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향 집 오디세이 ⑧연탄불 갈기와 연탄재
고향 집 오디세이 ⑧연탄불 갈기와 연탄재
#겨울나기의 필수 자원 식량, 연탄
연탄이 취사와 난방의 주력 에너지원이었던 70~80년대, 연탄불 갈기는 겨울철 각 가정에서 온 식구들이 매달린 집안의 당면 과업(課業)이었다. 연탄불 갈기와 함께 연탄불 꺼뜨리지 않기, 연탄구멍 정확히 맞추기, 비 오는 날 연탄이 비 맞지 않도록 연탄창고 잘 관리하기도 가족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체크 사항이었다.
연탄이 겨울나기에 꼭 필요한 가정의 필수 자원 식량이었던 그때, 충분한 연탄 비축은 김장과 함께 월동 준비의 양대 축이었다. 우리 집도 겨울 문턱에 접어들기 전 연탄을 수레 뙈기로 주문했는데, 그 양이 250장~300장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나기용 연탄을 들여놓은 날 저녁이면 늘 고기반찬이나 생선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다. 연탄은 그만큼 중요한 살림살이였고 연탄이 창고에 가득 채워진 날, 어머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연탄 인심과 하루 두 번 연탄 갈기
그때는 옆집이나 이웃집에서 연탄을 꾸러 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서로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아는 가까운 사이라 연탄 인심도 살가웠다.
연탄불은 평균적으로 아침, 저녁 두 번씩 갈았다. 연탄을 갈 때는 아래위 연탄구멍을 잘 맞춰야 하고 연탄이 다 타기 전에 새 연탄으로 교체해야 했다. 연탄불이 꺼지면 불을 새로 피워야 하는데, 불을 피우고 살리는 과정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새 연탄에 불을 피운 뒤에는 아궁이 문을 활짝 열어 공기 순환이 잘되도록 했다. 그래야 막 타기 시작한 새 연탄불이 탄력을 받아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 연탄아궁이도 두 개의 연탄이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하나의 연탄을 들여놓고 그 위에 또 다른 연탄을 올려놓는 식이다.
연탄불. ⓒPratikkarki2012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두 개의 연탄불이 다 꺼졌을 때
연탄불 관리의 관건은 두 개의 연탄 중 한 개는 무조건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가 꺼지더라도 한 개의 불이 살아 있어야 새 연탄에 불씨를 옮겨 구들장을 차질 없이 덥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타버린 연탄은 꺼내서 버리고 새 연탄을 불타고 있는 연탄 위에 올려 구멍을 잘 맞춰야 불이 쉽게 옮겨붙는데, 연탄불 갈기의 모범적인 유형이다.
연탄불 갈기와 관련해 최악의 상황은 한겨울 밤에 두 개의 연탄불이 모두 꺼지는 경우다. 번개탄을 이용해 새 연탄에 불을 새로 붙여 불씨를 살려야 하는데 이 작업이 여간 번거롭지 않은 데다 시간도 꽤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 연탄불의 수명이 다해갈 때부터 이미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 구들장의 온기(溫氣)는 추운 날씨 탓에 금방 식어버리기 일쑤라 밑불 없이 새 연탄불로 방바닥을 덥히기까지는 하세월이었다.
가뜩이나 웃풍이 센 온돌 난방의 특성상 이런 날 식구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새우잠을 청할 수밖에 없고, 그 원망은 고스란히 집안 살림의 파수꾼,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우리 집에서도 겨울에 어쩌다 한 번씩 연탄불 두 개가 다 꺼진 날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늦은 밤이나 새벽이 아니라 대낮이나 초저녁에 그런 일이 벌어져 별다른 소동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대형참사
연탄불을 갈 때가 됐는데 위아래 연탄이 붙어 있으면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늘 당신이 손수 처리했다. 괜히 나나 형들에게 시켰다가 연탄재는 물론 연탄재 위의 연소(燃燒) 중인 연탄까지 깨뜨리는 대형참사가 벌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형제들은 그런 사고를 한두 번씩은 다 쳤었다.
나와 형들은 수시로 연탄불을 갈았는데 당연히 위아래 연탄이 붙어 있지 않을 때였다. 연탄을 가는 방법은 이랬다.
