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관람한 동시상영 극장 영화의 백미(白眉)는 전설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Bruce Lee, 1940년 11월 27일~1973년 7월 20일) 주연 작품들이었다. 맨 처음 본 이소룡 영화는 정무문(精武門, 1972년 개봉, 한국 상영은 1973년 7월 27일)으로 영어 제목은 Fist of Fury, 직역하면 분노의 주먹 또는 분노의 철권(鐵券)쯤 되겠다. 필살기(必殺技)의 펀치력을 자랑하는 이소룡의 무술 실력에 비춰봤을 때 분노의 철권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정무문은 이소룡이라는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액션 스타의 이름을 국내에 상륙시킨 효시(嚆矢) 작이다. 이소룡의 액션영화 주연 데뷔작은 1971년에 개봉한 당산대형(唐山大兄)이나 국내 개봉은 정무문이 73년 7월 27일, 당산대형이 73년 10월 28일로 정무문이 3개월 빨리 수입 상영됐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11일 홍콩문화박물관에서 전시한 정무문 영화 포스터. 정무문은 이소룡이 주연으로 출연한 1972년 개봉 영화다. 국내 팬들에게 처음 공개된 이소룡 주연 영화로 이소룡 열풍의 계기가 됐다. ⓒRroame LaOcM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쌍절곤과 플라잉 킥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정무문에서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 스타일의 교본(敎本)으로 각인된 쌍절곤 돌리기와 정권(正拳) 내지르기, 공중으로 날아올라 옆으로 발차기하는 일명 플라잉 킥을 완전체(完全體)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무술 영화의 새 시대 개척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계의 뉴페이스로 떠올랐다.
정무문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촌 형과 큰형, 둘째 형, 나 넷이 어울려 함께 봤는데 테이크 백 동작 없이 겨드랑이 쪽에서 곧장 직선으로 주먹을 날리는 정권(正拳) 내지르기에 상대 몸이 뒤로 쭉 밀려 나가는 파괴력에 놀랐고 상대가 속절없이 튕겨 나가는 현란한 발차기에 놀랐고 몸의 일부 인양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쌍절곤 묘기에 또 놀랐다.
여섯 살 때 이소룡의 모습.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소룡의 발차기 기술
정무문에서 본 이소룡의 발차기는 남달랐다. 옆차기, 올려 차기, 뒤차기, 한발 들어 내려찍기 등 기본적인 타격 유형은 그렇다 치고 장애물 딛고 날아 차기, 양발 차기, 한발 연속 차기에 이르면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다가 돌려차기에 이은 필살기(必殺技) 플라잉 킥으로 승부가 끝나면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발차기의 새로운 경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이소룡은 한 인터뷰에서 파괴력의 크기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순간 스피드, 기(氣)와 정확성에 좌우된다고 말한 바 있다.
#무술을 무예로 승화시킨 이소룡
무엇보다 이소룡 무술의 매력은 전(前)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스텝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발놀림과 가격할 때마다 내지르는 묘한 괴성에다 역삼각형 상체의 끝판왕이랄 수 있는 조각형 근육 체형에 있다.
이소룡의 다이내믹한 액션은 힘과 기술로 싸우는 무술(武術)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술에 율동미와 신체적 아름다움을 녹여 예술로 승화시킨 무예(武藝)라고 할 수 있겠다.
이소룡은 키가 171cm로 근육의 크기, 용적(容積)이 아담한 대신 근육의 밀도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몸으로 유명하다. 특히 두 팔을 위로 들고 보디빌더 자세를 취했을 때 등 뒤를 덮고 있는 넓은 삼각형 형태의 광배근(廣背筋)은 이소룡 근육의 상징이다.
상체 근육의 압도적인 질적 우수성과 균형미, 잘록한 허리에서 비롯된 두드러진 역삼각형 몸매가 마치 조각 작품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훈련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유일무이한 체형이 아닐 수 없다.
18살 때 아버지와 무술 훈련 중인 이소룡(오른쪽).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각인된 이소룡
정무문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이소룡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영화 상영 일주일 전 의혹투성이의 죽음을 맞은 그의 짧고 굵은 행적까지 더해져 열풍은 광풍(狂風)으로 몰아쳤다. 눈이 호강스러운 이소룡의 액션 연기는 술자리 단골 소재거리였고, 가뜩이나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경쟁적으로 이소룡 흉내를 내기에 바빴다.
섬에서 열리는 토너먼트 무술대회를 소재로 한 박진감 넘치는 용쟁호투(龍爭虎鬪)는 이소룡의 사망 직후 개봉했는데 73년 12월 국내에 상영되면서 이소룡은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뿌리내렸다. 용쟁호투는 이소룡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히트작이다.
이소룡의 유작 영화 사망유희(死亡遊戲)에 등장한 노란색 유니폼에 대한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상영된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착용한 노란색 유니폼은 요즘 유행어로 굿즈였다.
당대 최고의 무술인이자 액션 스타였던 이소룡의 전성기 때 모습.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 치기(稚氣)에 감전된 초등학생의 일탈
초등학교 6학년 때 멋모르고 일탈(逸脫)을 한 경험도 있다. 극장 이름이 지금은 없어진 남도 극장이라고, 소규모 동시상영 극장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귀신에 씌었는지 머리를 획, 하고 스치는 영화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며칠 전에 우연히 길거리 영화 홍보 포스터에서 본 여감방(女監房) 시리즈 제2탄 ‘혼혈아 쥬리’라는 타이틀이었는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였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무작정 버스를 타고 영화관을 향했다. 휴일이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매표소 앞은 한산했고 표를 끊은 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들어가는데 걱정과 달리 제지를 받지 않았다.
*처음 본 19금 영화
영화는 이미 시작됐고 누가 볼까, 불안한 마음에 뒷자리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 접한 19금 영화는 끈적끈적했다. 영화 제목처럼 여감방이 무대였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 하나하나가 선정적이었다. 여 죄수들의 복장이 초미니스커트라 엎어져서 여자 간수(看守)에게 끌려 나갈 때 아슬아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와 아찔했는데, 난생 처음보는 장면이 야릇하고 낯설면서도 결국엔 알게 될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것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배우 출신 청춘스타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어머니의 불륜 행각을 참다못해 사고를 치고 감방에 갇힌 주인공이 혼혈아인 동료 죄수의 도움으로 탈출해 불륜남을 살해한다는 줄거리였다. 주연(主演) 여배우는 훗날 모 재벌그룹 총수와 사실혼 관계인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 못 할 치기(稚氣)에 감전돼 본의 아니게 일찌감치 19금 영화에 눈떴다고나 할까. 세월이 한참 흘러 대학교 때 후문 근처에 있던 영화관을 찾은 것이 동시상영 극장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