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3. 체벌(體罰)에 대하여

by 박인권

체벌(體罰)에 대하여


#구시대의 유물, 체벌

구시대의 유물, 용도폐기 된 지 오래인 체벌(體罰)에 관한 기억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현장의 체벌 관행은 딴 세상 이야기다. 명색이 선진국의 상징이라는 30-50(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 클럽의 7번째 국가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학생 인권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한참 전인 한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사정은 영 딴판이었다. 나처럼 70년대에 초중고를 다닌 구세대들에게 체벌은 날마다 반복된 일상이었고 그 또한 시대적 산물이었다.


우리 사회와 국민 의식 속에 뿌리내린 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 앞에서 인권 유린의 다른 이름인 체벌은 스스로 수명을 다하고 자취를 감췄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기승을 부리고 활개를 쳤었다.


#70년대 학교 현장 체벌은 공공연한 관행

그때 체벌은 교사나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학생을 학생답게, 교육을 교육답게 만드는 일반적이고 공공연한 지도 편달 방법이었다. 국민 의식 속에 교사의 체벌이 인권을 침해하는 반민주(反民主), 반인권(反人權)에 물든 봉건적 교육 악습이라는 사고 대신 학생을 바른길로 가도록 가르치고 이끌며 격려하는 방편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육체적 고통을 가하고 벌을 세우는 가혹 행위가 참교육과 올바른 학생 교육의 불가피한 관습으로 묵인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어느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벌 교육의 현실을 실감했다. 발단과 사정을 기억나는 대로 되살리면 이렇다.


#난생처음 따귀 체벌의 충격

자습 시간이었다. 옆자리 친구와 사소한 실랑이 끝에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우리 둘을 교단 앞으로 불러냈다. 선생님은 다짜고짜 나와 친구의 뺨을 한 대씩 올려붙였다. 어릴 때 집에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아본 적은 있지만 뺨을 맞기는 난생처음이라 놀라움과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신이 얼얼하면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잘못이라고는 친구와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학습 분위기를 흐렸다는 것일 텐데 그렇다고 뺨을 맞을 정도로 엄중한 과오(過誤)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에게 말대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라 입을 꾹 다물고 훌쩍거릴 뿐이면서도 억울한 심정이 끓어올랐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이 눈앞에 선한데, 열한 살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체벌의 무게가 너무 벅찼다. 나만의 비밀에 부친 이 일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어 갔지만 슬픈 기억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지가지인 체벌의 이유와 다양한 체벌의 유형

체벌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고 체벌의 유형도 다양했다. 체벌의 일상은 초중고를 망라했는데 중고교 때가 특히 심했다. 숙제 안 해왔다고 혼나고 수업 시간에 떠들었다고 혼나고 교과 준비물 빼먹었다고 혼나고 시험 성적 나쁘다고 혼나고 혼식 지침 안 지켰다고 혼나고 지각했다고 혼났다.


체벌의 이유 중 사춘기 학생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도 있었는데 기성회비(期成會費)를 제때 내지 못했다고 혼날 때가 그랬다. 그때는 개인 프라이버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학생들의 사생활이나 집안 형편도 공공연하게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기성회비는 1997년 전면 폐지됐다.


*간접 체벌, 벌세우기 또는 얼차려

혼나는 방법 중 비교적 젊잖은 것으로는 간접 체벌인 벌세우기인데 제자리에서 일어서 있기, 책상 위에 무릎 꿇기, 교단 앞으로 나가 두 손 올려 무릎 꿇기와 엎드려뻗치기 등이 있었다.


*직접 체벌

회초리나 지휘봉 굵기의 몽둥이를 이용한 체벌은 손바닥 때리기와 엉덩이 매질이 일반적이었고, 손등 때리기와 머리를 가격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벌어졌다.


손바닥 때리기는 따끔했고 엉덩이를 맞을 때는 묵직한 통증이 지속돼 맞고 나서도 한참 동안 얼얼했다. 손등 때리기는 손가락 뼈마디를 매로 가볍게 톡톡 내리치는 식인데 강도가 약해도 뼈를 직접 타격하는 방식이라 맞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몽둥이로 1~2회 머리를 얻어 맞으면 ‘깡’,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순간 충격이 강하게 전해오는데 통증의 여운이 길고 혹이 생겼다.