연탄을 쌓아둔 연탄창고. 맨 아래 가운데에 연탄재가 들어 있는 연탄 통이 보인다. ⓒ메이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연탄불 가는 방법
-연탄집게를 불타고 있는 연탄구멍에 정조준해 집어넣어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게 힘 조절을 해 들어 올려서 아궁이 밖으로 꺼낸 뒤 연탄 통에 넣는다. 연탄 통은 새 연탄이나 연소 중인 연탄, 연탄재를 넣을 수 있도록 철판으로 된 통인데, 손잡이가 달려 있어 들고 옮길 수 있다.
-아궁이 아래쪽의 연탄재도 요령은 같지만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꺼낸다.
-불타고 있는 연탄을 아궁이 속에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얹는다.
-아궁이 구멍을 활짝 연다.
-연탄재가 담긴 연탄 통을 마당 한 구석 외진 곳으로 옮긴다.
#연탄불 갈 때의 주의 사항
주의할 점은 연탄재를 집게로 들어 올리거나 옮길 때 부러뜨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연탄집게를 쥔 손아귀에 순간적으로 너무 세게 힘을 주면 연탄재가 깨질 수도 있다. 수명이 다한 연탄재는 새 연탄이나 연소 중인 연탄보다 외부 압력에 약하다.
드물지만 새 연탄을 얹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연탄집게로 새 연탄을 집어 불타고 있는 연탄 위에 올리는 순간 연탄집게가 물고 있는 새 연탄 부위가 빠지직, 하고 갈라지는 경우다. 연탄 가는 사람의 부주의보다는 십중팔구 불량 연탄이 원인이다.
#엉겨 붙은 두 연탄 떼어내기
어머니가 서로 엉겨 붙은 두 연탄을 떼 내어 갈아야 할 때 처리하는 방식은 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연탄집게로 두 개가 한 몸이 된 연탄 한 쌍을 아궁이 바깥으로 빼낸다. 연탄 두 개를 한꺼번에 빼내야 해 상당한 무게를 감당하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재를 담아 옮기는 도구인 부삽을 연탄 사이 엉긴 부분에 집어넣고 달라붙은 곳을 조심스럽게 떼 낸다. 정확한 목표물 공략과 정교한 손재주가 성패의 열쇠다.
-이때 부삽을 잘못 다루면 다 타서 강도(强度)가 약해진 연탄재가 부스러진다. 두 연탄을 떼 내는 과정에서 연소 중인 위의 연탄까지 깨뜨리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어머니는 부삽 대신 식칼을 이용해 두 연탄을 떼 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식칼의 날카로운 단면이 부삽보다 엉긴 연탄 분리에 우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연탄구멍 맞추기와 연탄 관리
아래위 연탄의 구멍도 최대한 잘 맞춰야 했다. 연탄구멍이 약간이라도 어긋나면 공기 중의 산소와 부딪히는 면적이 작아지고 불완전연소의 가능성이 커져 새 연탄에 불이 잘 옮겨붙지 않았고, 연탄가스도 많이 발생했다. 조감도(鳥瞰圖) 시점으로 연탄을 내려다보는 것이 중요했다.
연탄에 습기가 차 축축해도 연소에 방해가 됐다. 불이 잘 붙지 않아 애꿎은 연탄가스만 잔뜩 뿜어댈 뿐이라 연탄은 항상 바싹 마른 상태로 관리해야 했다.
연탄구멍을 잘못 맞추거나 젖은 연탄을 때는 일은 연탄가스 중독 사고와 직결될 수 있어 어머니가 늘 신중을 다해 살폈다.
연탄의 수명을 다한 연탄재 더미.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연탄재의 존재 가치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연탄재도 쓰임새가 있었다. 연탄재가 존재감을 발휘할 때는 겨울철 골목길이 얼어붙었을 때다. 빙판이 심하게 진 길 위에 연탄재를 던져 놓고 부삽으로 부순 뒤 이쪽저쪽으로 골고루 흩뿌리면 거짓말처럼 걸어 다니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연탄재는 아이들에게도 쓸모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좁은 골목에서도 축구공을 차고 놀았는데 연탄재 두 개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골대로 삼곤 했다. 축구공에 강타당한 연탄재 골대는 아주 당연히 장렬하게 산화하는데, 최후의 순간에 토해내는 먼지가 골목길을 뿌옇게 만들어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에게 혼도 많이 났었다. 연탄재 먼지가 옷을 더럽히면 세탁할 수밖에 없어 어머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진 연탄이다. 연탄은 사라져도 연탄과 함께 살았던 시절의 추억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