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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 May 06. 2021

영화 <사도>, 보기 전 알면 좋을 지식들 (3)

경종 1편 - 영조는 태어났는데...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그냥 좋아하는 캐스팅이라 넣어 봤습니다. 

드디어 영조의 가계도에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다. 사실 촌수로 따지면 숙종이 더 가깝겠지만... 어찌됐든 아직 사도까지 족보 내려가려면 한참 멀었다.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경종...할 얘기가 정말 많다. 그 희빈 장씨의 아들이자 연잉군이 숙종에게 이쁨받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대리청정에 고생고생한 그 세자. 

이 대리청정은 숙종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노론(서인)의 수장급인 이이명이 숙종과 독대한 일(a.k.a 정유독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가 대리청정 중 매우 조심스러웠던 이유로 이해가 될 것이다. 이이명의 당파인 노론은 (당시에도) 연잉군의 지지 세력이었고, 내용도 알 수 없는 그와 숙종의 독대 이후 세자(지지세력=노론 반대파인 소론)를 대리청정시킨다니, 무서울 만도 하다.


어쨌든, 이 아슬아슬 위태위태 시작되는 쑈쑈쑈 대리청정을 무사히 끝마치고 경종은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순탄치 않다. 

경종은 30대 초에 즉위했는데(88년 출생 20년 즉위. 이렇게 쓰니까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지금쯤 한국나이 서른네살쯤인 경종은 작년에 즉위했답니다.), 사실 이때는 늦은 것이 맞지만... 그런다고 후사를 아예 못 볼 것도 아닌 나이였다. 당연하지 선조 좀 봐라(52년생인데 06년생 아들 낳음)... 그리고 숙종도 서른세 살 즈음에 영조를 낳았다. 

그런데 노론 4대신(김창집/조태채/이이명/이건명)은 경종이 즉위한 지 1년 만에 후계자를 세우기를 청한다. 대놓고 연잉군을 후계로 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지만, 경종에게 남자 가까운 친족이라곤 아들은 없고 형제뿐이니... 말 다 했다.


정언(正言) 이정소가 상소하기를,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신데도 아직껏 저사(儲嗣, 왕세자)가 없으시니 다만 중외(中外)의 신민(臣民)만이 근심스럽게 걱정하고 탄식할 뿐만이 아닙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자성(慈聖)께서는 거창한 애구(哀疚, 상중)중이신데도 반드시 더 걱정을 하실 것이요, 우리 선왕의 하늘에 계신 혼령께서도 반드시 돌아보시고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조종(祖宗)께서 이미 행하신 영전(令典)이 있으니, 어찌 오늘날 마땅히 준행(遵行)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바야흐로 국세는 위태롭고 인심은 흩어져 있으니, 더욱 마땅히 나라의 대본(大本)을 생각하고 종사의 지계(至計)를 꾀해야 할 것인데도 대신들은 아직껏 저사(儲嗣, 왕세자)를  세울 것을 청하는 일이 없으니, 신은 이를 개탄하는 바입니다. "(중략)이 일은 일각(一刻)이라도 늦출 수가 없으므로 신 등이 감히 깊은 밤중에 소대(召對)를 청한 것이니, 원컨대 전하의 생각을 더하시어 빨리 대계(大計)를 정하소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경종 1년 8월 20일의 기록이다.

이정소(노론): 대비께서 걱정 많으시니 빨리빨리 후계자 책봉 빨리빨리
돌아가신 님네 아버지도 아들 없다고 후계자 없다고 걱정 많이하실것이니 빨리빨리

참고로 이 시간도 갑자기 밤중에 궁 들이닥쳐 요청한 것임.

공식 집무시간에 건의하면 소론이 반대할 것이 뻔하니 들이닥친 것이긴 하지만 무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날치기 입법. 


이건명이 말하기를, "꼭 자전(慈殿;대비)의 수찰이 있어야만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책상 위를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봉서(封書)는 여기 있다." 하니, 김창집이 받아서 뜯었다. 피봉 안에는 종이 두 장이 들었는데, 한 장에는 해서(楷書)로 ‘연잉군’이란 세 글자가 써 있었고 한 장은 언문 교서였는데, 이르기를, "효종 대왕의 혈맥과 선대왕의 골육으로는 다만 주상과 연잉군 뿐이니, 어찌 딴 뜻이 있겠오? 나의 뜻은 이러하니 대신들에게 하교하심이 옳을 것이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읽어 보고는 울었다. 이건명이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해자(楷字)로 언문 교서를 번역해서 승정원에 내리게 하고 승지로 하여금 전지를 쓰게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그렇게 하라 하였다. 조영복(趙榮福)이 탑전(榻前)에서 전지를 썼는데, 전지에 이르기를, "연잉군을 저사(儲嗣; 왕세자)로 삼는다." 하였다.하였다.
이건명(노론) "후계자 정하는 큰일은 왕실 제일어른인 대비한테 OK받아야,,"
대비 편지 "연잉군밖에 없지 않냐"
경종"연잉군을 왕세자로 삼는다"

같은 날의 기록이다. 이렇게 인원왕후의 교지를 받아 경종은... 이라기보다 노론 세력은, 겨우겨우 얼레벌레 얼렁뚱땅 연잉군을 세자로 삼고, 곧 존칭을 왕세제로 정한다(이 기사 때는 아직 세제로 부를지 못 정해서 그냥 세자로 삼는다고 함). 여기서 적당히 마무리됐으면 살짝 무엄한 역적으로 끝났겠지만... 노론4대신은 멈추지 않는다.

