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화가 나면, 늑대보다 고약하다(Quand les brebis enragent, elles sont pires que les loups).
양은 하얀 털을 가진 온화한 동물로, 고대부터 인류를 털과 고기로 먹여살린 위대한 동물이다. 그뿐이랴? 동서양을 막론하고 희생양, 속죄양이라는 명목으로 고대 제사상에서 엄청난 수의 양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속담에서도 양은 나약하여 희생되는 약자로 그려진다. 참고로 아래 프랑스 속담들에 등장하는 양은 숫양보다도 순하다고 알려진 암양(brebis)이다. *숫양은 bélier, 성별을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양을 mouton이라 부른다.
양을 세어도 늑대가 잡아먹는다(Brebis comptées , le loup les mange).
늑대를 믿는 양이 바보지(Folle est la brebis qui au loup se confesse).
양처럼 행동하면 늑대가 잡아먹는다(qui se fait brebis, le loup le mange).
양 한 마리면 늑대 두 마리가 배불리 먹는다(Deux loups mangent bien une brebis).
이처럼 속담 속에서도 양들은 언제나 늑대가 잡아먹힐 위험에 처해 있으며, 주인인 인간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하지만 양도 빡칠 때가 있는 법.
영화 <Black Sheep> 스틸컷.
사실 프랑스어로 광견병(공수병 : rage)과 분노(rage)는 같은 단어로, 공수병에 걸려 미친 양을 화가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쨌든 병에 걸려 미쳤건 화가 났건 양이 머리로 박치기를 하면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무섭다고 한다. 이 '양이 화가 나면 늑대보다 고약하다'는 속담은 아무리 약자여도 인내심이 극에 달하면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속담과 비슷하지만, 약간의 경멸조가 비친다.
위 속담처럼 프랑스에서는 순하다가도 화가 나면 엄청나게 무서워지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사람들을 '(공수병에 걸려) 미친 양(mouton enragé)'이라고 칭한다. 역동의 프랑스 18세기, 불공정한 일에 열변을 토하며 싸우던 계몽주의자 니콜라 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에게 같은 백과전서파였던 튀르고(Anne Turgot, 1727-1781)가 붙인 별명이 이것이었다.
오, 이번만은 사람 좋은 콩도르세가 미친 양이 되었군요.
/ Oh, pour cette fois le bon Condorcet est devenu un mouton enragé.
- 1774/05/14, 튀르고가 콩도르세에게 보낸 편지 중.
순하던 이가 갑작스럽게 광포해진다면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100% 양의 잘못일까? 주변에 순한 양 같은 사람들이 돌변하여 화를 낸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늑대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Le Roux de Lincy, Antoine, Le livre des proverbes français, précédé de recherches historiques sur les proverbes français et leur emploi dans la littérature du moyen âge et de la Renaissance. Tome 2,Edition 2 / par M. Le Roux de Lincy. 1859.
Amory de Langerack, Joséphine. Les proverbes : histoire anecdotique et morale des proverbes et dictons français (4e édition) / par Mlle J. Amory de Langerack, etc. 1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