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터샷도 못 막는 코로나 바이러스
인생에도 정해진 레시피가 있다면... 참 좋겠다.
어떤 재료는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 첨가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발효과정을 잘 체크하고 적혀있는 대로 룰만 잘 따르면 실패 없는 음식이 나오는 레시피.
미래의 언젠간 안정적인 삶의 레시피가 칩으로 사람의 몸에 심어져 계획에 어긋남이 없이 살아갈 수 있으려나??
내 나라가 아닌 곳에 살기에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5년여를 살아오면서 아직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 없이 잘 관리하며 살았고, 코로나가 시작된 후 2년을 조심히 버티며 살았건만 결국 막판에 부스터 샷까지 맞고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 나라를 떠나려고 하니 이곳에서의 남은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난 연말에 이곳에서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과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해야지 싶어 여러 번의 모임을 주선한 터였다. 모임 당일 한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 몇 명이 목이 좀 칼칼하고 감기 증상이 있다고 조심하는 게 좋겠다며 모임 일주일 전 참석한 저녁식사에서 확진자가 나와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다른 가족에게도 연락해 모임을 취소하고 다들 테스트를 하고 한가족은 확진 판정을 받아 주선했던 모임이 그대로 끝이 났다. 그렇게 서로 조심하는 게 좋겠다며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조촐히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1월 1일 예정되어있던 여행이 있어 열흘 가까이 이곳을 떠나 있었고, 다녀와 신년모임을 위해 연락했더니 나머지 가족도 다른 루트를 통해 확진이 되어 격리 중이었다.
이곳에 있는 많은 한국 가족의 확진얘기가 들려왔고, 우리는 더욱더 조심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친구 생일파티에 다녀오고 이틀 후 친구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가 피곤해하고 열이 나서 테스트를 해보니 양성이란다. 순간 앞이 하얘졌다. 슬립오버까지 하고 왔으니 이건 빼박이겠다 싶었다. 우리 아이 포함 같이 참석했던 세명 다 매일 검사를 하고 유심히 지켜봤다. 접촉 후 일주일 내내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와 운 좋게 옮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고 이제 격리를 할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해 같이 밥을 먹기 시작. 이틀 후, 아이가 목이 아프단다. 열을 재보니 열도 있다. 그렇게 일주일 넘는 잠복기 후에 양성을 받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남편이, 그다음 내가 확진이 되었다. 아직 첫째는 음성이라 계속 혼자 방에서 지내고 있다.
이제 바이러스가 많이 약해졌다고 하더니 아이와 남편은 목감기 수준의 통증이고 나는 거의 증상이 없다. 가족 중에 확진자가 없었다면 테스트를 할 필요도 못 느낄 만큼. 진짜 확진이 맞나? 키트가 오류였던 걸 아닐까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 가족과 같이 격리하는 게 나중에 혼자 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역으로 격리를 당하는 첫째가 좀 안쓰럽긴 하지만 오늘도 나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테라스에 나와 있다.
평소에 '이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왠지 공감이 되었다.
빨리 격리 시간이 지나 테라스를 벗어나 햇살 가득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