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덕을 보고
글짓기와 글쓰기가 있다. 지어내는 일은 잘 못하므로 내 글은 주로 쓰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무엇인가에 대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쓰려면, 그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의 시작은 짓기보다는 쓰기부터가 먼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영화가 말해주듯.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이의 글은 짓기부터 시작했고,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몇몇 행동들은 철저하고 계획적인 거짓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다 어른의 세계에 가까운 듯하고 솔직한 것으로 어필하는 혜진을 만나면서부터 명은의 글은 짓기가 아닌 쓰기로 전화한다. 이 변화의 시도는 인정욕구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경쟁과 동경 그 중간쯤의 현실적인 선택이기에 자연스러웠고, 결국 외부의 우연을 통해 내부의 필연을 만드는 진화를 이뤄냈다.
다만 같은 솔직한 글이라 하더라도 혜진의 글은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진 않았(던 것 같)다. 글의 에너지가 내부로 향했다면, 명은의 솔직한 글은 외부로 향해있었다. 진실에 가까웠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마저도 부족한 글쓰기였다. 알고보니 외가의 가족도 고만고만했던 것. 그래서 가족이 알게 된다면 불편하게 될 글을 비밀의 언덕에 묻는다.
앞서 말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비밀의 언덕은 내 삶에서 떼어내고 묻어둬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만일 그랬다면, 높은 곳에 비밀을 묻진 않을 것 같다. 언덕은 높은 곳이라 항상 보게 된다. 그래서 진실에 다가가려는 힘과 이해의 노력이 조금은 부족해서 생긴 과오(가족들에게도 나에게도 불편함을 주는 글)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감추고 싶은 진실이 아니라, 나를 자극하는 내 모자람이랄까.
기록하는 사람은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되돌아볼 줄 아는 것이 힘이고, 그런 이유로 글쓰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