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로 도배를 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만,
내 학점은 학사에서는 4.0 미만, 석사에서는 4.0 이상이었다. 학사는 한국에서 했기에 상대평가로 받은 점수였고, 석사는 독일에서 했기에 절대평가로 받은 점수였다. 이공계에서는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4.0이 거의 매직넘버로 여겨졌었다. 공부를 잘하고, 뭘 해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애들은 항상 4.0 이상을 기준으로 학점을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대학생 때의 나는 공부를 썩 잘하거나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C+도 수두룩하게 받아봤고, 심지어 D랑 F도 있었다. 이렇게 끔찍한 성적들은 결국 재수강을 해서 다시 다른 점수로 대체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4.0 미만으로 성적을 마무리했다.
학사 때 받은 성적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독일 석사과정을 지원하면서였다. 아무리 독일 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대단한 학교들은 학점을 많이 본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들었었는데, 이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유학 컨설팅을 하면서도 학점이 좋은 학생들이 딱히 별다른 경력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문 대학교들을 턱턱 붙는 것을 보면서 진짜 이런 학교들 입시에서는 학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학사 때 받은 학점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던 터라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내 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외취업이었음에도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낮은 학점 때문에 취업문턱이 높아지는 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공부하고 시험 점수, 소논문 점수, 디펜스 점수에 연연하며 2년을 보냈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연구원으로의 일을 청산하려고 이직을 준비할 때의 일이었다. 인터뷰를 볼 때 아무도 내게 성적에 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성적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원하는 포지션이 마케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학부 때 들었던 마케팅 수업의 점수를 언급할 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내게 성적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인터뷰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내가 뭘 해봤는지” 뿐이었다.
참으로 우습게도 나는 내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못했던 것들을 지금 업으로 삼고 있다. 가장 못했던 마케팅이 본업이 되었고, 가장 못했던 영어가 부업이 되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두 과목 모두 내가 C+를 받았던 과목들이었다. 내가 마케팅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안 지는 꽤 오래됐음에도 이것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학점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잘 못했던 건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발목을 잡고 ‘감히 내가 명함이나 내밀 수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해외취업에 있어서 학점은 주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유학 중인 학생들에게 해외취업컨설팅 요청이 오면 이렇게 말한다.
제발 무조건 휴학을 해서라도 인턴십이나 워킹 스튜던트 하세요.
독일의 경우 졸업 후에는 인턴십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무조건 유학을 2년 안에 끝내서 돈을 쓰는 생활을 청산하고 돈을 버는 생활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단 한 번도 휴학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운이 좋아서 취업이 됐긴 했지만, 취업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기분의 8할은 아마 “아 왜 아무도 졸업 후에 인턴 못한다는 거 말 안 해준 거야.”가 아니었을까 한다.
취업을 목적으로 유학을 한다면, 학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C+로 성적표를 도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유학 중에 학점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 인턴십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휴학을 해서라도 인턴십을 해야 한다. 이게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턴십 경험 없이 졸업을 해버리고 나면 취업준비 자체에 “버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유학 기간이 아직 많이 남은 학생들에게도 나는 링크드인을 미리 만들어두고 미리 네트워킹을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가장 ideal 한 시점은 졸업이 1년 정도 남은 시점이 아닐까 한다. 막 학기에는 석사논문 프로젝트 때문에 이미 정신이 없고 그것만 열심히 하는 것도 벅찰 정도로 할 일이 많다. 그래서 한 학기 정도 더 여유를 두고 CV를 업데이트해두고, 석사 1년 동안 하면서 발전된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