세제 책봉의 과정이란...

선조 때 정철의 건저의 사건(세자를 정하시라고 건의한 건)에서 선조가 (40대인데도 자기는 아직 젊다며) 어이없어하고 정철이 모가지가 간당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왕권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아주.


어쨌든, 8월 20일 세제 책봉 소동이 일어난 지 불과 2개월 후, 세제(연잉군=영조)에게 대리청정을 시켜 보자고 주청한다. 10월 10일의 기록이다. 참고로 이 사이에 연잉군은 세 번 정도 세제 임명을 거두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정말이지 연잉군은... 살고 싶어 한다...


집의(執義) 조성복이 상소하기를, "(중략)전하께서 혹시 신료들을 인접(引接)하실 때나 정령(政令)을 재결하시는 사이에 곧 세제를 이끌어 곁에서 모시고 참청(參聽)하여 옳고 그름을 상량(商量)하고 이를 따라 훈습(訓習)하게 하신다면, 반드시 서무(庶務)를 밝게 연마해서 나라 일에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의에 깊이 유의하시고, 자지(慈旨)에 앙품(仰稟)하시어 결정하소서.(중략)"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진달한 바가 좋으니, 유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땅거미가 질 무렵 이윽고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를, "내가 이상한 질병이 있어서 10여 년 이래로 나아서 회복될 기약이 없으니, (중략) 정사가 지체됨이 많다. 이제 세제가 장성한데다 영민하고 총명하니, 만약 그에게 청정(聽政)하게 한다면 나라 일을 의탁할 수 있고, 나는 안심하고 조양(調養)할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나라 일을 모두 세제로 하여금 재단(裁斷)하게 하라." 하였다. 

승지 이기익·남도규와 응교 신절·교리 이중협 등이 곧바로 청대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였다. 이기익 등이 모두 말하기를, "선왕께서 임어(臨御)하신 지 40여 년에 여러 해를 위예(違豫)하셨고, 또 눈병이 있으시어 드디어 대리(代理)의 명을 내리셨으니, 실로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지 겨우 1년이고 춘추가 이제 한창이시며, 또 질환도 없으시어 기무(機務)가 정체되지 않고 있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이런 교지를 내리십니까? 신 등은 비록 죽더라도 감히 봉승(奉承)하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성명(成命)을 환수하소서. "하니, 

임금이 대답이 없고, 다만 말하기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기익·남도규·신절·이중협 등이 다시 나아가 번갈아 간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곧 임금이 말하기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조성복(노론) "전하 정치하실 때 세제를 옆에 두고 정치 배우게 하면 어떨까용?"
경종 "잘 말했다 나 몸도 원래 안 좋아서 일하는 데 지연되고 하는데 세제가 있으니 괜찮네. 걔 보고 대리청정 시켜보자 똑순이니까 잘 할거야"
이기익 등(노론(!) 중 온건파) "아니 전하 즉위하신지 1년이고 님 30대 한창이잖아요... 디비질만큼 아픈 적도 없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 역적스러워서 명 받들기가 좀 그렇네요..."
경종 "두번 말하게 하지 말어"


경종 1년 10월 10일의 기록이다. 흥미진진하다.

내용은 다소 긴데, 정리하자면 조성복이라는 자가 동궁(왕세제, 연잉군)에게 실무 정사를 참여시켜보는 것은 어떠하냐고 건의한다. 그리고 경종은 네 말이 옳다 하며 말 나온 김에... 사무보조를 넘어서 사장을 시켜버린다.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는 교지를 내린 것임. 사실 대리청정은 신하가 하자고 하는 것도 무엄한 일이다. 왕이 대리청정을 해볼까말까 싶어하면 신하들은 일단 그러지 마시라고 바닥에 엎드려 비는 것이 기본인데, (하늘 아래 조선 왕은 한 명인데 2명... 1.5명 정도가 있게 되는 것이니 충의 인증을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먼저 대리청정하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참 조선사 통틀어 보기 드문 일이다. 건방지고 무엄하고 역적스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10월 10일, 이 결정이 난 이후로 13일, 14일, 14일(2번), 15일, 15일(2번) 왕세제는 제발 그러지 좀 마시라고 상소를 계속 올린다. 정말 살고 싶어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느낌은 아니지만(그러기에 이 새우는 너무 크다) 그렇게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절박하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요약을 더하자면, 이 대리청정의 명은 일주일 만에 거두어진다. 10월 17일의 기록이다.

"전후의 비망기를 도로 거둘 것을 쾌히 허락하신 뒤에야 온 나라의 물결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그렇게 하라."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전후의 비망기=대리청정을 내린 명을 말한다. 

