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이었다. 가부장적(家父長的) 질서가 엄격했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불문율과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적 전통이 일상을 지배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책임, 대의명분(大義名分)을 감히 거스를 수 없었고 그것이 곧 미풍양속으로 칭송받던 시절이었다.
성장기 청소년들의 배움과 수양의 현장, 학교에서도 지도 편달이라는 이름으로 주입식 교육이 만연했다. 상명하달식 일방통행 방식은 학습 과정과 교내 생활, 가정 통신의 영역을 망라했다. 품행이 방정(方正)해야 했고 지시 사항이나 학교 방침을 어기면 어김없이 체벌과 벌세우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특단(特段)의 벌칙, 부모님 호출(呼出)
지도 편달 방식 중 학생들이 가장 싫어한 것이 있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학교에 오라는 담임선생의 엄명(嚴命)이 떨어질 때였다. 부모님 호출은 해당 학생이나 부모님 모두에게 망신스러운 일로 학교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특단(特段)의 조치가 필요할 때 시행하는 엄중한 벌칙이었다.
가령 월례고사 성적이 급전직하(急轉直下)했을 때나, 무단결석(無斷缺席)했을 때, 커닝 행위가 누적 적발됐을 때, 비행(非行)을 저지르거나 풍기문란(風紀紊亂) 일제 단속에 걸렸을 때 등이다. 부모님이 학교로 출동하는 벌칙은 당사자인 학생 본인은 그렇다 치고 부모님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 학교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비상 수단으로만 내밀었다.
친환경 해충 격멸 도구인 파리채. 손잡이가 굵은 구리철사로 처리된 게 특이하다. ⓒEdward Bett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범국민적 시책 독려 운동, 캠페인
캠페인이라는 타이틀로 범국민적 시책(施策) 독려 운동이 성행했고, 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여름철 파리 · 쥐 잡기 운동과 겨울철 불조심 캠페인이었다. 학기마다 학급 대표들이 나서 열변을 토한 의례적인 웅변대회도 열렸다.
캠페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전 학년을 대표하는 전교 어린이회장을 뽑는 선거에 치맛바람이 불어 순진무구한 동심(童心)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파리 · 쥐 잡기 운동
초등학교 1학기 마지막 수업 날, 16절지 갱지에 등사기(謄寫機)로 복사한 여름방학 과제물 항목에는 생뚱맞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파리 잡기와 쥐 잡기였다. 파리 잡기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날 할당된 파리 수를 채워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내 기억으로는 5학년과 6학년 여름방학 후 파리 사체(死體) 100마리씩을 냈던 것 같다.
파리와 쥐가 여름철 가정 위생 저해의 주범이었던 때라 둘은 퇴치(退治)와 박멸(撲滅) 대상이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파리가 귀찮게 굴지만 그때 가정집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이라 파리 떼가 들끓었고, 기와집이 많았던 가정집 부엌과 마당이 연결된 구조라 음식물 위생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파리 떼는 마당과 부엌 안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방학 과제와 상관없이 어차피 파리는 가정마다 때려잡아야 할 공공의 적이었다. 집안 곳곳에서 파리가 극성을 부릴 시절이라 파리채로 100마리 잡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옛날식 파리채의 일반적인 형태. ⓒKnowledg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파리와의 전면전
아이들 모두 여름방학 숙제를 귀찮아해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서야 부리나케 파리와의 전면전(全面戰)을 펼치곤 했고 나도 그랬다. 전면전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집안 곳곳에 파리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포획 범위가 넓게 고루 퍼져 있었고 일단 적발되면 원, 샷(one shot) 원, 킬(one kill) 방식의 저격수 타법으로 공격 성공률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저격수 타법은 파리가 앉아 있는 자리 20cm 이내까지 바짝 다가간 뒤 파리채 손잡이를 짧게 거머쥐고 넓은 파리채의 가운데 부위가 목표물을 강타하도록 공략하는 것을 말한다. 사정거리를 좁혀 파리가 도망갈 여지를 없애고 명중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친환경 해충 격멸 도구, 파리채
팔과 손의 힘, 즉 운동 에너지를 이용해 파리의 몸통을 내려치는 친환경 해충 격멸(擊滅) 도구인 파리채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세 가지의 과학적인 근거가 숨어있다. 덮칠 때 공기의 저항력을 줄여 바람 소리에 파리가 눈치채는 것을 방지하고 빠르게 과녁에 명중토록 해 파괴력을 증대시키며 공격 순간에 발생하는 호쾌한 타격음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효과가 있다.
