恐怖)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어머니에게 심장마비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후로도, 지금도 그 점이 궁금하다.
어머니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염주(念珠).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심장 스텐트 시술(施術)과 심장마비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의 죽음은 실감하기 어렵다. 나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임종(臨終)도 지키지 못했다. 불효막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임종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견디기 힘든 이별의 순간을 보지 못한 내가 심장마비가 사인(死因)인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둘째 형의 전화 기별(奇別)로 알게 됐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이성과 감성이 블랙홀처럼 머릿속으로 소용돌이쳐 빨려 들어갔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3일 전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다. 시술은 성공적이었고, 내일 퇴원해도 된다는 주치의의 허락도 떨어졌다. 시술 전 귀동냥한 의학 지식에 따르면 심장 스텐트 삽입술은 노인에게 일반적이고 위험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술 방법은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에 스텐트라는 작은 금속 또는 플라스틱 망사 튜브를 끼워 넣어 확장함으로써 혈액 공급의 정상화를 꾀하는 식이다. 심장 기능에 문제가 생긴 노인들이 주로 받는 시술이다.
#운명의 장난, 급성 심장마비
사망 진단서에 적힌 어머니의 공식적인 사인(死因)은 급성 심장마비, 심근경색이었다. 심장 근육에 혈액을 실어 나르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막혀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심장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증상이다. 어머니에게 닥친 운명의 장난, 급성 심장마비의 진상을 재구성하면 이랬다.
어머니는 퇴원을 하루 앞둔 일요일 낮 병원에서 제공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전에 어머니와 통화한 나는 ‘내일 집에 간다. 몸 상태도 좋다.’며 익숙한 어머니의 평소 목소리에 안도했다. 꼬박 3일 밤을 어머니 곁에서 지새운 둘째 형은 한숨을 돌리고 옷도 갈아입을 겸, 병원 부근의 어머니 집에 잠시 들렀다.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어머니는 문안차 들른 큰형과 둘째 형의 아들인 큰 손자와 둘째 손자를 만났다. 손자들이 떠나고 1시간 남짓 지났을 때, 둘째 형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님이 방금 사망하셨습니다. 급성 심장마비입니다.’
둘째 형의 뇌리(腦裏)에서는 그 순간 분명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 무슨 해괴한 변고(變故)인가’라는 끔찍한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일요일 오후 주말마다 가는 동네 사우나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내 핸드폰 벨 소리도 구슬프게 울어댔다. 둘째 형의 말은 나에게 말 같지 않았고, 말 같지 않다고 스스로 우기는 나의 고집은 곧 허물어졌다.
팔찌, 반지, 목걸이, 브로치 등 어머니의 장신구
#불효막심한 막내아들의 회한(悔恨)
어머니가 심장이 끊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혼절했을 때, 병실(病室)에는 아무도 없었다. 2인 1실 병실의 또 다른 환자도 그때 자리를 비웠다. 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얼마 후 간호사가 맨 먼저 어머니를 발견했다는데, 그 얼마가 얼마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병실에 CCTV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 얼마의 정확한 수치는 간호사인들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기 암 환자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에 서러움이 복받쳤다는 어머니의 영정(影幀) 앞에서 나는 나의 무능하고 불효막심함에 스스로 치를 떨었다. 왜 그때 어머니 곁을 지키지 않았을까,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책망과 함께 아무도 없는 쓸쓸한 병실에서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홀로 외로움을 삼켰을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을 후벼 파오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 3형제가 태어날 때를 빼고는 처음 병원에 입원하고 처음으로 시술을 한 어머니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자식은 근원적으로 부모에게 불효자라는 말이 나를 겨냥한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이 확장되면서 회한(悔恨)의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작별 인사의 현장, 입관식장(入棺式場)
나는 발인이 끝날 때까지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수시로,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억지웃음을 지을라, 치다가도 이내 감정 곡선이 슬픈 민낯을 드러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소리 없이 눈물만 찍어내던 유가족들도 입관식장에 들어서면, 통한(痛恨)의 감정을 억제할 길이 없어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곡소리는 멀리 바깥에서도 다 들릴 정도로 애절한데, 고인(故人)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과 미안한 마음이 뒤범벅돼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울음이 사그라들곤 한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어머니의 손거울과 지갑, 전화번호 수첩, 사혈침(瀉血鍼).
#산 자와 죽은 자
입관식 때, 고3 수험생 아들과 중2 딸은 염습(殮襲)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자,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아들과 딸은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윽한 눈길로 무제한 사랑을 내어주던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리움이 사무쳐서인지,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뿐인 3형제의 막내며느리를 딸처럼 여긴 시어머니의 싸늘한 얼굴을 마주한 집사람도 서럽게 울었다. 입관식장의 눈물은 산 자가 죽은 자와 나누는 작별 인사의 다른 이름인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작별 인사가 아닌가, 싶다.
불교 신자임에도 생전에 어머니는 망자(亡者)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불교 의식인 사십구재(四十九齋)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했다. 사십구재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어머니가 아버지 때와 달리 그렇게 결심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때가 되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곳으로 갈 때, 홀로 조용히 가면 그뿐이라는 평소의 신념이 하나였고, 떠난 후까지 굳이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또 하나였다. 나에게는 밝히지 않았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윤회(輪廻)를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전화번호 수첩 속에서 발견된 증명사진. 내가 중학교 때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反(반) 사실적 과거 추론
가끔 취기(醉氣)가 오르면 어머니 생각이 불쑥 날 때가 있다.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고, 어머니와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그럴 때, 한 번씩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심장마비는 왜 어머니를 덮쳤을까. 스텐트 시술도 성공리에 끝났고, 퇴원을 하루 앞두고서 굳이 마(魔)의 손길이 어머니를 데리고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질없는 反(반) 사실적 과거 추론이지만,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 스텐트 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이물질이 기습적으로 딸려 들어가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유발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 아니면, 하늘만 아는 어머니 신체의 돌발적 부조화 현상이 느닷없이 불거져 그것이 하필 심장 부위를 회생 불가능하게 공략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결론이 맞는다면, 스텐트 삽입술의 위험성과 연관될 터라 확장된 의료영역의 문제로 볼 수 있겠고, 두 번째 결론이 맞는다면, 말 그대로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신(神)의 영역의 문제로 볼 수 있겠다.
어느 쪽일까. 나는 혼자 묻고, 혼자 추론하고, 혼자 결론짓는 버릇이 있다. 술이 한 잔 들어갔을 때, 곧잘 발동되는 버릇이다. 나는 그 버릇을 나만의 퀴즈 게임, 미로 찾기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때의 상황 재현은 불가능한 일이라 해답을 밝혀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해답을 안다 한들, 돌아가신 지 오래된 어머니를 어찌해 볼 도리도 없다.
해답을 구할 수 없고, 해답을 구한 들 의미가 없더라도 나는 나만의 미로 찾기 버릇을 통해 어머니를 기리는 버릇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스스로 되묻곤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될까.
한 달 후면 어머니의 9번째 기일(忌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