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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향 집 오디세이 ⑦연탄가스 중독

by 박인권

고향 집 오디세이 ⑦연탄가스 중독


#연탄구이 식당

연탄 구경하기가 힘든 시대다. 도시는 물론이고 웬만한 시골 가구에서도 난방 에너지원이 도시가스라 어쩌다 연탄을 마주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쩌다, 의 대상은 지난 시절의 향수에 목말라하는 세대를 겨냥한 복고풍 연탄구이 고깃집이고, 그렇게 반가운 이유는 나 또한 연탄에 익숙한 성장기를 보낸 터라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마음먹고 들르는 연탄구이 식당에서 한 번씩 놀라는 일이 있다. 연탄의 존재를 알 턱이 없는 젊은 남녀가 의외로 제법 많이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복고풍의 감성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일 텐데, 십중팔구 호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한다. 연탄불에 석쇠로 고기를 굽는다는 신기함에 더해 그 장면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그들만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들리는 바로는 화초를 가꾸어 판매하는 화훼농가(農家)나 과일, 채소, 정원수, 화초 따위의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난방용으로는 아직 연탄이 사용돼 명맥을 이어간다고 한다.


연탄재와 연탄불(아래).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옛날, 국민 에너지원이었던 연탄

어쨌거나 이제는 사라지다시피 한 옛날 연료인 연탄이 80년대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의 주력 에너지원이었다. 가정에서는 난방과 취사를 책임졌고, 음식점과 다방(茶房), 점포(店鋪),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옛날 버전인 복덕방(福德房), 길거리 노점상, 재래시장 가게, 규모가 작고 군색한 영세 사무실, 한편 값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동시상영 극장 등 전방위적인 난방 전선의 수호천사였다.


연탄은 195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처음에는 연탄구멍이 아홉 개였다가 국민 에너지원으로 대량 생산되면서 구멍이 열아홉 개인 십구공탄(十九孔炭) 시대를 거쳐 나중에는 이십이 공탄도 개발됐다.


#연탄구멍의 의미

무연탄(無煙炭)을 가루로 만들어 점토와 섞어 가공한 원통형 연료인 연탄에서 구멍의 의미는 각별하다. 위아래가 통하도록 뚫어 놓은 연탄구멍의 존재 이유는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범위를 확장해 완전 연소(完全燃燒)를 꾀하기 위해서다. 완전 연소의 비율이 낮을수록, 인체에 치명적인 일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연탄가스는 연탄이 탈 때 생기는 유독성 가스로 일산화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연탄이 외부에 노출됐을 때 완전 연소까지는 대략 8시간이 걸린다. 연탄구멍이 많으면 연소가 잘 되고 화력이 세지는 대신, 타는 시간이 짧아 연탄 수명도 그만큼 짧아진다.


구멍이 적으면 화력이 약한 대신 타는 시간이 길어져 연탄 수명도 늘어나지만, 불완전연소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의 위험성에 노출된다. 이번 주제인 연탄가스 중독 주변에서 빙빙 돌며 뜸을 들인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다.


#새벽의 침입자 연탄가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인 1973년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을 뻔하다 살아난 일이 있다. 날씨가 쌀쌀한 시기라 연탄을 땔 때였다. 새벽녘에 나는 연탄가스를 들이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구들장 틈새를 뚫고 방안으로 침입한 연탄가스는 깊은 잠에 빠진 나의 호흡을 옥죄어 의식을 앗아갔다.


머리가 자꾸 지끈거려 몇 번 뒤척거리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앗! 연탄가스,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옆자리의 어머니와 나를 흔들어 깨웠는데, 나만 반응이 없어 비상이 걸렸다. 형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작은방에서 곤히 자고 있어 새벽의 소동을 알 리 없었다.


다급해진 어머니는 황급히 동치미 국물 몇 숟가락을 내 입속에 억지로 떠밀어 넣었다. 동의보감에 숯 연기를 흡입해서 머리가 아플 때 생 무즙을 마시라는 처방이 나온다. 어머니는 이 처방을 무리하게 확대해석한 민간요법에 기댔는데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한다.


#죽음의 가스, 일산화탄소와의 사투(死鬪)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나를 둘러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통행금지가 풀린 시간이지만 지나가는 택시가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반쯤 넋이 나가 아버지를 뒤쫓아 따라갔다는데, 막내아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고 울먹이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천만다행한 일이 뒤 따랐다. 새벽 야외 찬 공기가 내가 들숨을 쉴 때마다 구원병처럼 딸려 들어와 내 몸 깊숙한 곳에서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 일산화탄소를 멀리 내쫓았다. 나의 날숨을 탈출구 삼아 혼비백산한 일산화탄소는 내 몸 밖으로 내빼기에 바빴다.


연탄구이집에서 피운 연탄불 위에 놓인 석쇠. Ryan Bodenstei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연탄이 실외에서 완전 연소 되려면 8시간이 걸린다. 완전 연소 전까지는 일정량의 일산화탄소를 함유한 연탄가스를 배출한다.


#기적적인 의식 회복의 순간

열한 살 어린 나를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곳으로 끌고 가려던 침묵의 살인자, 일산화탄소가 기세등등한 산소 대원들의 파상공세에 기진맥진했는지 연신 내 이름과 ‘정신 차려’를 한 단어처럼 붙여 애타게 부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버지 등에 업혀있다는 것을 어슴푸레하게 감지하는 순간, 저 앞에 빨간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때 나는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고 도착한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 응급실 침상에 나를 눕혔을 때 나는 의식을 거의 되찾은 상태였다.


내가 가늘게 눈을 뜬 것을 본 의사가 무어라고 물었고, 나는 무어라고 작게 말했다. 간호사 누나가 내 팔에 주사를 한 대 놓았고, 링거도 맞았다. 한 시간쯤 지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이 살렸다, 의 의미

집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하늘이 살렸다.’

그때 나는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연탄가스에 중독된 나를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 없을 것이다. 의사는 내가 3분만 늦게 눈에 띄었어도 큰일 났을 거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나를 일찍 발견한 것은 천운(天運)이고 확 트인 실외에서 일산화탄소의 독성을 무력화시킨 새벽 찬 공기의 지원은 천운의 현실적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연탄가스에 중독됐다가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살인자, 일산화탄소

밀폐된 공간은 일산화탄소가 맹독성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일단 방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 중요하다. 일산화탄소는 실외에서 산소를 만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전투력을 상실한다. 일산화탄소는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해 알아채기가 힘들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깊이 잠든 상태에서 중독되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다.


아버지가 연탄가스에 취한 초기에 나를 발견한 데 이어 내가 곧장 새벽공기의 도움을 받아 일산화탄소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점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꺼질뻔한 한 생명을 되살린 절묘한 분기점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하늘이 살렸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하늘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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