가끔 비행 중인 파리를 파리채로 후려쳐 잡을 때도 있는데 감을 잡을 수 없는 운이 따라야 해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파리는 마룻바닥에도 앉았고 방안 벽에도 매달렸고 천장에도 거꾸로 붙어 있었다. 두세 마리의 파리가 몰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띌 때도 있는데 십중팔구 과자 부스러기나 음식물 찌꺼기가 떨어진 곳이다. 일망타진(一網打盡)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파리를 잡고 나면 꼭 피살(被殺) 흔적이 남는다. 파리채의 타격 충격에 내장이 터지고 체액이 흘러나와 벽지나 바닥에 얼룩이 지는데 휴지나 걸레로 닦고 치워야 했다.
옛날식 파리채는 팔과 손의 힘, 즉 운동 에너지를 이용해 파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요즘에는 건전지를 동력으로 한 전자 파리채가 일반적이다. ⓒPARK IN KWON
#쥐약과 쥐덫
쥐 잡기는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할 할당량이 없었고 퇴치 독려(督勵) 차원에서 살서제(殺鼠劑)인 쥐약을 학생들에게 무상(無償)으로 제공했다. 오폐수(汚廢水) 처리 및 상하수도 시설 인프라가 취약했고 도시 가옥(家屋) 형태가 마당이 있는 기와집이나 양옥(洋屋) 따위의 개별 주택이 일반적이어서 서생원(鼠生員)들이 날뛸 때였다.
가정에서 쥐를 잡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쥐약을 놓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 채로 쥐를 잡는 덫을 놓는 것이었다. 쥐약을 놓는 장소는 쥐가 자주 드나드는 곳인데 음식물 속에 쥐약을 섞어 유혹했다. 부엌 출입문 아래, 수챗구멍 근처, 장독대 올라가는 계단 밑 등이 그런 곳이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냄새에 홀려 멋모르고 쥐약 섞인 음식물을 덥석 삼켰다가 대신 황천(黃泉)길로 떠나는 어이없는 일도 더러 있었다.
#쥐덫의 형태, 포획 우리식
집 집마다 쥐덫 한두 개씩은 다 있었고 우리 집에서도 쥐들이 심심찮게 쥐덫에 걸려들었다. 쥐덫의 형태는 대개 포획 우리식과 쥐틀형, 걸쇠형, 세 가지였다. 철삿줄을 촘촘하게 엮어 그물망처럼 만든 포획 우리식 덫은 산 채로 쥐를 생포하는 방식이다. 쥐가 덫 안쪽 깊숙이 놓인 미끼를 물어 당기는 순간 미끼에 연결한 줄이 팽팽하게 수축하면서 덫 위에 걸쳐진 문이 닫히는데 한 번 갇히면 다시는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밤새 발버둥 치는 쥐의 몸부림에 쥐덫이 쓸려나가 엉뚱한 곳에 처박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끈을 연결해 기둥 못에 단단히 고정하곤 했다.
쥐틀형은 미끼가 올려진 부분을 쥐가 누르면 양옆으로 누워 있던 쇠틀이 철커덕, 하고 잠기는 방식으로 쥐를 잡는 덫이다. 우리 집에서는 쥐틀형 덫을 주로 사용했다.
걸쇠형 쥐덫.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걸쇠형 덫
걸쇠형 덫은 네모진 나무판 위에 방아쇠가 달린 철제 스프링을 설치한 형태다. 쥐가 나무판 위에 올라가 미끼를 물다가 방아쇠를 건드리면 ‘ㄷ’자 모양의 철제 스프링이 쥐를 후려갈기는 원리다. 머리나 목 부위를 정통으로 맞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질식사한다. 허리 부분이 심하게 눌려 헐떡거리거나 다리가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일도 잦다.
눈치 백 단의 아주 약삭빠른 놈은 나무판 가장자리에서 살금살금 접근해 주둥이만 내밀어 미끼를 반쯤 파먹고 달아날 때도 있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쥐새끼가 아닐 수 없다.
식탐 때문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걸쇠형 덫에 놓인 쥐잡이용 미끼를 탐내다가 한쪽 발끝이 걸려 울부짖고 난리를 치는 강아지도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골칫덩어리, 사체 처리
사체(死體)로 발견된 쥐는 동네 공터의 땅을 파고 묻어 처리했지만 생포하거나 중상을 입은 놈은 처치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다루는 방식이 잔인하고 가학적이라 구체적인 처리 방법은 상상에 맡기겠다.
초등학교 등굣길에 한 점포 앞을 지나다가 덫에 생포된 쥐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됐는데,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