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세기의 화가들Ⅱ

18.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by 박인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1656)

서양미술사에서 인정하는 최초의 여성 화가는 17세기에 등장했다. 미술사에 등재된 1호 여성 화가는 이탈리아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다. 1593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녀의 공식적인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나폴리에 머물던 1650년 이후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정황상 1652년에서 1656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가의 작품 성향은 화가의 삶과 궤적을 함께 한다’라는 말은 젠틸레스키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강렬한 명암대비와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 극적인 연출효과가 특징인 바로크미술 시대에 활동한 젠틸레스키는 화가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그림과 친숙한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다. 젠틸레스키는 불과 17살의 나이에 깜짝 놀랄만한 그림을 그려 화가의 길을 예고했다.


1610년에 그린 ‘수산나와 두 장로’란 제목의 그림이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두 장로가 수산나를 성적으로 희롱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그림으로 딸의 재능을 확신한 젠틸레스키의 부친 오라치오 젠틸레스키(1563-1639)는 동료 화가인 아고스티노 타시(1578-1644)에게 사사(師事)를 부탁하는데, 아뿔싸!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단(事端)이 일어난 것은 1612년, 젠틸레스키의 나이 19살 때였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98.6cm x 75.2cm, 1638-1639. 영국 왕실 컬렉션 소장(Royal Collection)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젠틸레스키보다 15살이나 많은데다 아버지의 지인이자 화단의 대선배인 타시는 자신의 화실에서 그녀를 상대로 그림 교습을 진행하던 어느 날, 꽃다운 나이인 제자의 순결을 짓밟고 만 것이다. 젠틸레스키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만은, 미래의 거장은 역시 남달랐다. 어릴 때부터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다져왔던 불꽃 같은 의지 앞에서 타시의 만행은 외려 강력한 예술적 자극이 됐다. 역사상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 페미니즘의 시조(始祖)가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남성 일색인 화가집단에서 여성 화가는 배척당하기 일쑤였고, 후원자는 언감생심인 시대였다. 이런 악조건 아래에서 성폭행 피해의 수치심을 창작의 동기와 창작 욕구를 쉼 없이 담금질하는 자극제로 삼은 끝에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사상 첫 여성회원의 영예를 안은 젠틸레스키의 역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스스로 노력으로 독립적인 삶을 개척한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다. 제목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그림이다.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억압받는 여성을 주된 소재로 삼은 젠틸레스키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는 당찬 소신을 구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그림은 이스라엘의 매혹적인 과부 유디트가 조국을 침공한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하녀의 도움을 받아 그의 목을 잔인하게 베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다. 16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빛과 어둠의 화가’ 카라바조(1573~1610)의 화풍을 가장 완벽하게 계승발전 시켰다는 젠틸레스키의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채, 199 x 162.5cm, 1614-1620.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1614년에서 162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세로 199cm, 가로 162.5cm 크기의 대형 캔버스 유화 작품으로 구약성서 외전(外典) 유디트 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배경이다. 기원전 6세기 옛 이스라엘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빼어난 미모의 젊은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유디트. 화면 오른쪽의 여성이다. 가운데 여성은 유디트의 하녀.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가 힘을 합쳐 칼로 목을 베고 있는 남자는 홀로페르네스. 유디트의 조국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시리아의 장군이다.


카라바조의 전매특허인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로 살해 장면의 연출효과가 극대화된, 이 그림을 화가는 왜 그렸을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행위 이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관문인 베툴리아 침공이 선결 조건.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무지막지한 아시리아 군대는 베툴리아 바로 앞에 주둔하며 공격 준비를 마친 상태. 초읽기에 들어간 전쟁의 승부는 보나 마나.


이때 유디트는 조국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묘책을 승부수로 던진다. 이른바 미인계 전략. 하녀를 대동하고 적장의 소굴로 들어간 유디트는 화려한 미모로 홀로페르네스의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키는 데 성공한다. 야릇한 거사(擧事)의 꿈에 부푼 홀로페르네스는 호위병도 물리치고 만취한 채 마침내 잠에 곯아떨어진다. 유디트가 적장의 칼을 뽑아 들고 홀로페르네스가 꿈꾼 거사와는 전혀 다른 거사를 단행한다.


행여 거사가 실패할까, 하녀는 온 힘을 다해 홀로페르네스의 상체를 짓눌러 그의 반항을 무력화시킨다. 잘려 나간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유디트는 참수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툴리아 성 밖에 내걸었고, 이를 본 아시리아 군사들이 줄행랑을 쳤다.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으로 유디트가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화, 145cm x 195cm, 1598-1599. 로마 국립회화박물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구약성서 속 이 이야기는 젠틸레스키 외의 다른 화가들도 단골 소재로 삼았는데, 그중 카라바조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동일 제목으로 로마국립회화박물관에 소장된 카라바조의 그림은 보다시피 젠틸레스키의 그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가운데 인물이 유디트다. 억센 팔뚝과 결연한 거사 의지가 뚜렷한 젠틸레스키 작품 속 유디트와 달리 가냘픈 모습에 잔뜩 겁먹은 얼굴이다. 오른쪽의 하녀도 노파(老婆)로 거사에 어떤 동참도 하지 않고 있다.


어린 나이에 겁탈을 당한 상처를 유디트로 투영한 젠틸레스키와 그렇지 않은 카라바조의 차이다. 젠틸레스키 그림 속의 유디트는 젠틸레스키 본인이고, 홀로페르네스는 젠틸레스키를 덮친 타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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