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수제비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평균적인 소득 수준이 지금에 한참 못 미쳤던 1970년대에 수제비는 우리나라 서민 밥상에 흔하게 오른 음식이었다. 수제비가 모습을 드러내는 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당시 가정에서는 손수 밀가루를 반죽해 숙성한 뒤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런 모습은 겨울이 끝날 때까지 자주 볼 수 있었다. 봄가을에도 수제비를 먹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으스스하고 추운 날씨에 뜨끈뜨끈한 국물이 생각나기 마련이었다. 가을비나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먹는 수제비의 맛이 으뜸인 것도 수제비와 날씨의 연관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제비는 밀가루만 있으면 배를 채울 수 있는 소박하고 털털한 음식이다. 형편이 여의찮고 먹거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 밀가루 반죽을 해 감자와 호박을 썰어 넣고 끓인 물에 수제비를 뜨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수제비였다.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들에게 수제비가 가슴 시린 추억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수제비를 먹었다고 한다. 삼복더위를 이기는 음식으로도 먹었고 고기와 버섯 등을 넣고 고급스럽게 요리한 탓에 살림이 넉넉한 집안에서나 가능한 값비싼 별미라 서민들은 구경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서민들의 배를 불리는 만만한 음식으로만 알고 있던 수제비가 조선시대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고급 음식이었다니 놀랍다.
밀가루에 소금과 식용유, 물을 섞어 주무르고 치대 반죽을 만든다.
수제비가 서민 음식으로 널리 퍼진 것은 전후(戰後) 시기다. 원조 물품으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국내에 반입되면서 수제비를 끓여 먹는 집이 늘어났다. 중장년층의 부모 세대에게 1950년대의 수제비가 그러했듯이 그들의 자식 세대에게도 1970년대의 수제비는 한 끼를 책임진 소탈한 음식이었다. 윗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처럼 중장년층들이 기억하는 수제비에 대한 단상(斷想)이 비감(悲感)한 것도 전쟁 세대인 부모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 끓는 물에 넣고 요리하는 수제비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면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풍경이 있다. 초등학교 2~3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한파(寒波)가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수제비를 끓였다.
수제비를 끓이는 날에는 3형제 모두 도우미로 나섰다. 손 수제비를 만드는 일에는 의외로 손이 많이 가기도 했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치대고 수제비를 뜨는 일 자체를 나나 두 형들이 재미있어했기 때문이다. 수제비가 어머니의 음식이자 우리 형제들의 음식이었고 겨울철 고향집 풍경을 소환하는 정겨운 음식이기도 한 이유다.
반죽에 랩을 씌워 1시간 이상 숙성한다.
#겨울철 별미이자 단골 메뉴, 수제비 요리
한기(寒氣)에 몸이 떨리고 입맛이 없는 겨울날 수제비는 우리 식구들에게 수수하면서도 입 호강의 행복감을 선사한 별미(別味)였다. 식구들 모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어도 수제비를 해 먹었고 반찬거리가 있어도 수제비를 자주 해 먹었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수제비를 뜨는 일에는 어머니는 물론 두 형과 나까지 손을 보탰다. 조리법을 기억나는 대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초벌 반죽
-네 식구가 먹을 만큼의 양을 가늠해 밀가루를 종기로 퍼 양푼에 담은 뒤 물을 붓고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이때 밀가루 양과 물의 비율이 중요한데 밀가루가 많으면 반죽이 뻑뻑했고 물이 많으면 멀겠다. 밀가루와 물의 양은 어머니가 정했다.
-밀가루와 물이 알맞게 섞여 차지고 끈끈한 점성(粘性)의 기본 형태가 갖춰진 밀가루 초벌 반죽을 대형 쟁반으로 옮겼다. 밀가루 반죽을 옮기기 전 쟁반 위 구석구석에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 놓는데 반죽이 쟁반과 엉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감자와 애호박, 대파, 양파를 썬다.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던 반죽 치대기
-이제부터 밀가루 반죽의 점성을 끌어올리는 고단한 작업이 시작되는데 두 손으로 반죽을 쥐고 치대는 일이다. 이때 반죽을 주무르는 손아귀의 힘을 영리하게 부려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가면 손가락과 팔이 저리고 너무 약하면 반죽이 탄력을 잃게 된다.
-반죽을 치대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들었는데 멀리는 허리에서부터 어깨와 팔을 거쳐 두 손아귀로 이어지는 착실한 연속 동작이 필요해 힘들고 지루한 중노동(重勞動)이나 마찬가지였다. 삼 형제가 반죽 한 덩어리씩을 맡았다.
*반죽의 중요성과 수제비 뜨기
-반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했다. 하나는 반죽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수제비의 쫄깃한 식감이 반감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 치댄 반죽은 찰기가 모자라 수제비가 얇게 펴지지 않고 동그랗게 말려 맛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죽이 다 된 뒤에는 수제비를 뜰 차례다. 수제비를 뜬다는 것은 밀가루 반죽을 조금씩 떼 내 양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얇게 펼쳐 끓는 물에 집어넣는 행위를 말한다. 수제비는 얇게 모양을 낼수록 맛이 있어 수제비를 뜨는 일은 반죽과 함께 수제비의 맛을 좌우하는 관건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수제비 뜨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너무 얇게 펼치다 보면 수제비 형태가 끊어지고 너무 두꺼우면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육수가 끓으면 익는 데 시간이 걸리는 감자를 먼저 넣는다.
