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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gae일공오 May 13. 2022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손 내밀 수 없다

10살의 나로부터


 가진 게 많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거나 먼저 손 내밀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가 그렇게 행동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10살의 나는 교만하고 텅 빈 아이였습니다.

"난 제일 똑똑하고, 이해력이 좋고,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모든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

이 교만함들은 텅 빈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위협받은 복어가 몸을 부풀리듯, 10살의 나 자신이 발동시킨 방어기제였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꿈과 희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현실을 일깨워 줄만큼 가혹한 어른은 제 주위에 없었습니다. 이웃 어른들이 으레 아이들에게 하는 입바른 칭찬을 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요.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면 견딜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내 안의 몸집은 터질 듯이 커져갔지만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의 난 속이 텅 빈 것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교만에 빠진 어린아이였습니다.(지금도 그럴까요?)

하지만 그래서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나에게 가장 큰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나뿐이었습니다. 

아, 물론 부모님께서 저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지 않으신 건 아닙니다. 다만 무뚝뚝한 어른의 표상답게 어린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던 것이지요.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할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별거 아닌 존재고, 그다지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도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을 어린아이는 무엇으로 달래야 했을까요? 요란법석 떨 수밖에요.

지금의 나는 텅 빈속을 채울 방법들을 제법 여러 가지 터득했습니다. 

그 수단은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물질일 수도, 비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방법들을 활용한다고 하여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고요하게 혼자 있어도 그리 슬프지는 않을 정도입니다. 

10살의 나는 지금의 내게 손 내밀 수 없습니다. 내민다 할지라도 지금의 나는 그 모습에 마음이 파래질 것 같습니다.

무지 속 불행이 더 슬픈 것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역으로 내가 그 아이에게 손 내민다면 그것은 위로와 위안이 될까요. 

지금의 나는 정말 채워지고 있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환상 속을 걷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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