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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Mar 15. 2023

흥정

여기에서 들숨 날숨과 같은


네팔에서 가장 재미있을수도 또 고통스러울수도 있는게 바로 흥정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결국 네팔에서 무언가를 사야되는 순간이 오게되는데 주머니 사정과 건강이 포함된 '여유'가 있다면 개도국의 이벤트쯤으로 넘어가는것이고 주머니 사정과 건강이 포함된 '여유'가 없다면 그때부터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 바로 흥정인것이다.


1. 네팔이 아무리 비싸도 한국보다 비싼건 거의 없다

전자제품과 병원비를 제외하고 네팔의 모든 가격은 한국보다 비싸지 않다. 아무리 급하게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한국보다 비싼값을 지불하지 말아야 한다. 간혹 스트레스제로 여행을 추구하면서 현지요금에 크게 신경 안쓰고 마음편한 여행을 하시는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이 유일하게 지키는 가이드라인이 '네팔요금이 한국보다 비쌀수 없다' 이거 딱 한가지다. 네팔 요금은 절대로 한국보다 비쌀수 없다.


2. 네팔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반드시 외국인 요금을 받는다

네팔에서 외국인은 '비데쉬'라고 별도의 요금체계를 갖는다. 네팔 주요관광지 입장료를 보면 서남아시아 국가연합 요금이 다르고 중국인 요금이 다르며 일반 외국인 요금과 네팔인 요금이 다르다. 힌두교 카스트에 견고히 젖어서일까 '특별한 사람' 사람간 계층구분에 익숙한 편이며 한국으로 1년에 노동자로 만명 단위가 나가고 네팔 주요 외화 수입에 한국에서 보내는 돈이 3등이니 2등이니 해도 한국인에 대한 국민적 호감이나 할인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것은 물건을 판매하는 네팔사람들의 마인드인데 외국인에게 외국인요금을 받지 못했다면 자기가 극심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점이다. 힌두교에서 외국인은 카스트에 들지도 못하는 등급 외 존재. 그러나 안타깝게 그들이 돈이 많으니 어쩔수 없이 이용해야 되는 쉽지않은 존재임에 분명하다.


3.흥정의 시작은 구간설정

상점에서 물건 흥정이 시작되면 손님이 제시한 가격과 주인이 제시한 가격의 중간점이 보통 실제 거래요금이 되는데 이 적정한 거래요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면서 접근하는지가 핵심이다. 따라서 먼저 요금을 제시하는쪽이 불리한 입장에 취해지며 먼저 요금을 제시하는쪽은 판매든 구매든 자기에게 유리하고자 극단적으로 낮거나 높은 금액을 부르게되고 이것이 서로가 용납 가능한 상식을 벗어나게 되면 아예 흥정도 못해보고 결렬이 되는거고 되겠다 싶으면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거다. 잊지마시라 그옛날 용산에서 '얼마까지 보고왔어요?' 선제시를 요청하는 현지상점은 우선협상대상에서 일단 거르는게 맞다.


4.그래서 네팔에는 정가가 없다

당장에 한국 당근마켓을 보시라 고정금액 기반으로 "쿨거래"를 찾으면서 스트레스 없는 빠른 거래를 상호 추구하지만 네팔,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신용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추후상담" 내지는 "관심있는분 DM 주세요"가 되는것이다. 네팔은 페이스북 중고 장터가 활발한 편인데 금액이 고정으로 올라와있는경우 구매자 입장에서 반드시 깎아서 구매해야 되는것이고 (그래서 판매자는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포스팅하고) 금액이 1루피나 무료로 포스팅 되어있는경우가 많다. 흥정은 필연적인 숨쉬기와 같은 필수 요소로 삶에 자리잡게 되는것이다. 당장 인터넷에 수많은 트레킹 에이전씨를 보시라 포터 얼마 가이드 얼마 정찰제로 운영하는 가게가 있는지? 결국 네팔은 사람봐가면서 상황봐가면서 요금이 책정되는 탄력요금 시장인것이다.


