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1. 버스 통학(通學)과 자전거 통학 (上) 버스 통학

by 박인권

버스 통학(通學)과 자전거 통학 (上) 버스 통학


#생애 첫 버스 통학

내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처음으로 학교에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학교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던 우리 집이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이사(移徙)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대구 시내 중심가 학교까지는 4km 남짓 거리라 걸어서 통학할 수는 없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남대병원 근처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걸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정류장에서 걸어서 교실에 도착하는 시간을 다 포함해서다. 이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학군제가 지금과는 판이(判異)해 버스나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2년간은 버스로, 중고교 때는 버스와 자전거를 번갈아 가며 통학했다.


수도권 지하철 노선이 23개나 되는 요즘에도 목적지 접근성이 뛰어난 버스의 유용성은 여전하다. ⓒPARK IN KWON


#버스 통학 첫날과 지각

맨 처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날, 긴가민가하다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린 기억이 있다. 요즘처럼 ARS 안내방송이 있을 리 만무했고 버스 안내양이 육성으로 승하차 안내를 했다. 안내양의 목소리는 버스 엔진 소음과 승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힐 때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각별한 주의는 차창 밖을 예의 주시하며 승객 스스로 내릴 곳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인데 잠시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에 하차 정거장을 놓치기 일쑤였다. 어머니와 예행연습을 한 보람도 없이 나 홀로 버스 통학 첫날, 보기 좋게 지각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신신당부를 주문처럼 외고 있었지만, 차창 밖 풍경이 아직 눈에 익지 못한 이유가 컸다.


버스 요금 지불 시스템이 자동화된 요즘과 달리 옛날 버스에는 현금과 버스표를 받는 안내양이 따로 있었다. ⓒPARK IN KWON


#만원 버스와 하차(下車) 요령

등교 시간 버스 안은 늘 만원(滿員)이었다. 입석(立席) 승객들 사이에 끼어 버스 안에 머문 시간 내내 몸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는데 믿는 구석이라고는 딱 하나, 좌석 등받이 위에 부착된 손잡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하차(下車)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책가방을 든 채 꽉 들어찬 사람들 틈을 비집고 승강문(乘降門) 앞까지 돌진하기까지는 다부진 몸싸움과 뚝심이 필요했다. 나보다 한 뼘 이상 키가 큰 승객 숲을 헤쳐 나가는 데에는 나름의 요령이 필수적이었다.


책가방을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상체를 좌우로 비틀면서 요리조리 길을 뚫어야 했다. 백 팩 형태가 아닌 손으로 드는 책가방 간수가 특히 중요했다. 급한 마음에 책가방을 손에 쥐고 하차를 시도하다가는 가방이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마을버스 좌석 등받이. 등받이 윗부분이 손잡이 형태로 설계됐다. ⓒPARK IN KWON


#김칫국물 유출 사고

버스 통학에 익숙해지고 나서부터 늘 한 정거장을 앞두고 미리 나갈 길을 튼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차를 위한 몸부림을 치다 보면 흔하게 겪는 일이 있다. 책가방 속에 든 도시락 반찬통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뒤집혀 급기야 김칫국물이 반찬통 밖으로 새 나와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책가방에 밴 김치 냄새는 엎질러진 반찬통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즈음에야 없어졌다.


#버스 기사의 고의적인 지그재그 운전

당시 버스 기사들은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노골적으로 위압 운전을 일삼았다. 위압 운전은 승강장 쪽에 몰린 승객들을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수시로 지그재그 운전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버스 방향이 크게 한 번 휘청일 때마다 승객들은 아우성을 질렀고 그 소리와 함께 승강장 쪽 승객들은 버스 기사의 의도대로 안쪽으로 쓸려갔다.


승차 문과 하차 문이 분리된 요즘 버스와 달리 옛날 버스는 타고 내리는 문이 하나였다. ⓒPARK IN KWON


#버스 안 소매치기 사건

등굣길과 출근길 만원 버스는 승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었다. 승객들끼리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는 사이 소매치기 일당 중 한 명이 바람을 잡고 다른 한 명이 양복 안주머니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슬쩍 빼내거나 날카로운 면도칼로 핸드백을 그어 지폐 뭉치를 꺼낸 뒤 바로 하차해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식이었다.


지갑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승객이 “소매치기다.”라고 고함을 치는 일도 자주 있었고 그럴 때 버스 기사는 가까운 파출소나 경찰서로 곧장 버스를 몰았다. 나도 소매치기 피해를 당한 버스 안에 갇힌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소매치기 일당은 십중팔구 현장을 떠나고 없어 피해자는 울고불고 다른 승객들은 애꿎은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만원 버스 소매치기 사건은 70년대 신문 사회면에도 심심찮게 보도된 가십거리였다.


CCTV와 곳곳에 장착된 알림 벨, 소화기 설치 등 버스 내 환경도 옛날 버스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PARK IN KWON


#교모(校帽) 지키기

등교 버스 안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일상(日常)은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두 가지 점이 초등학교 때와 달랐다.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고 선 사람들과 앞을 뚫어 내리려는 사람들 간의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몸싸움 끝에 교모(校帽)가 벗겨지거나 교복 상의(上衣) 단추가 뜯겨 나가는 일은 그 시절 흔한 풍경이었다.


새로 달면 그만인 단추와 달리 교모 분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 손에 너나 할 것 없이 교모가 쥐어져 있는 모습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본능적 방어 심리의 발로(發露)였다.


하차 공간에 설치된 손잡이 겸용 지지대에도 카드 결제 단말기와 알림 벨이 부착돼 있다. ⓒPARK IN KWON


#운전석 옆 엔진룸

옛날 시내버스에는 요즘 버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운전석 오른편으로 널찍한 사각형 모양으로 돌출한 구조물인데 엔진룸이었다. 복잡한 버스 안에서 걸터앉기도 했고 물건을 놓기도 한 고마운 존재였다. 한겨울에 엔진룸 위에 앉으면 엉덩이가 따뜻했고 부르르 떨리는 진동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싫지 않았다.


#훈훈한 풍경, 책가방 받아주기

날마다 시달리는 고달픈 만원 버스 안에서도 인정미 넘치는 훈훈한 장면이 있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빽빽한 버스 안의 최대 걸림돌은 책가방이었다. 자식뻘 되는 학생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제 자식 인양 기꺼이 손을 내미는 아저씨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씨는 내 머릿속에 아름다운 풍경으로 고스란히 박제돼 있다.


치열한 학업 전선(戰線)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이름 모를 학우(學友)들이 발휘하는 끈끈한 동지애도 각박한 세상인심을 누그러뜨리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 있는 학생들 책가방을 서둘러 받아 자기 책가방 위에 포갰고, 덕택에 콩나물시루 만원 버스 안에서는 소리 없이 인정의 꽃이 피어올랐다.


지금보다 살기 어려운 팍팍한 때라 민생(民生) 온도는 낮았지만, 마음 씀씀이 온도는 따스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