체벌 중 분노 지수가 가장 높은 게 따귀 세례였다. 때리는 선생님은 감정이 격해 있었고 맞는 학생은 육체적 통증보다 모욕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뜻밖의 봉변과 즉결 처분

수업 도중 선생님에게 농담 섞인 말대꾸를 하다 봉변을 당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생물 시간에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흰소리를 늘어놓다가 느닷없이 따귀 세례를 받아 학급 동료들 모두 놀라기도 했었다.


학년별로 엄하기로 소문난 교사가 한두 명은 꼭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사 담당 선생님이 그랬다. 국사 선생님은 손수 제작한 굵고 긴 몽둥이를 항상 소지하고 다녔는데 복도에서 잘못 걸리면 어김없이 머리를 한 차례 강타당했다. 즉결 처분 대상은 복장 불량이나 두발(頭髮) 상태 불량, 운동화를 꺾어 신었다가 걸린 경우를 말한다.


멋 부린다고 구레나룻을 기른 학생이 국사 선생님 눈에 띄어도 망신을 당했다. 국사 선생님은 양쪽 구레나룻 끝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쥐고 위로 쭉 뽑아 올리는데 당해본 나로서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구레나룻이 위로 꺾여 올려질 때는 조건반사적으로 발뒤꿈치를 들게 되는데, 본능적 반응일 뿐 체감 고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복과 교모 착용은 물론 머리 스타일도 빡빡머리, 빡빡머리보다 눈곱만큼 긴 이부 머리, 스포츠형 따위로 복장 및 외모 규율이 엄격할 때였다. 학생들은 스포츠형을 가장 선호했는데 허용 여부는 학교장 재량이었다.


#불시 책가방 검사

불시(不時) 책가방 검사도 있었다. 학교에서 한 번씩 시행하는 책가방 검사는 특정 과목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학년 주임 선생님이나 체육 또는 교련 선생님이 입실하자마자 다음 구호(口號)를 신호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금부터 책가방을 책상 위에 올린다, 실시!’


책가방 속 음란물이나 만화책, 담배 따위가 단속 대상인데 걸리면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대가를 치르는 방법은 체벌 중 강도가 가장 센 것이었고 반성문도 제출해야 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굴린다고 소지 금지 품목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거나 교복 호주머니 또는 양말이나 신발 속에 감춰봤자 학생들 꼼수를 훤히 꿰고 있는 단속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체벌이 아니면서 체벌보다 골치 아픈 사례

체벌이 아니면서 체벌보다 더 골치 아픈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껌 씹다가 적발될 때인데 고약한 성품의 선생님에게 걸리면 껌을 머리카락에 강제로 부착하는 벌이 내려졌다. 알다시피 껌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으면 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때 학생들이 많이 사용한 해결 방법은 얼음으로 껌을 얼려 굳힌 뒤 빗이나 칫솔로 벗겨 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난데없이 얼음을 구할 수도 없는 데다 생각만큼 깔끔하게 껌이 제거되지도 않아 머리를 다시 깎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재수 없는 날과 단체 벌서기

얼떨결에 변고(變故)를 당하는 재수 없는 학생도 있었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은 가끔 칠판에 문제를 판서(板書)한 뒤 무작위로 지명을 해 풀게 했는데, 풀이 내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고 공부 좀 해라, 이놈아, 공부!’, 하면서 영락없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개인 체벌과 함께 단체 벌서기도 횡행했다. 단체 벌서기는 개인의 잘못과 책임을 집단에 묻는 것인데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가 지극히 불량할 때, 과제물 실적이 다른 반보다 크게 못 미칠 때, 학급 평균 시험 성적이 전교 꼴찌권일 때 그랬다.


첫 번째 벌은 주로 단체로 제자리에 서 있기였고 두 번째 벌은 정해진 양에 가중치가 매겨진 과제물 떠안기였다. 학급 평균 성적 불량에 대한 벌은 방과 후 특별 자습이었다.


학생 인권 보호와 교권(敎權) 확립 간 불균형이 심각한 사회적 이슈인 시대 상황에서 빛바랜 학창 시절의 화석화된 체벌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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