5.갑과을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한국에서의 갑질은 이제 터부를 넘어 극혐까지 다가서고있지만 안타깝게도 네팔에서는 개념이 다르다. 한국에서의 갑과 을의 정의는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이 갑이라고 생각하는것이 당연하겠지만 네팔과 개도국에서는 반대로 손님이 을이되는경우가 훨씬 많다. 이들 갑 사장님의 마인드는 이런식이다 "니가 물건이 필요하니까 이시간에 나를 찾아왔지 내가 보고싶어서 왔겠냐?" 따라서 한국식의 살가운 서비스는 한국에 다녀온 한국말하는 사장님이 일부 가능한부분이고 물건파는 상점에서는 그냥 을이되어 "판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인드로 물건을 구입하게 되는것이다. 열받지 마시라 안사면 그만이라는 벼랑끝 전술이 의외로 잘 통하는나라가 바로 네팔이고 안사면 그만인것이다.


6.고객서비스가 안되는이유

네팔에 여행온 소중한 하루중에 시간을 내어 카트만두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고 가정해보자 애석하게도 버스는 박타푸르 가는길에 고장나버렸고 5분이면 고친다는 버스기사만 철썩같이 믿고있다가 오전을 그대로 날려버렸고 너무 열이받은 나머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버렸다. 늦은 점심을먹고 정신을 차리고보니 날려버린 하루가 너무 괴씸한지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던 시티투어 여행사 지점장(호객꾼)에게 찾아가서 따지기 시작한다.


한국식 "보상"이 포함된 사고방식 = 시티투어 표값10불 +귀가 택시비 5불 +하루날린 정신적 피해보상 10 + 한국 하루 임금 50불  = 75불 이정도는 업체에서 내놔야 손님이 그나마 납득할수 있는 금액

네팔식 "배상" 사고방식 = 시티투어 표값 10불 돌려준것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그것도 한국말 할줄아니까 인터넷에 후기 나쁘게 쓸까봐 돌려주는것

네팔식 "원래" 사고방식 = 조금 더 기다렸으면 박타푸르도 보고 예정대로 다 봤을텐데 니가 니발로 간거니까 환불불가 안녕 바이(Bye)


가장큰 문제는 저렴한 서비스를 이용해서 환불이나 배상 보상을 염두해두지 않았을때는 넓은 아량으로 넘어서겠지만 배상과 보상같은 책임을 기대하며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망했을경우 모두가 슬퍼질수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갑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는것 = 돈을 나눠서 내는것이 개도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수있다.


7.흥정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경우

여행와서 급하게 컴퓨터 마우스가 고장이나서 마우스를 하나 사야되는데 당신은 특정 브랜드의 마우스를 쓰던 사람이라서 어렵게 어렵게 물건을 팔것만 같은 매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매장에는 앳된 아가씨 한명이 케이팝 유튭을 시청하고있었고 저 구석에 찾는 마우스가 있음에도 마우스가 있냐는 물음에 없다고 답한다. 그럼 저 구석에 있는 마우스를 달라고 하고나서는 전자제품이니까 한국보다 적당히 비싼값을 치루려고 하는순간 점원은 한국가격의 다섯배를 불러버린다. 매장에 오기전 체크한 네팔 인터넷 쇼핑몰 가격보다 세배이상 비싼가격.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냥 사고 끝내자는 마음에 조금만 디스카운트를 요청했더니 "정찰제" 라고 하면서 쌀쌀맞게 물건을 도로 집어넣고 자리로 돌아가 케이팝 유튭을 마저 본다. 당신이 중국인처럼 생겼을경우 혹은 점원과 당신 둘중에 하나라도 영어가 안되는경우 이런 상황을 맞이할 확율이 매우 올라가지만 그 배경에는 자기는 월급받고 파는건데 할인해줄 권한도 없을뿐더러 사장없는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는 영어못하는 중국인이 귀찮을 따름인것이다 .


