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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렘베어 Dec 24. 2022

성탄절 성탄절 노래를 하면 성탄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On chante tant Noël qu'il vient

성탄절 성탄절 노래를 하면 성탄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On chante tant Noël qu'il vient)


반짝이는 오너먼트와 포근히 쌓이는 눈.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한 해의 마지막 빨간날이다.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노엘(Noël)이라고 부른다. 노엘은 크리스마스 이외에도 캐롤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뜻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명절이니만큼, 사람들은 11월 초부터 슬슬 트리를 꺼내놓기 시작하다가 12월이 되기도 전에 벌써 막셰 드 노엘(Marche de Noël: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크리스마스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는 오늘 소개하는 속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성탄절 노래를 부르니 찾아온다”라는 말은 캐롤을 간절히 불러댈 정도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격하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그로 인해 분주함을 암시할 때 쓰던 19세기 속담이다.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발라드 황제 프랑수아 비용


이 속담은 프랑스 최초의 근대 시인, 또는 저주받은 천재 시인이라고 불렸던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 1431 ~ 1463?)의 발라드 중 하나인 속담의 발라드(Ballade des Proverbes)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용은 도둑 시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다 신부의 양자로 들어간 후 파리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손버릇이 나쁘고 폭력적이어서 감옥을 들락날락하다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된다. 추방형으로 감형된 뒤 어찌 되었는지 말년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편, 동시대 궁정시인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샤를 도를레앙(Charles d'Orleans)은 영국에서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는 대귀족으로, 비용을 블로아 성에 초대하였다. 비용이 오를레앙 공 밑에서 블로아 궁정에 계속 있었더라면 배 따시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둘의 사이는 악화되었는지 비용은 몇 년 뒤 다른 지방의 감옥에서 다시 발견된다. 비용이 오를레앙 공작에게 화해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발라드가 바로 <속담의 발라드>이다.


염소가 너무 긁어대면 잠을 자지 못하기 마련
/Tant gratte chèvre que mal gît,
우물물을 너무 퍼올리면 물단지는 깨지기 마련
/Tant va le pot à l'eau qu'il brise,
쇠를 너무 달구면 붉어지기 마련
/Tant chauffe-on le fer qu'il rougit,
너무 세게 두드린다면 부서지기 마련
/Tant le maille-on qu'il se débrise,
사람은 칭찬받는 만큼 훌륭하기 마련
/Tant vaut l'homme comme on le prise,
멀리 간 만큼 잊혀지기 마련
/Tant s'élogne-il qu'il n'en souvient,
못된 만큼 멸시받기 마련
/Tant mauvais est qu'on le déprise,
성탄절 노래를 너무 부르면 성탄절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Tant crie-l'on Noël qu'il vient.

- 프랑수아 비용, 속담의 노래(Ballade des proverbes) 중


발라드는 여러 개의 연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행마다 ‘성탄절 노래를 부르면 성탄절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마지막 연에서는 전하~를 외치며, 오를레앙 공에게 성을 떠난 자신이 바보였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한다.


노엘에 대해 비용이 노래한 한 편의 시가 또 있다.

성탄절 즈음, 죽음의 계절,
늑대들이 바람을 먹으며 살아가는 나날,
Sur le Noël, morte saison,
Que les loups se  vivent du vent,

 - 프랑수아 비용, 유증시(Le Lais) II(1456) 중


위 시를 보면, 비용에게 크리스마스 그리 달가운 명절이 아니었던 듯하다. 황금으로 빛나는 트리 조명이 다 무어냐? 한겨울의 냉기 속에서 외로이 떨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의미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에는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며 뜻깊게 보내려 한다!



참고자료 :

Pierre-Alexandre Gratet-Duplessis, La fleur des proverbes français(1853).

François Villon, Le Lais (1456). https://fr.m.wikisource.org/wiki/Le_Lais ​

François Villon, Ballade des Proverbes(1458).

송면.<프랑수아 비용 그의 시와 세계>(1995).

김준현. (2011). 비용의 발라드 연구를 위한 전망 (II). 외국문학연구, 43, 83-116.

김준현, 손주경. <낯선 시간의 매혹>(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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