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기분 은행.

아이와의 눈높이가 한 계단 올라간 순간에 대한 기록


나는 기분 은행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을 향해 내 상태의 잔고가 바닥이 나려할 때 그 때가 진짜 베팅을 할 때이다. 백지수표를 건네 듯 쓱 마음을 써서 버텨주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밑거름이 되고 사랑을 품는 힘이 됨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 그게 저의 목표예요." 우리 신통이 처음으로 이러한 문장으로 엄마를 설득하였다. 감격스러웠다. 5세 때의 '그래도 더 놀거야. 난 더 놀고 싶어.'했던 울고불고의 생떼가 아닌 꽤나 침착한 7세의 성장을 마주한 날이었다. 왜 자신이 지금 친구와 헤어질 수 없는지, 이 친구와 함께 집에 가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자신만의 계획을 나름대로 차분하고 끈기있게 엄마를 설득하는 모습에 '이 정도의 끈기이면 이쯤에서 내가 수용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 매주 금요일은 유일하게 오후 5시 전후로 시간이 나는 날이다. 신통이가 먼저 하원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방통이를 함께 데리러 가는 일과. 신통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하면, 친구들과 친구들 어머님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헤어지는거다."라고 약속을 하고 출발했다. 방통이까지 잘 하원해서 함께 우리 만의 아지트로 이동했다. 등나무 교실 같이 그늘지고 초록초록한 우리만의 아지트로. 7세 남아 둘, 5세 여아 둘, 3세 여아 그리고 엄마 셋 이렇게 모여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러쿵 저러쿵 놀다가 토라졌다가 뭐 그렇게 평범한듯 아닌듯한 시간이 흐르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통이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글썽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얼른 신통이를 벤치 끝자락에 데려와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왼손 주먹을 쥐며 '이건 신통이가 더 놀고싶은 생각'이고 오른손 주먹을 쥐며 '이건 엄마와의 약속'인데 두 주먹을 부딪혔다가 양손 바닥을 펼치며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라고 질문하였다. 그랬더니 신통이가 지난주부터 자신의 방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 중인 점을 회상하면서 나름의 논리를 펼치는 게 아닌가. 초여름에 공사를 할 계획이고 한여름 전까지 이것을 해야 하기에 혼자서는 시간이 부족하므로 이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어머니,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라고 하는데, 스피치가 놀라웠다. 오히려 박물관 공사에 대한 기대가 드는거다. 언제나 여러가지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감탄을 안겨주는 신통한 아이.


그렇지만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키고 씻고 자는 시간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인 나의 육아원칙이기에(나의 왼쪽 주먹)나의 선택은 곤란에 빠졌다. 그래도 신통이가 애써 펼친 그 꿈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평소 신통이가 얼마나 박물관을 좋아하고 관련 자료를 깊게 보는지 알기에 최근 집과 건축책, 토목과 건축책, 갖가지 건축 관련 그림책에 푹 빠져있는 아이를 이해하기에(나의 오른쪽 주먹), "엄마는 신통이 생각을 수용할게. 신통이가 엄마를 설득했어. 다만 친구 어머님의 뜻을 확인해서 허락을 하면 참 좋은 일이지만 허락하지 않더라도 울지말고 씩씩하게 잘 인사하고 헤어지자."라고 대화를 만족스럽게 마치게 되었다. 아이의 만족이 느껴졌다.


엄마를 설득해낸 신통이가 확신에 가득 차 친구 엄마에게 허락을 구했지만 알고보니 친구네 상황은 모처럼 아빠와 함께 가족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서럽게 터지며 나에게 안겼다가 (그러더니 둘째 방통이까지 따라 우는...하..) 방통이는 웨건에 겨우 태워 끌고 또 애써 삼분의 일쯤 어르고 달래 자전거를 집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통이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그 실망한 마음의 크기를 신통이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엄마, 공사 계획은 이제 다 깨져버렸어요. 내일 저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을 거예요" 다음 날 신통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친구와 그렇게도 좋아하는 박물관에 갈 예정이었지만 그것조차 부정하는 거였다.


"그래. 엄마는 신통이 생각, 마음 알겠어. 지금은 그렇다는거지? 오늘은 그렇게 두자 그냥. 나중에 혹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여지를 남기며 그 헤쳐진 마음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신통이도 엄마가 부정하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여느때와 같이 스스로 씻기 위해 옷을 벗어 세탁망에 넣다가 또 울먹이며 "엄마 저 기분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는거다. 그래서 "그래, 엄마가 충전 좀 해줄까? 엄마의 남은 기분이라도 우리 신통이에게 나눠줄게."하면서 한금 안아주었다.


