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6. 손 편지의 미학(美學)

by 박인권

손 편지의 미학(美學)


#기억 속에 박제된 손 편지

손 편지가 대세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외 겸용 공중전화가 드물고 각 가정에 설치된 유선전화가 유일한 개인 간 통신 수단이었던 때 손 편지는 의사소통의 버팀목이었다. 인터넷의 상용화로 손 편지가 이메일로 대체된 데 이어 휴대전화인 스마트폰이 인류 보편 필수품으로 정착된 지금, 손 편지는 기억 속에 박제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재질과 디자인에 예술적 흉내를 낸 고급스러운 편지지는 여전히 눈에 띄지만 특별한 용도로만 소비될 뿐,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보편적 공감 창구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다.


강릉 안목해변 백사장 위에 설치된 빨간 우체통. 눈요기용 조형물이 아니라 실제 기능을 하는 진짜 우체통이다. ⓒPARK IN KWON


#빨간 우체통과 우체국, 집배원

거리 곳곳에 빨간 우체통이 즐비했고 우체국의 위상이 남다르던 시기에 손 편지의 수요는 넘쳐났다. 시내 우편, 시외 우편, 국제 우편이 일상이던 시절 이야기다. 손 편지에 울고 웃던 그때 편지지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 있었고 인간 군상들의 희로애락이 개성 넘치는 육필(肉筆)로 그려져 있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나 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우체통을 바라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졌고 잰걸음으로 골목길을 누비던 집배원(集配員) 아저씨는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반가운 전령사였다.


#경북 안동에서 만난 친구들

내가 손 편지에 눈을 뜬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손 편지의 실체는 아주 우연한 때에 특별한 계기로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뜻하지 않게 한꺼번에 친구 3명이 생기면서 나와 손 편지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친구들은 학교 친구도,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대구 밖 외지(外地)에 사는 친구들을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촌 누나 때문이었다. 나에게 그 친구들은 손 편지에 깃든 감미로운 추억과 풋풋한 우정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왕래가 끊긴 지 하세월인데도 여전히 내 마음속 그리움의 창고에는 그들과 다진 10대 때의 낭만적 친교(親交)가 보석상자처럼 머물고 있다. 낭만적 친교가 시작된 날은 1974년 8월 15일이었다.


그날 이른 아침 나는 처음으로 혼자 시외버스를 탔다. 방학이라 평소 친누나처럼 따르던 위로 띠동갑에서 한 살 더 많은 사촌 누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평소 학교 가듯이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표를 끊고 1시간 30분 걸려 목적지에 다다랐다. 목적지, 경북 안동의 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버스로 통학했다.


처음 보는 낯선 고장,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사촌 누나가 마중 나와 있었다. 사촌 누나는 안동의 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누나와 함께 누나가 재직 중인 학교로 갔다. 누나는 그날 당직이었다. 방학이라 운동장과 교실이 텅 비어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의 연락을 받은 내 또래 남학생 3명이 내 앞에 섰다. 안동 친구들과의 첫 만남 순간이었다.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형태의 편지지. ⓒPARK IN KWON


#1974년 8월 15일

모두 같은 학년이었던 우리는 누나의 소개로 즉석에서 친구가 됐다. 당직실에 켜둔 TV에서는 광복절 기념행사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통성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V에서 난데없는 총소리가 나고 생중계 화면이 잠시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잠시 후 재개된 방송 결과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8 · 15 광복절 기념식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임이 밝혀졌다. 오전 10시 30분이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다음날 안동 친구 3명 중 한 명과 안동시청 강당에 마련된 육영수 여사 합동 분향소에 들로 조문한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 처음부터 의기가 투합된 친구였는데 나를 손 편지의 세계로 이끈 당사자였고 친분도 제일 두터웠다.


안동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재미난 일이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누나가 재직하던 학교 근처의 다리 아래 낙동강 변에서 안동 친구들과 멱감던 일이다. 난생처음 강물에 들어가 본 나는 헤엄을 칠 줄 몰라 수심이 발목을 넘지 않는 강 언저리만 맴돈 반면 그 친구들은 물개처럼 능수능란하게 헤엄을 치며 수영 솜씨를 뽐냈다.


안동 친구 중 한 명이 과수원집 아들이라 청포도도 그때 처음 맛봤다. 청포도가 흔한 요즘과 달리 그때 청포도는 귀하고 비쌌다.


