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팬 안 죽고 다시 왔다. 6년동안 이러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준익 감독 신작인 <자산어보>가 개봉했다. 당연히 보고 왔음. 자산어보도 참 잘 만든 영화였고 재밌었다. 믿고 보는 감독이다. 사실 그렇다면 자산어보를 리뷰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지만, 만약에 자산어보가 마음에 드셨다면 감독의 필모 중 내 HQ인 사도를 같이 봐주시면 안될까요?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덕후의 마음이라. 저는 이런 마음으로 아리애스터 감독 작품 두 편을 보고 조던필 감독 작품 두 편도 후루룩 봤기 때문에...
어쨌든, 이런 이유로 다짜고짜 사도를 보라고 들이밀기에는 사도가 굉장히 고증에 충실한 정통사극물이라서, 그리고 설명이 은근히 불친절하다고 생각해서, 만약 친구들이 사도를 보려고 하면 이 정도는 알고 가야 해!라고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사도라는 영화의 스포일러는 담기지 않을 예정이다.
사도세자가 죽는 것이 <사도>의 스포일러가 아니란 것이 전제된 말이지만... <사도>는 단순히 사도세자라는 인물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닌,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3대의 부자 갈등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는 시대상은 영조가 태어날 때부터... 그러니까 조금 위로 쭉쭉쭉 올라갈 것이라서 영화 <사도>의 스포일러보다는 영조의 인생사 내용(+a가 있다면 정조에 대해서)이 주가 되지 않을까 한다.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으니 <사도> 보실 거라면, 내지는 봤는데 더 깊게 즐기고 싶으시면 추천.
전체적으로 이 세대 위쪽의 왕조 가족사를 다루면서 내려올 것인데, 영조의 선대 왕은 형 경종으로 이 이야기를 다루려면 당연히 경종의 선대(경종과 영조의 아버지) 왕 숙종을 언급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숙종도 간단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숙종을 말하려면 현종을 현종을 말하려면 효종을 ...더보기
숙종
2년 후에 직계 손자를 연기하시는 그 분 숙종 얘기를 하려면 또 위로 쭉쭉쭉쭉 올라가야 하는데, 간단하게만 정리하자. 숙종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정통성'이 될 것이다.
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
광해군은 후궁의 둘째 아들.
인조는 숙종의 후궁의 아들인 정원군의 첫째 아들 줄여서 종친.
효종은 왕후의 아들이지만 형 소현세자가 사망 후 세자로 책봉된 봉림대군(둘째).
현종은 왕후의 첫째 아들. 조선왕조사에 얼마 없는 세손-세자-왕 단계의 정석.
숙종은 왕후의 첫째 아들. 아버지도 적장자이고 본인도 적장자인-정통성 가뭄이었던 조선왕조사 정통성의 희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왕권이 보장되어 있었던 지위를 가진 숙종은 본인의 권위를 잘 활용한다. 그는 재위 중 몇 번의 환국을 통해 주류 당파를 손바닥 뒤집듯 해 신하들을 휘어잡는다. 이런 환국 정치의 원인에는 그의 정통성에서 나온 권력뿐만이 아니라 특유의 불같은 성격도 한몫했을 듯. 명성왕후가 희로애락의 감정이 불같이 일어난다든지, 아침점심저녁으로 기분이 달라진다는 말을 했다 하는데 나는 그 출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실록에서 비슷한 내용을 인증해주는 기록이 있기는 해서 그쪽을 인용한다.
이때에 임금의 노여움이 폭발하여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이 끊어지지 않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였다.
=임금 성질머리 장난 아니더라 봤냐
숙종실록 19권, 숙종 14년 7월 16일의 기록이다.
송시열 이야기도 하고 싶고, 고양이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이건 <사도>를 위한 글이니까 다음으로 미루고, 성격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왔냐 하니, 그의 일단 저지르고 보는 다혈질 성격이 경종의 출생 얘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나름대로 권력 싸움이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희빈 장씨는 남인 집안 사람이었고, 숙빈 최씨가 지지한 인현왕후 민씨는 서인 집안 사람이었다.
그리고 희빈 장씨가 숙종의 원자를 생산하고, 어찌어찌... 중간 생략...
숙종은 인현왕후 민씨를 이것저것 죄를 갖다 붙여(칠거지악이라고 여성이 지켜야 할 7가지가 있었는데 이 중 3가지를 들었다) 폐비시키고 희빈 장씨를 왕후로 책봉시킨다.
희빈 장씨는 당시 희빈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낮은 소의(昭儀)의 지위로, 숙종 14년 10월 경종을 낳고 15년 1월에서야 희빈으로 책봉되었다.
머리 위에 화전같은 건 뭐지? 왕자가 탄생하였으니 소의 장씨가 낳았다.
숙종실록 19권, 숙종 14년 10월 27일의 기록이다. 그리고 숙종 16년 5월, 희빈 장씨를 왕후에 책봉하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5달 후 10월, 희빈 장씨는 왕비에 오른다.
빠르다.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경종이 태어났다면... 졸업하기도 전에 희빈 장씨는 왕비가 되었다.
희빈 장씨는 좋은 집에 태어나서 머리를 따올릴 때부터 궁중에 들어와서 인효 공검(人孝恭儉)하여 덕이 후궁(後宮)에 드러나 일국의 모의(母儀)가 될 만하니, 함께 종묘를 받들고 영구히 하늘의 상서로움을 받을 것이다.
이에 올려서 왕비를 삼노니, 예관으로 하여금 일체 예절에 따라 즉각 거행하게 하라.
=장희빈을 왕비로! (핵심 기사만 가져와서 이렇지만 물론 절대 이렇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왕비라는 것은)
숙종 15년 5월 6일의 기록이다. 자연스럽게 원자(경종)는 적장자의 지위를 가지고 세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장씨는 ...더보기
본격 사도 얘기하는데 사도 아빠도 안 태어난 포스팅! 시리즈 깁니다 좀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