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삼겹살
40. 삼겹살
#흔들리지 않는 삼겹살 수요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에 붙은 돼지 뱃살로 지방과 살이 세 겹으로 겹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가족 단위 외식(外食)이나 직장 회식(會食) 때 가장 선호하는 메뉴다.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고 앞다퉈 즐겨 먹는 돼지고기 부위라 수요가 폭발적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해도 삼겹살값은 요지부동인 것도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수요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산 공급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독일과 스페인 등 세계 17개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2022년의 돼지고기 수입 현황을 보면 삼겹살(17만 2천여 톤) 부위가 돼지고기 총수입량(44.2만여 톤)의 39%에 육박한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삼겹살을 좋아해서 벌어진 현상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인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3대 육류(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량(60.6kg)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겹살을 싸 먹는 쌈 채소와 오이고추
삼겹살은 1993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돼지고기 뱃살을 얇게 썬 한국 음식(Korean dish of thinly sliced pork belly)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글 발음을 영어로 음차(音借)한 Samgyeopsal로 등재됐다.
1970년대 이전의 토종 돼지는 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사료가 없어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나 분뇨(糞尿)를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냄새가 많이 나는 생고기를 구워 먹는 대신 주로 삶아서 익힌 수육 또는 삶은 뒤 눌러 얇게 저민 편육이나 찌개로 끓여 먹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970년대 말 정부의 육류 가격 안정화 정책에 따라 돼지고기 수출이 금지되면서 국내 소비량이 증가하고 사료 개발 등 양돈 환경의 개선으로 질 좋은 고기가 공급되자 삼겹살을 구워 먹는 새로운 소비문화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쌉싸름한 양파절임도 삼겹살과 잘 어울린다.
#삼겹살 문화의 급부상
삼겹살 구이와 관련한 신문 기사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80년대 초이고 이 무렵에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보급되면서 삼겹살 구이 식당이 급속히 증가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80년대를 기점으로 삼겹살은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삼겹살의 인기는 90년대 들어 더욱 증폭돼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에서나, 가정에서나, 외식 메뉴로서나 어디서든 두루 즐기는 국민 음식으로 정착했다.
삼겹살의 원래 이름은 세겹살이라는 사실이 여러 기록에서 전해진다. 삼겹살 구이를 메뉴로 내건 식당이 늘어나고 언론에도 본격적으로 관련 기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80년대부터 삼겹살이란 명칭이 그 자리를 대신해 세겹살은 지금은 쓰지 않는 사어(死語)가 됐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규정한 삼겹살의 정의에 세겹살이란 표현이 나온다.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이다.≒세겹살.’ 표준어는 삼겹살이고 세겹살은 삼겹살의 근삿값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1994년에 표준어로 등재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시기는 밝혀진 바가 없다.
삼겹살을 먹을 때 빠질 수 없는 김치. 번지르르한 불판에 구운 김치는 맨 김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삼겹살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지방~살코기~지방~살코기로 이어져 네 겹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넉 사(四)자를 싫어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된 명칭 윤색(潤色)의 결과라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어인 일일까.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정의한 데에 그런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삼겹살이란 용어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육류 부위별 차등 가격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다. 정부는 1990년 12월 10일 농수산부(현재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고시한 식품위생법 및 시행규칙에 따라 1991년 1월부터 삼겹살, 안심, 등심, 목심, 앞다리, 뒷다리, 갈비 등 7개 부위별로 가격에 차등을 두어 돼지고기를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축산물 수입 개방과 소비 형태의 다양화에 맞춰 이뤄진 조치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는 식탁 위에 신문지를 깐다. 기름이 식탁에 튀지 않아 뒤처리가 편리하다.
#국민 음식의 대명사
삼겹살은 값이 싸고 특유의 기름진 맛과 바삭하고 고소한 풍미에 더해 소주와 김치와 맞아떨어지는 궁합이 기막혀 애주가들은 물론 국민 전체가 즐겨 먹는 서민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삼겹살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으면서 연간 소비량이 폭증하고 마케팅 전략의 다변화에 따라 솥뚜껑 삼겹살과 고추장 삼겹살, 벌집 삼겹살, 허브 삼겹살 따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가격도 급등했다.
매년 봄 황사(黃砂) 시즌이 되면 삼겹살 소비가 급증한다고 한다. 삼겹살이 몸속에 흡입된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는 주장에 맞서 돼지고기가 중금속을 해독하고 배출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속설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흙먼지, 흙비(土雨)라고도 하는 황사에는 매연과 산성비, 화학 물질 등의 유해 물질과 토양 성분인 철과 같은 중금속도 포함돼 있다.
우리집의 삼겹살 상차림
#삼겹살 데이
어쨌거나 삼겹살을 먹는 날이라는 ‘삼겹살 데이’까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삼겹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삼겹살 데이’는 숫자 3이 두 번 겹치는 매년 3월 3일을 일컫는다. 2003년 돼지 구제역 파동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양돈업계를 돕기 위해 경기도 파주 축협이 캠페인 차원에서 시행한 이후 음식문화를 기념하는 현상으로 인식됐다.
삼겹살 전문 식당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오겹살도 있다. 오겹살은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은 삼겹살을 말한다. 껍데기를 벗기지 않고 구워 먹는 제주산 흑돼지가 내륙 지방으로 유통되면서 2000년대 초부터 상인들이 지어낸 은어(隱語)라고 알려져 있다. 꼬들꼬들한 껍데기의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겹살
#삼겹살과 소주, 김치의 미각적 궁합
삼겹살 맛의 특징은 기름지고 고소하고 쫄깃하다는 점이다. 먹을수록 혀끝에 감도는 느끼한 맛은 과다한 지방 성분 때문이다. 삼겹살 부위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나 된다고 한다. 삼겹살이 소주, 김치와 잘 어울리는 이유다.
뜨겁게 달궈진 번지르르한 불판에 김치를 구워 먹는 모습은 삼겹살 구이 식당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불의 향을 덮어쓴 구운 김치의 고소한 풍미는 맨 김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쌉쌀하고 깔끔한 맛의 소주나 시고 매콤한 김치 맛 둘 다 기름진 삼겹살의 맛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소주 한 잔에 기름장을 찍은 삼겹살 한 점을 먹는 맛은 설명이 필요 없다.
영양소의 균형적 섭취를 위해 일반적으로 고기는 채소와 곁들여 먹는 경향이 있다.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은 특히 그렇다. 삼겹살 상차림에 단백질과 지방분해에 효과가 있는 파채와 상추, 깻잎, 양파, 마늘, 고추 따위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삼겹살은 참기름을 넣은 기름장이나 소금에 찍어 먹는다. 갈치속젓을 올려 먹어도 맛있다. 아들과 딸처럼 삼겹살을 쌈장과 함께 먹기도 한다. 삼겹살을 다 먹고 난 뒤 불판에 볶아 먹는 볶음밥도 별미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는 식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올리면 뒤처리하기가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