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Dec 08. 2021

독일 회사에서 피드백이 갖는 의미

매니저가 피드백을 해주겠다며 미팅을 잡았다.

새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다소 생경하게 느꼈던 것들이 있었다. 바로 "피드백"문화였다. 내 라인 매니저는 초반에 나와 거의 매달 피드백 세션을 가졌었다. Onboarding (신규 입사자 교육)이 끝나고 나서는 Onboarding feedback 세션을 잡았고, 입사 두 달 차가 되었을 때는 두 달 차 feedback 세션을 잡았다.


피드백이라고 하면 항상 안 좋은 기억만 있었던 나로서는 이 시간이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뭐 잘못한 걸 혼나는 건 아닐까? 나에 대해 안 좋은 피드백을 하는 걸 어떤 표정으로 듣고 있어야 하지?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피드백 세션의 분위기와 목적, 진행방법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피드백이 내 라인 매니저가 나한테 평소에 하기 어려웠던 잔소리를 몰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것은 내 라인 매니저가 "매니저로서, 상사로서, 동료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니?"를 묻는 자리에 가까웠다.


내 라인 매니저는 단어 선택이나 말투, 비언어적 표현들에 있어서 내가 봤던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내가 외부 협력사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에도 항상 강조했던 것이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먼저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걸 가르쳐준 방법에서조차 그는 이 비법(?)을 적용했다. 내게 바로 "OOO사와 이야기할 때 꼭 메일 화두에 칭찬을 하도록 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OOO사에 메일을 보낸 후에야 나에게 사내 메신저로 "네가 OOO사에 보낸 메일에서 처음에 칭찬한 것 너무 좋았어. 그들이 이 메일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을 거고, 우리에게 더 협조적으로 나올 것임을 확신해."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이미 했던 행동 중 긍정적인 것들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줌으로써 그 특정 행동을 강화시켰다.


피드백 세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기 앞서서 그는 정말 많은 시간을 나를 칭찬하는 데에 할애했다. 그리고 칭찬하는 방식 또한 내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방식이었다. 그는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디테일들을 포함한 예시를 들며 이때는 뭐가 좋았고, 네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우리한테 어떤 의미를 갖는다 라는 것을 오목 조목 설명해주었다. 그다음에는 준비된 질문지를 하나하나 넘겨가며 질문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다.



너의 성과를 내가 어떻게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너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서 이야기해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어. 혹은 전체 메일을 보내서 모두에게 서면으로 알려줄 수도 있어.

일을 하면서 일 외적인 부분에서 불편한 점이 있니? 예를 들어, 의자가 불편하다거나 뭔가 더 필요한 물건이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네가 지금 하는 일이 충분히 challenging 하다고 느껴지니?


지금 네가 A, B, 그리고 C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중에서 네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젝트는 뭐였니? 앞으로 이 회사에서 너의 경력을 어느 쪽으로 더 계발하고 싶니?



이 외에도 정말 나를 놀라게 했던 무수히 많은 말들과 질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에 초점을 맞춘 질문들이 지나고 나서는 그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질문들이 나왔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서 부족한 점이 있었거나 개선할 점이 있었다 하면 말해달라는 등의 질문들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상 좋은 상사/사수인 것 같지만, 일을 할 때 아주 트러블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의 MBTI는 INTP/INFP. 창의적이지만 정리를 잘 못한다. 내 라인 매니저의 MBTI는 INTJ. 정말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대로 움직이고, 정리정돈 칼같이 하는 그런 사람.


나는 정리정돈, 스케줄 관리, 시간관리에 젬병이기 때문에 이 사람하고 같이 일하는 게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고, 창의적인 활동이 제한된다고 느낀 적이 많아서 초반에 심심치 않게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이 피드백 세션들을 통해서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팀을 키우고 있다.


회사에서 다른 팀들을 보니 꼭 이 회사의 조직문화가 이 세상 최고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팀을 보면 "리더십과 팀워크는 허상이다."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리더십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운다.



> 독일에서 영어로 석사 유학하는 법

> 독일어도 못하면서 독일에서 취업한 비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