산에서 아픈데 헬기 불러도 흥정이 안된다.


8.상대성의 늪 

한국남자 사람이 네팔에서 가장 쉽게 어이없어하면서 나에게 외국인 요금을 받고있다고 바로 알아챌수있는 부분이 이발과 면도요금이다. 한국에서도 동네 남성전용 미용실가면 셀프 샴푸 포함 만원 이내에 해결이 되는데 네팔 여행자 거리에서 처음보는 외국인에게 제시되는 이발 요금은 천루피(한국돈 만원정도)가 보통이다. 이것은 순전히 서구 외국인들 문화에 기반한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남성 이발소는 이발과 면도의 기본 가격이 보통 50달러부터인데 갑자기 등장한 네팔이발소에서 이발 면도에 맛사지포함 8불을 제안한다면 대부분의 서양남성들은 '이게 무슨 감사한 일인가' 하면서 덥석 문다. 이 관성적 눈탱이 요금캡이 동양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데 한국남자들은 이게 뭐하자는건지 바로 알아차리고 즉시 적당한 요금구간을 흥정한다. *길에서 머리를 자르는 현지인들의 요금은 도시 150루피 시골 100루피다. 물론 외국인이 이용하는 것과 같은 시설 


9.흥정의 꽃 인드라이브 

네팔에 오는 수많은 배낭여행객들이 묻는 질문중에 하나가 '공항에서 타멜까지 택시요금 얼마냐?' 인데 피크요금 기준 오토바이 160루피 택시 458루피다.(오프타임에는 5%정도 저렴) 파타오(Phatao) 라는 앱을쓰면 요금이 조금더 비싼데 인드라이브는 수수료가 없어서 파타오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 파타오는 방글라가 고향. 인드라이브는 미국이 고향으로 파타오보다 인드라이브가 재미있는 점은 기사와 손님이 서로간 '흥정' 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작동원리는 단순하다 공항에서 타멜까지 구간을 설정하면 앱에서 정해주는 기본요금이 뜬다. 드라이버 찾기버튼을 누르면 나의 기본요금 오퍼를 보고 기본 요금 혹은 그 이상의 요금으로 나에게 오퍼가 역으로 들어오게되고 기사가 제시한 요금+나에게서 떨어진 거리+기사의 평점+차량의 종류를 보고 내가 차량을 결정하게 되는것이다. 인드라이브는 특히 흥정의 요소가 있어서 재미있다. 택시기사들이 쏠리는 타임에는 기본요금으로 수많은 오퍼가 역으로 들어오고 빗방울이 조금이라도 떨어질것같은 흐린하늘에는 기사들이 기본요금에는 절대 꿈적도 하지않는다.(네팔은 비가 한방울이라도 오면 택시요금이 순간적으로 수직 상승한다.) 수요와 공급을 철저히 기반으로 야간과 악천후에 빛을 발하는게 인드라이브다.


인드라이브는 고정요금기반이다. 출발지와 목적지에 대한 가격합의를 기반으로 이동하기때문에 협의가 되지않은 기사와 애초에 만날일이 없다. 그런데 관광지에서 외국인에게 한탕을 추구하는 기사들에게는 이게 영 눈엣 가시가 아닐수 없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바가지쓰고 싶지않고 네팔인 택시기사들은 당연히 외국인에게 외국인 요금을 받아야되는데 승차공유앱이 있으니 영 마음이 불편할따름인것이다. 실제로 네팔 국내선 공항 출구에서 인드라이브 앱을 쓰면 차량관리하는 아저씨가 굉장히 불편한 말투로 '저쪽 조명탑쪽으로 조용히 가줄' 것을 요구하며 주변 기사들도 분위기가 안좋아 지는것을 느낄수있다. 앱으로는 450루피 수고비 약간더해서 500이면 가는거리를 프리페이드 택시를 쓰면 최소 800 공항 앞 택시와 흥정을 하게되면 천루피부터 시작하게된다. 앱이 참 고마운것이 현지요금체계 아는, 심지어 인드라이브를 보여주면서 흥정을 하는데에도 외국인 요금을 꿋꿋하게 부르는 두꺼운 택시기사를 더이상 만날일이 없다는것이다. 나는 처음에 인드라이브를 쓰면 기사와 통화하고 위치 설명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앱에서 정해준 요금을 기반으로 현지 택시기사와 흥정을 시도해봤지만 '그냥 인드라이브 타라'는 기사의 푸념에 더이상 길에서 흥정하는걸 멈추기로 했다.


