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값만 내고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는 동시상영 극장 이야기다.
동시상영 극장의 특징은 첫째, 한편 값으로 서로 다른 영화 두 편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몇 번이고 본 영화를 보고 또 볼 수 있다는 점, 셋째,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자유좌석제라 먼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임자라는 점, 넷째, 헐값에 무제한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해서 영화관에 머무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자유좌석제 때문이었다.
용돈이 쪼들리는 학생들이나 지갑이 얇은 서민들에게 동시상영 극장은 인기 만점의 스트레스 해소 공간이자 휴식처였다.
#처음 관람한 동시상영 영화
내가 동시상영 극장에 처음 가본 것은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형들과 함께 동네 근처 동시상영 극장에서 무협영화를 흥미진진하게 관람한 것이 시초로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고 줄거리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70년대 초 무협영화는 한 명의 주인공이 여러 명의 악당(惡黨)을 물리치는 칼싸움이 주된 내용이었다. 주제는 권선징악(勸善懲惡), 사필귀정(事必歸正), 일벌백계(一罰百戒), 해피엔딩이었다. 주인공은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천하무적이었고 악당들은 절대 유리한 조건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천하무적, 신출귀몰한 무협영화 주인공
뻔한 설정에 뻔한 결말이었지만 어린 눈에 영웅호걸로 비친 주인공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이 멋있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박수를 보내고 환호했다. 주인공은 벼락같이 뛰어올라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고 단 한 번 칼을 휘둘러 적을 쓰러뜨리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신기(神技)를 선보였다.
화살이 심장을 관통해도 끄떡없고 장검(長劍)에 가슴을 찔려도 펄펄 날아다니는 다분히 허구적인 영화적 장치를 알 리 없는 내 또래의 아이들은 스크린에 ‘The End’ 자막이 나올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동시상영 극장에 대한 인상
처음 경험한 동시상영 극장에 대한 인상은 유쾌하고 신기하면서도 유별났다. 나이별 관람 가능 등급을 나눈 영화등급제도가 엄격할 때라 나처럼 초등학생들이 볼 수 있는 영화는 포스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협영화, 액션영화, 순정 영화, 만화영화, 코믹영화 따위가 그랬다.
희한하게도 액션영화야 그렇다 치고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만한 무협영화를 볼 때면 어른들도 많았다. 유쾌하고 신기하고 유별난 동시상영 극장의 첫 체험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이렇다.
*애국가와 대한 뉴스
하나, 영화관 내 실내조명이 다 꺼지면 영화가 시작된다는 신호인데 그전에 모든 관객이 따라 한 통과의례가 있었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고 그 모습은 애국가 4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통과의례는 또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정부 동향과 정책 홍보 내용을 담은 극장 의무 상영용 대한 뉴스가 스크린에 떴고 관객들도 군말 없이 지켜봤다. 어린 내 눈에 대한뉴스는 흑백 TV 뉴스의 확대판 같았다.
*스크린 영상 먹통 사고와 휘파람 소리
둘, 영화가 막이 오르고 관객들이 한창 몰입하는 순간, 갑자기 스크린 영상(映像)이 먹통이 되고 지지직거리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촬영 필름이 끊어져 생기는 사고였다. 스크린 먹통 사고는 한 편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일제히 야유성 휘파람을 불며 아우성을 쳤고 수 분간의 소란 끝에 영화는 다시 상영되고 휘파람 소리도 멈췄다.
영화를 관람할 때면 으레 마주치는 광경이라 나 나 형들이나 다른 관객들 모두 기계적 반응만 할 뿐, 더 이상의 소동은 벌어지지 않고 다시 영화에 빠져들었다. 관객들의 항의성 휘파람 소리는 동시상영 극장에서 흔한 일상이었고 관람료가 비싼 개봉관(開封館)에서도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 형들과 나는 휘파람 소리가 나면 덩달아 고함을 지르고 낄낄댔다.
*마른오징어와 땅콩
셋, 영화를 관람하면서 먹는 마른오징어와 땅콩 맛의 달콤함도 잊을 수 없었다. 그때는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친 노점상들이 구운 오징어와 땅콩, 채 썬 고구마튀김, 삶은 달걀, 껌, 음료수 등을 경쟁적으로 팔았는데 영화관에 갈 때마다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흡연 천국
넷, 신나게 영화를 보다 보면 관람석 맨 뒤 2층에서 영사기가 내뿜는 빛을 타고 꿈틀대며 위로 올라가는 정체불명(正體不明)의 뽀얀 연기가 자욱했는데 알고 보니 담배 연기였다. 금연(禁煙) 의식이 전무(全無)하고 방안에서도 흡연할 때라 관객들은 무시로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워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담배 연기에 익숙해서인지 모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영화 빠삐용의 주연 배우 스티브 맥퀸.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빠하고 나하고’, ‘빠삐용’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와 하굣길에 두 편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하나는 눈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살리려다 함께 숨진 어린이를 기린 ‘아빠하고 나하고’였고, 다른 하나는 살인 누명을 쓴 죄수의 옥중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스티브 맥퀸(1930~1980)-더스틴 호프만(1937~) 주연의 빠삐용이었다. 두 영화 모두 1974년에 개봉했다.
‘아빠하고 나하고’의 실재인물은 1974년 당시 경북 상주 사산 초등학교 2학년이던 정재수 군(1964~1974)으로 구정(舊正) 전날인 그해 1월 22일 폭설을 뚫고 아버지와 함께 충북 옥천군 큰집에 가던 중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살리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주는 효행에도 불구하고 부자(父子) 모두 하늘나라로 간 애틋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친구도 훌쩍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