이후 대리청정의 명은 노론 측에서 청했다가 소론이 반대하고 경종이 몇 번을 번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21세기 민주주의의 현대인이 봐도 무엄함의 극단을 달리는 이 상황은 경종(&선의왕후 어씨의 종친 입양 시도)의 지지세력인 소론이 노론을 (불충의 명목으로) 공격할 기회를 제공하고, 노론 내에서도 그건 좀 조르주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다. 무리수를 달린 것이다.


너무 기쁘지만 왠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역적같지 않나?

그렇게 대리청정을 추진한 노론의 대갈머리들, 4대신과 주 세력들이 삭탈관직 등 중벌을 받는다. 

12월의 일이다.

"(중략)... 시험삼아 드러난 것으로 말해 본다면
김창집은 고묘(告廟)의 의논을 저지해 막고 윤지술의 악을 영구(營救)하였으며, 
이이명은 독대(獨對)해 여러 대신을 불러 가부를 묻기를 청하였으니, 그 마음 둔 바는 길 가는 사람도 알 수 있습니다.
이건명은 전의 전지(傳旨)를 거둘 것을 청한 데 분노한 나머지 칼날을 옮겨 급히 공격하고 상소가 등철(登徹)된 것을 혐오(嫌惡)하여 언로(言路)를 막을 것을 청하였으며, 
조태채는 기회를 틈타 요리조리 살피며 머리와 꼬리로 서로 호응하되 겉으로 여러 재상을 속여 정청(庭請)을 다시 설행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속으로는 삼흉(三凶)을 도와 차자로 절목(節目)의 강정(講定)을 청하였으니, 그 정상(情狀)이 너무나도 흉참(凶慘)합니다.

(중략)

청컨대 아울러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고, 이건명은 돌아오기를 기다려 일체 감률(勘律;죄의 경중을 따지어 적용할 형률을 정함.)하소서."하였는데, 

임금이 그대로 따르자, 박필몽이 일어나서 사례하기를, "이제 아뢴 대로 하라는 하교를 받았으니, 진실로 종사의 더할 수 없는 다행입니다. "
소론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역적입니다 ->위리안치 etc...해주세요"
경종"그리 하라"
박필몽(소론) "전하 최고"


경종 1년 12월 12일의 기록이다. 노론 4대신의 죄목을 나열하고 처벌하기를 청하니 경종이 그대로 따랐다. 죽지는 않는다. 이런 판을 벌였는데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곧 죽는다. 다음 해 임인옥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축옥사는 살살 속을 긁는 타입으로 무엄하다면(살살이라기엔 너무 무대뽀로 추진했지만) 임인옥사는 겉으로 드러내어놓고 역적질이 나타났기 때문에.


다음 해 3월의 일이다.

목호룡이란 자가 상변(上變)하여 고하기를, "역적으로서 성상을 시해하려는 자가 있어 혹은 칼이나 독약으로 한다고 하며, 또 폐출을 모의한다고 하니,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입니다. 청컨대 급히 역적을 토벌하여 종사를 안정시키소서."
목호룡 "전하 시해하려고 모의하는 역적들이 있어요"

경종 2년 3월 27일의 기록이다. 남인 집안의 서얼 자제인 목호룡이 고변해 일어난 사건이다. 참고로 이 고변의 배후에는 소론 강경파 김일경의 사주가 있었다. 그냥... 만들어진 사건일 수도 있고, 사실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사실여부는 어찌되었든 이 역모 사건으로 인해 앞에서 위리안치 etc...의 형에 처해진 4대신은 이때 사형을 당한다. 

상소 기록을 보면 육시(육시럴 놈의 그 육시 맞음)를 하라는 상소까지 있던데...거기까지는 아니고 대부분 사사(賜死)되었다. 이때 연루된 사람은 60여 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살아남은 자는 채 10명이 되지 못했다 한다. (같은 날의 기사에서 사관曰)


주요 인물은 대부분 노론 4대신의 친족 또는 주변인물이다. 

김창집의 손자 김성행

이이명 아들 이기지

이사명 아들 즉 이이명 조카 이희지, 사위 이천기

김춘택의 종제 김용택 등...

목호룡의 고변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역적들이 환관과 궁녀와 결탁해 이른바 삼급수(三急手)로 경종을 시해 또는 폐출을 모의했다 한다는 내용이었다. 삼급수는 대/평(平)/소 세 가지를 이르는데,


대급수란 자객으로 시해하는 것,

평급수는 숙종의 전교를 위조하여 폐출시키는 것,

소급수는 궁녀와 내통하여 음식에 독약을 타 독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경종을 쫓아내거나 죽인 후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데, 그들의 새로운 왕은 BONAMANA 바로 연잉군이다. 

이 노론의 IDOL... 연잉군은 어떻게 됐을까? 


물론 안 죽었으니까 사도가 태어났겠지만

딱히 어떻게 됐을지 호기심 유발도 실패한 3편은 분량 문제로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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