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오랜 시간도 필요 없다. 단 몇 개월이면 한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그 사람 주변의 공기조차 바꿀 수 있다.
내가 아무개를 만난 것은 약 6개월 전이었다. 아무개는 복잡했지만 순수했고, 답답했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차갑고,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인다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내가 아무개를 알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아무개의 어떤 점이 내가 그를 닮아가게 한 것일까.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다만 웃기다고는 생각했다. 그가 시덥잖은 개그를 날리며, 나를 웃기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일상적인 언어는 내게는 마치 누군가 나의 웃음 버튼을 마구 누르는 듯한, 치트키였다. 그의 어떤 의도도 지니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은 나에겐 보장된 지름길이었다. 아주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지름길.
그에게 중독된 것이 맞다고 본다. 아무개는 끊어낼 수 있지만 끊어내고 싶지 않았고, 유해했지만 유익했다. 그런 그의 말투가 내 입에 쉽게 달라붙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만의 지름길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련의 대화와 경험의 결과는 확실했다. 날카롭고 텅 빈 네이비 색의 언어들만 내뱉으며 살던 내 입엔 따스한 노란색 필터가 씌워졌다. 그 후로 나는 강렬하진 않지만, 초록색 그 비스무리한 말들을 뱉어낸다.
내 입에서 잎사귀 같은 말들이 피어날 때마다 아무개는 내게 '선착순'이라고 했다. 선하고 착하고 순수하다고. 그 말을 듣는 즉시, 나의 감정엔 알 수 없는 반발 심리가 돋아나 아니라고 아우성쳤지만, 이미 내 언어는 초록이다.
그에게만 보여주던 나의 초록 언어들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뱉어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잘 보이고 싶지 않아도, 내가 어떠한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라지 않아도.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빛들이 닿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조금의 씨앗들이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형태의 양분을 먹고 자라 내 안에 잎들로 꽃들로 나무로 피어날 것을 안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