아트 상품 스타일로 제작된 세련된 디자인의 편지지와 편지 봉투. ⓒPARK IN KWON


#손 편지로 이어진 우정

대구로 내려간 뒤 조문 동료와의 우정은 손 편지로 이어졌다. 기껏해야 크리스마스카드나 근하신년 카드, 의례적인 전방부대 위문편지나 썼던 내가 손 편지의 낭만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 친구와는 한 달에 한두 차례 손 편지를 주고받았고 둘 사이의 손 편지 가교(架橋)는 중학교 때까지 계속됐다.


나도 담임선생의 지시로 위문편지를 여러 번 썼지만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알 리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위문이 될 수 있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권위주의 통치가 우선시되던 시대 상황일 때라 알고도 따랐고 모르고도 따랐다.


집사람이 중고등학교 때 모은 우표가 담긴 우표수집 앨범. 전직 대통령들의 취임 기념우표가 보인다. ⓒPARK IN KWON


#펜팔 친구와의 선의의 경쟁

그 친구의 손 편지 필체는 남달랐다. 글씨의 모양새가 질서 정연하고 예뻤을 뿐 아니라 편지를 보낼 때마다 글꼴을 달리해 악필이나 다름없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내 딴에 모나미 볼펜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정서(正書)로 정성껏 쓴다고 썼는데도 그 친구의 필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차피 필체의 힘으로는 그 친구를 넘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나는 대신 편지의 내용과 양으로 자존감을 세우기로 하고 매번 편지지 두세 장 분량을 빼곡히 채웠다. 나의 노림수를 모를 리 없던 그 친구도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편지를 보내와 우리는 한동안 서로 편지지 더 많이 채우기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강조하고자 한 부분의 글자 색 또는 글꼴을 달리하기도 했고, 밑줄을 긋는 방식도 더러 사용했다.


6 · 25 기념우표(왼쪽)와 각종 기념일에 즈음해 발행한 우표들. ⓒPARK IN KWON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을 살찌운 고마운 손 편지

어쭙잖게 청록파 시인의 시구(詩句)를 갖다 붙인다거나 문학 작품 속 구절을 베껴 쓰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치기(稚氣) 어린 경쟁심이 아주 소득이 없던 것만도 아니었다. 인용할 만한 명문(名文)을 골라내기 위해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는 행보(行步)가 쌓이면서 나름의 독서 습관에 눈을 뜨게 됐다거나 한 글자 한 글자 필사(筆寫)의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알게 모르게 체화(體化)된 보잘것없으나마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안동 친구와의 손 편지 우정은 그런 점에서 중학 시절 내내 나를 채찍질한 유의미한 시간이었고 사춘기 소년의 어설픈 감수성을 살찌운 신선한 자극제였다.


#기다림의 미학(美學)

손 편지의 또 다른 매력은 기다림의 미학에 있었다. 애틋한 마음을 글자에 실어 보내는 손 편지를 띄운 뒤 답장이 올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움, 세 글자가 지배했다. 회신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 편지함에서 꺼내든 답신 편지 겉봉을 찢은 뒤 편지지 맨 위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의 설렘, 보내온 사연의 맨 마지막 문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의 아쉬움과 긴 여운.


결핵 퇴치 기금 모금을 위해 1990~1991 크리스마스 시즌 때 발행한 크리스마스실. ⓒPARK IN KWON


#우표의 존재감

손 편지 시대에 덩달아 존재감이 드러난 대상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표(郵票)였다. 편지나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서는 우편 요금 납부의 증표인 우표를 편지 봉투나 우편물 겉면에 반드시 부착해야 했다.


우표의 종류도 다양했다. 체신업무용 보통 우표, 특정한 날이나 인물을 기리는 기념우표, 국제행사 개최에 맞춰 발행하는 이벤트 우표,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해외에서 발행된 국제 우표 등이 있었다. 손 편지와 더불어 일상적으로 유통되던 우표는 취미활동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이름하여 우표 수집인데 국내외의 진귀한 우표만 따로 모아 개인 자산으로 소장하거나 우표 수집상에게 비싼 값에 되팔기도 했다. 그 시절 웬만한 청소년들은 우표수집 앨범 한 권쯤은 다 갖고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모두 지나간 추억, 망각(忘却) 속에 묻힌 지난 시절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이전 05화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