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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Feb 14. 2024

삶의 정거장에서

13. 베란다에 핀 동백(冬柏)꽃 한 떨기

베란다에 핀 동백(冬柏)꽃 한 떨기     


#선홍색 겨울꽃, 동백

 동백은 겨울에 꽃이 피는 겨울꽃이다. 동백(冬柏)꽃이란 이름도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해 생겼다. 동백꽃을 상징하는 색은 선홍색(鮮紅色)이다. 동백꽃을 붉은 꽃이라 부르는 이유다. 오늘 아침, 우리 집 베란다에도 붉은 동백꽃 한 떨기가 탐스럽게 활짝 피었다.      


생각지도 않은 동백꽃의 개화(開花)라 놀라우면서 반가웠다. 지난해 가을 집 근처 화원(花園)에서 산 작은 동백나무 화분에서 만개(滿開)한 동백꽃 한 송이는 강렬한 붉은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직 필 때가 아니라 망울만 맺힌 탓에 눈길을 끌지 못했던 게 속상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동백꽃 꽃봉오리는 거짓말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하룻밤 사이에 겨울꽃의 위용을 내 눈앞에 드러냈다.     


추위에 떨 걱정에 거실로 옮겨둔 이런저런 화분들을 며칠째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다시 베란다 창가,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았었다. 집사람이 먼저 동백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고, 집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한달음에 달려간 나도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 앞에서 이럴 수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밝고 맑고 깨끗한 붉은 꽃잎

 창가에 홀로 핀 동백꽃 송이는 소담해 눈이 부셨다. 작은 화분을 꽉 채우리만치 꽃잎이 컸고 붉은 꽃잎에서 밝고 맑고 깨끗한 기운이 넘쳐났다. 선홍색으로 물든 동백 꽃잎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난해 3월 초 제주 가족 여행길에서 마주친 때늦은 동백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동백 꽃잎은 타원형이라는데 내 눈에 비친 우리 집 동백 꽃잎은 둥글게만 보였다. 빨간 외모와 속살을 숨김없이 다 보여주는 꽃잎에서 윤기가 났고 아침 햇살을 받자 더 반짝반짝했다. 4월에 피는 벚꽃이 우윳빛 뽀얀 피부가 매력적이라면 2월의 동백꽃은 꽃잎 전체에서 붉게 전해오는 화려한 관능미가 짜릿했다.     


 동백꽃은 겨울에도 푸르른 잎을 띠는 상록수(常綠樹)다.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꽃을 피운다. 다른 꽃보다 일찍 꽃이 피고 다른 꽃보다 일찍 꽃이 진다.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다른 꽃과 달리 송이 전체가 한 몸이 되어 통째로 떨어진다. 장렬한 소멸이다.     


오늘 아침, 우리 집 베란다에 활짝 핀 붉은 동백꽃 한 떨기. PARK IN KWON


#동백꽃의 다른 이름, 춘백(春栢)과 조매화(鳥媒花)

 경칩(驚蟄)은 날씨가 풀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다. 꽃들의 개화 시기도 이 무렵이다. 올해는 양력으로 3월 5일이다. 동백꽃은 다르다. 11월 중순이나 말부터 이듬해 2월~3월 사이 만개한다. 동백 외에 춘백(春栢)으로도 불리는 까닭이다. 제주 지역이 가장 빠르고 중부를 거쳐 남부 순이다. 선홍색을 중심으로 흰색이나 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한다.     


개화 시기의 특성 탓에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붙여주는 수분(受粉) 활동도 추위에 약한 곤충 대신 새가 한다. 동백꽃의 또 다른 별칭 조매화(鳥媒花)에 숨은 사연이다. 조매화에는 벌이나 나비가 수분을 책임지는 충매화(蟲媒花)보다 꿀이 더 많다. 곤충보다 새의 식욕이 더 왕성하기 때문이다. 동백꽃을 따서 빨아먹으면 단맛이 난다.     


 아름다운 꽃잎의 매력 덕분에 관상(觀賞)식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동백나무는 여러모로 쓸모도 많다. 씨를 짜면 동백기름이 되고 열매는 식용(食用)과 미용(美容)으로 쓰인다. 약효성분이 들어 있는 잎은 약재로 사용되고 누렇고 갈색빛이 도는 동백나무는 재질이 튼튼해 각종 도구의 재료로 활용된다.      


작은 화분을 꽉 채우리만치 동백 꽃잎은 컸고, 붉은 꽃잎에서 밝고 맑고 깨끗한 기운이 넘쳐났다. PARK IN KWON


#동백꽃의 자취

동백꽃의 자취는 문학과 대중가요, 예술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당 서정주(1918~2000)의 시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에 선운사 동백꽃이 나오고, 가수 송창식(1957~)은 1986년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선운사’에서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선운사 동백꽃을 바라보는 슬픈 마음을 노래했다.     


전북 고창 선운사의 동백나무 숲은 동백꽃 명승지(名勝地)로 1967년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됐다.     

송창식에 앞서 1976년에 조용필(1950~)이 노래해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겸 극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1824~1895)가 1848년에 발표한 소설 ‘춘희(椿姬)’의 원제(原題)도 동백꽃을 든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이다. 춘희는 일본어로 번역된 제목이다. 한자(漢字)로 춘(椿)은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뜻하나, 일본어로는 동백나무(つばき, 쯔바키)를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1853년에 작곡해 초연한 3막 4장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도 소설 ‘춘희’를 개작(改作)한 희곡을 각색한 것이다. 동백꽃은 꽃말도 사랑이라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인기가 많은 꽃이다. 고혹적인 꽃잎의 치명적 매력에 반해 프러포즈의 절반은 그저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우리 집 베란다 화분에 핀 동백꽃 한 떨기도 어느 날 꽃 전체가 한꺼번에 사라지겠지. 화분 속 동백나무 줄기가 세 갈래로 뻗어 있어 제2, 제3의 동백꽃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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