*감각이 필요한 숟가락 치기
-손가락 대신 숟가락을 사용해 수제비를 뜨는 방법도 있다. 소량의 반죽 덩어리를 숟가락 위에 얇게 펼쳐 얹고 다른 숟가락 옆부분의 날을 이용해 자르듯이 툭툭 내리쳐 냄비에 떨어뜨리는 식이다. 우리 집에서는 숟가락 치기라고 불렀는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숟가락 치기는 반죽 덩어리의 점성 때문에 맨 숟가락으로는 반죽이 잘 분리되지 않아 숟가락에 물을 묻혀가며 작업을 해야 해 번거로웠고, 자칫하면 물을 머금은 반죽과 숟가락이 달라붙어 떼 내기가 쉽지 않아 몸으로 익힌 나름의 감각이 필요했다. 숟가락 치기는 주로 어머니가 수제비를 뜨는 방식이었다.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손으로 수제비를 뜯어 넣는다.
#수제비에 대한 또 다른 추억
수제비에 대한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일이다. 부서원들과 일요일 점심때면 한 번씩 들른 식당이 있었다. 직장 특성상 일요일도 근무할 때였다. 1982년에 문을 연 수제비로 알려진 맛집인데 청와대 인근 삼청동 그 자리에서 지금도 영업 중이다. 호박과 감자, 양파, 당근, 조갯살을 넣고 끓인 항아리 수제비와 감자전이 대표 메뉴다.
김 가루를 올린 수제비는 항아리째 나오는데 손님 수에 맞춰 항아리 크기가 다 다르다. 얇게 뜬 수제비가 쫄깃쫄깃하고 조갯살이 들어간 국물이 시원해 입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수제비는 얇게 뜰수록 맛있다는 수제비 요리의 정석을 확인할 수 있는 맛이었다.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간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과 배추김치, 열무김치도 수제비의 풍미를 돋웠는데 어릴 때 고향집에서 해 먹은 수제비 맛이 생각났다.
수제비가 국물 위로 뜨면 애호박과 대파, 양파, 다진 마늘을 넣는다. 국간장 두 큰술과 멸치액젓 한 작은술도 넣고 간을 본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한다.
감자전은 순도 100%의 감자만으로 부친 것이라 감자전 특유의 밍밍한 맛이 났다. 쫀득쫀득한 감자전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맛이 살아났다. 녹두를 갈아 만든 녹두전도 많이 먹었다. 주로 수제비와 감자전을 시키고 동동주를 반주(飯酒) 삼아 느지막이 식사한 기억이 난다. 그때도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까지 소문이 나 손님이 더 많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면 음식에 대한 시각도 달라진다고 한다. 애물단지였던 보리밥이 찾아다니며 먹는 별미 건강식인 보리 비빔밥으로 주목받는 것처럼,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먹었던 수제비도 더 이상 애잔한 음식이 아니다.
참기름을 서너 방울 떨어뜨리고 달걀물을 부은 뒤 1분 후 불을 끈다.
#수제비 요리
며칠 전에 아주 오랜만에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해 수제비를 끓였다.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눌러 수제비를 떴는데 역시 마음먹은 대로 모양이 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도 수제비를 뜬 반죽의 양이 지나쳤고 편평하게 펼치는 정성도 모자라 굵고 통통한 수제비를 먹었다. 역시 수제비 뜨기는 겉보기와 달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아예 반죽 덩어리를 몇 등분으로 나누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밀대로 밀어 얇게 펴서 뜯어 넣는 방법을 시도해 봐야겠다. 수제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역대급 한파가 예상된다는 올겨울에는 감자와 호박을 넣은 감자수제비를 자주 해 먹어야겠다.
수제비는 고향집 풍경을 소환하는 정겨운 음식이다.
내가 수제비를 끓이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밀가루 반죽에 필요한 밀가루의 양은 1인분 기준으로 종이컵 한 컵, 물의 양은 종이컵으로 4분의 3컵, 식용유 한 큰술, 소금 한 작은술이다. 큰술은 숟가락 기준, 작은술은 찻숟가락 기준이다. 식용유는 반죽을 부드럽게 하고 소금은 간간한 맛이 나게 한다. 밀가루와 소금을 먼저 섞고 물은 한꺼번에 다 붓지 말고 조금씩 붓는다. 반죽의 점도 조절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다. 반죽이 손에 달라붙으면 밀가루를 묻혀가며 치댄다. 주무르고 치대어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랩에 씌워 1시간 이상 숙성한다. 숙성은 반죽을 찰지게 한다.
2. 감자와 애호박, 대파와 양파를 썰고 다진 마늘도 준비한다.
3. 멸치 육수를 낸다.
4. 육수가 끓으면 익는 데 시간이 걸리는 감자를 먼저 넣는다.
5. 반죽을 떼어 수제비를 뜬다. 수제비가 국물 위로 뜨면 익었다는 신호다.
6. 애호박과 대파, 양파, 다진 마늘을 넣는다. 국간장 두 큰술과 멸치액젓 한 작은술도 넣고 간을 본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한다.
7. 마지막에 참기름 서너 방울을 떨어뜨리고 달걀 한 개를 푼 달걀물을 부은 뒤 1분 후 불을 끈다. 달걀물은 선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