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96학번인 내가(맞다.. 또 라떼로 시작하는 얘기) 대학 다닐 때는 여름 방학에 유럽 배낭여행 가는 것이 유행처럼 시작될 때였다. 일반 패키지여행이 어른들을 겨냥했다면 항공권과 호텔만 정해서 가는 호텔팩은 한창 젊은 청년들에게 도전과 열정이라는 가슴 뛰는 단어들로 유혹을 해 학업 부담이 적은 1, 2학년 봄이 되면 다수의 친구들이 여름 배낭여행을 알아보고 다니곤 했다.
처음에는 친척이 있는 호주로 여행을 가려고 알아보다 접고, 친구와 야심 차게 준비한 인도 배낭여행이 비자까지 받아놓고 위험하다는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고 나서야, 새가슴인 나는 - 착한 딸인척 했던 나는 더 알아보지도 않고 해외 경험 없이 졸업을 하게 되었다. 동생 둘이 각자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유럽여행을 가고 나서야 '나도 인도 말고 유럽여행 간다고 할 걸 그랬네' 하고 후회를 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유럽에 살려고 그때 그랬나 싶기도 하다.
대학시절을 특별한 일 없이 조용히 보내고(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물어본다면 그도 아니었다.) 졸업 전에 취업을 했기에 대학 졸업 후 학사모를 집어던지고 잠시 '나를 찾기 위한 여행' 등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미국계 회사를 다녔던지라 그 당시 까다로웠던 미국 비자를 대사관에 방문하지 않고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미국 여행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무작정 비자부터 받아놓았을 정도로 나는 해외여행에 목이 말라 있었다. 한국 회사와 합병하면서 회사 규모도 커지고 매출도 좋아지자 회사는 매년 부서별로 워크숍이라는 명목으로 짧은 해외여행을 보내주었고, 그 여행들 중 한 군데였던 베트남에서 나중에 다시 살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고, 중국 본토는 아니지만 대만을 다녀온 후 나중에 상해에 살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지 싶다. 10년 넘게 외국에서 생활하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나는 외국인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외국생활을 동경했던 것 같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탓? 그 영향으로 아직도 미국에 살아 보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해외연수, 교환학생, 유럽여행을 한번 경험하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알게 된 건 결혼을 하고 사주를 보러 가서였다. 회사 이직에 대한 운이 있는지 물어보러 간 곳에서 우리 둘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프로젝트에 따라 몇 개월씩 지방에 내려가 주말에만 신혼집으로 오기도 했고, 서울에서도 출근 장소가 몇 개월 단위로 바뀌곤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였지만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매일 수명이 짧아지는 것'을 느끼고 회사를 옮겨야겠다 생각하고 이직했고 그 이후에 우리의 역마살은 빠르게 한국이 아닌 해외로 뻗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이직한 회사에서 충주로 베트남으로 또 상해를 거쳐 스페인까지 참으로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재미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간 사주풀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리 용할 수가 있나' 싶다. 우리의 역마살이 언제쯤 끝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아쉽지만 나 스스로도 아직은 끝이 나지 않으면 좋겠기에 미련은 없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고 나와있어서 이곳저곳을 돌며 사는 것인지,
한 번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자꾸 다른 나라로 내보내게 되는 회사의 정책 때문이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난 우리의 역마살이 좋다.
역마살이 부부 중 한 명 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에게 있어 다행이고,
그로 인해 오랜 해외생활로 가족 관계가 더 돈독해져서 다행이고,
또다시 다른 나라에 살게 된다 해도 잘 지낼 자신이 있어 다행이다.
이쯤 되면 우리 아이들의 사주가 궁금해지긴 한다. 얘네들은 대체 어떤 사주를 가지고 있기에 이리도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