솔직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엄마의 남은 기분이랬다. 나도 아이를 놓치않고 끝까지 존중하며 상대하는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쓰는거라 기분이 남아있지 않았다. 김윤나 작가님의 [말그릇]이나 김종원 작가님의 [인문학 질문의 기적] 등과 같은 서적들을 접하면서 더욱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로 부족한 나를 뛰어넘느라 애를 쓰고 있었던 거다. 첫 아이의 첫 7세의 성장과 고민 앞에서 서로에게 강렬한 기억이 될 이 대화를 제대로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좋은 책들과 훌륭한 작가들과 공감한 이후의 나라면 과거의 나보다 마땅히 더욱 더 너그럽게 인내하며 호흡하는 태도를 아이에게 몸소 실천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우리 신통이의 존재를 느끼면서 그렇게 말없이 안은 채로 있었다. 잠시 후에 신통이 "엄마, 몇 분 지났어요?' 묻기에 그런 것 같다고 하며 이제 좀 기분이 나아졌냐고 물으니 '안좋은 기분이 더 들어왔어요.' 그러는거다. 여태 공감하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그런 노력이 있었는데도! 이 놈이 만족을 못하고ㅜㅜ 휴~정말 이쯤에는 엄마로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 드는거다. 왜, 정말 왜, 아이들은 부모의 한계에 도전하는 걸까.. 아니 이 표현은 맞지 않을거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성장은 스스로 눈부시게 발전하기도 하기도 한다. 보통 그 아이의 타고난 장점일거다. 그렇지만 때때로 아이의 성장은 부모가 양육자로서 한계에 부딪히는 벽 하나, 바로 뒤에서 그 벽을 극복하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아이들에게 어떤 어려운 면이 있을 때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성장의 모멘텀일지도.


등나무 교실에서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고 집까지 오는 길, 그리고 집에 와서도! 신통아~정말 이래야 하는거니~참 길다 너의 기분... 참...;; 이런 생각은 사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하지만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가족의 탄탄한 신뢰의 고리를 만들고 싶기에. 나는 기분 은행이 되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을 향해 내 기분의 잔고가 바닥이 나려할 때 그 때가 진짜, 베팅을 할 때이다. 백지수표를 건네 듯 쓱 마음을 써서 버텨주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밑거름이 되고 믿음을 품는 힘이 됨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신통아, 엄마 그래도 감탄한 게 하나 있어.' 신통이 귀 쫑긋 느껴졌다. "우리 신통이가 이만큼이나 실망하고 속상할 정도로 실은 그렇게 큰 계획이 우리 신통이에게 있었다는 거. 정말 놀라워." 이 말을 들려줬을 때 신통이의 꼬여있던 마음의 한 줄기가 스스륵 하고 풀리는 게 안고 있는 그 몸에서 바로 느껴졌다. 정말 교감하는 느낌이 든거다. 그리고 나서 "신통아, 이제 스스로 씻을 정도의 기분은 있니?" 하니 "아니."라고~^^;; (한번 더 기분 은행 출동!) "그럼 혹시 스스로 씻으면서 기분이 좀 바뀌는지 한번 볼래?"라고 스윽 권유하였더니 자신은 모르게 그만 금새 풀려서 총총총 욕실로 가는게 아닌가.


그 뒤로 평소와 다름없이 스스로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를 두 번이나 싹싹이하고 구글 스피커에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주문하며 춤도 추고 음악을 즐기다가 양치도 하고 와이책 집과 건축 뒤에 있는 서술형 문제를 가져와 혼자 골몰히 풀고 풀며 가족 회의 좀 하자는 말에도 "이제 괜찮아요. 어차피 공사 계획은 바꾸면 되요." 아이다운 어휘로, 멋쩍게 또 예쁘게 웃는, 마치 시원한 산들 바람 부는 마을의 소년같은 모습을 보인 신통이였다.


아이가 진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따르는 댓가를 치루는 일, 그 성장통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겪어내야 한다. 이런 걸 모른채 그저, 그냥 알아서 큰다고 여긴다면 그때 감당해야 할 몫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원인도 모른 채 방황하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양육자가 관심있게 보고 다루어야 했을 몫을 어른이 된 아이가 홀로 짊어질 수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기도 해야하고 동시에 발달 과정에 따른 아이의 의욕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떠한 계기로써 성장하는지도 알아차려야 하는 엄마의 역할이란, 뛰어난 관찰자이자, 현명한 실천가. 말보다 무거운 소임과 책임을 요하는, 이 역할은 정말 얼마나 탁월하고 유능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진솔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러면 존중과 너그러움, 이해와 같은 미덕에 차례 차례 가 닿을 날이 온다는 것도.


어렵고 행복하고 또 어려운 육아. 삶에 대한 열정을 다 태우고 다시 또 살려내는 엄마의 길이 어떠한 의미인지, 오늘의 신선한 충격과 경험을 꼭 남기고 싶었다.


P.S: 신통아 방통아, 엄마의 이 일기를 보고 미래에 너희가 어여쁜 아기를 낳고 기를 때 참고가 되기를 바래. 엄마는 매일 엄마의 기분 은행에 건강하고 튼튼한 기분을 많이 많이 저축할게. 너희 둘 등원 후에 말이야. ㅎㅎ 사랑해.


신통한 박물관 공사는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