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에게 말하는 퇴사의 진심
그제, 나는 네 번째 회사를 퇴사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퇴사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설명해야 할 타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할만한 답을 찾기 위해 한동안 고민해야 했다.
일이 많아서? 경영진의 비전이 없어서?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한 고생이 보여서? 이직할 회사 연봉이 더 나아서?
그도 아니면 쉬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할 때는 위의 이유들이 내 퇴사의 사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뜩 어젯밤 잠든 아이의 유모차를 끌며, 그리고 오늘 온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단지 나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점차 깊숙이 회사의 톱니바퀴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싫어 그곳을 뛰쳐나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본능처럼 살기 위해 회사와 내가 일체화되어가는 것을 스스로가 두고 볼 수 없어서는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회사에서 그 어떤 때보다 주역이 되어 보았고 나 없이는 일의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지 않는 일들을 경험했다. 그게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내가 처음부터 오래 해왔고 관계망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매일매일 아침, 밤, 때로는 주말까지 쉴 새 없이 울려되는 전화기의 진동음과 나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를 옥죄고 지치게 했다. 그것이 진짜 내가 퇴사하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워라벨이라는 한 단어로 포장한 진심 말이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이유일뿐.
식당에서 농담 삼아 2인분 같은 1인분을 달라고 하듯 이 회사는 5년 같은 만 2년을 보냈다. 약 200회의 홈쇼핑 방송을 진행했고 그것을 위해 준비한 미팅도 200여 회는 될 것이다. 회사가 내 담당 채널을 전략 채널로 생각 한덕에 많은 지원이 있었고 그렇기에 비중 있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의 기회는 정말 운이었고 감사하게도 경험치라는 실력의 범주에 녹일 수 있었다. 그것을 발판으로 다른 회사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내와 어머니는 또 이직이냐며 주변에 이직 소식 알리기를 부끄러워하신다. 다른 회사에 적응하느라 고생할 남편이 걱정인 아내, 전통적인 직장생활 방식으로 비추어 볼 때 메뚜기 같이 적응 못하는 것 같은 아들이 못마땅한 어머니. 회사들도 그런 측면이 걱정인지 이직 회수가 많아질수록 최종 합격율도 떨어져 갔다.
사실 스스로도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선배들을 본 적이 없어 내 미래가 어떤 그림이 될지 잘 상상이 가지는 않는다. 한 회사를 10~20년 다니거나 두세 번 이직 끝에 팀장이나 이사로 자리 잡은 선배들은 더러 보았지만 나처럼 업종, 채널을 다양하게 한 사람은 나도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지금 나온 회사는 이전 회사들에서 경험한 일들의 집합체였다. 그만큼 업무가 광범위하고 양이 많았다. 이전 회사가 너무 경험할 부분이 부족해 일을 배우려고 온 회사였지만 일에 영혼이 갈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일과 나를 분리하되 각각의 영역에서 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균형 있는 삶을 이번에는 잘해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매일매일 질문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