그럼에도 인드라이브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파타오는 비싼대신 사무소를 운영해서 고객과 기사의 컴플레인에 적극적으로(그나마)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인드라이브는 사무소 없이 앱만 존재하기때문에 기사와 컴플레인이 생겼을경우 적절한 대처(고객보호)가 어려울수 있다. 특히 네팔은 방글라와 같이 번호판이 현지어로 되어있어 관광객에게 번호판 인식이 어려울수있는데 이를 악용해서 대리운행이나 대차운행(차명운행)같은 변종운행이 생겨나게되고 오토바이의경우 조직적 앵벌이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되기도 한다. 승차공유앱의 안전수칙은 1. 반드시 유명한 랜드마크 중심으로 이동 2. 내가 있는 위치를 기사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되므로 반드시 주변에 있는 우호적인 현지인을 미리 준비시켜둘것 3. 목적지나 출발지가 특이한경우 오토바이보다 택시를 권장한다는 점이다.


10.인드라이브 조삼모사

인드라이브에 오더를 내리는 외국인 입장에서 기본요금 202루피 거리를 처음부터 250루피를 제시해서 벌떼같은 오퍼를 받고 그중에서 좋은 기사를 고르는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기본요금 202루피를 제시하고 내릴때 250루피를 줘서 고객 평점관리를 하는것이 좋을까? (*인드라이브는 자연스러운 팁문화 조성을 위해 반드시 뒷자리에 우수리 숫자를 붙이려고한다.) 카트만두 및 포카라 인드라이브 유경험자로서 후자가 훨씬 끝이 좋았다고 단연코 말할수있다. 외국인이 타면 오토바이든 택시든 어느나라에서 왔냐부터 줄줄히 대화가 이어지는데 내릴때 외국인이면 잔돈이 없다. 라던지 팁을 알아서 달라는 기분 나쁘고도 고전적인 수법을 만날수있다. 그냥 처음부터 기본요금으로 거래 성사를 하고 헤어질때 10루피 단위 잔돈 넣어두라는 식의 팁문화는 서로 기분좋게 헤어지는 길이며 이렇게 안한다고 해도 기사들이 손님이 외국인인걸 알면 10루피 단위 작은 잔돈은 줄생각도 안한다.


네팔에서 흥정은 필연적인것. 현지어를 할줄 아는 외국인에게도 외국인요금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나라에서 (외국인이 네팔어를 한다는건 최소 몇년 살았다는 반증임에도) 안타깝지만 순응해야 하는 몇가지 요소중에 하나가 흥정이라고 생각한다. 먼길 떠나오신 그대여 부디 열받지 마시라. 우리도 전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법이 없으니 무엇이든 있는자의 여유로 부디 웃고 넘기시고 여행 본연의 목적의 집중하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절박해서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서로 말이 온전히 통하지 않아 설명하지 못하는 웅크린 어깨너머 슬픈 속사정과 끝모를 깊은 슬픔에 대해서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한번쯤 넘어가주는 여유를 갖게되길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모두 눈탱이맞은 그돈이 유흥비가 아니길 빌며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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