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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Feb 18. 2024

하고 싶은 게 뭐예요?

곱하기

나른한 주말이 찾아왔다. 미세먼지가 뒤덮인 서울은 엊그제 비가 와서 오랜만에 맑은 날이었다. 겨울이 지나가고 햇살도 따뜻하니 봄이 찾아오고 있나 보다. 눈을 비비며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엄마는 분주하게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고 계셨다. 평소 끼니를 잘 챙겨주지 못하는 마음에 주말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시다.


최근 마음이 무뎌져서 싱숭생숭하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무뎌진다는 건 의욕이 사라지고 감정이 시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길가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도 갈색의 잎이 사라지고 초록의 잎으로 덮여가도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개어도 그냥 그냥 그런 마음이라는 거, 꽤나 슬픈 일 아닐까. 앞으로만 나아가던 엄마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아파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일시정지가 아닌 멈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슬럼프가 온 걸까 갱년기가 다시 찾아온 걸까.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신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 하고 싶은 게 없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

“ 하고 싶은 게 없다니, 너무 팍팍한 인생 아니야? “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고민은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는 소리로 들렸다. 자식 키우고 먹고살기 바빠서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만 하다가 의욕이 사라져 버린 걸까. 인생의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게 아닌가. 이슬 먹은 꽃잎들이 반들거리는 것처럼 마음은 아직 젊다는 거니까. 사실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무언갈 시작하기가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라고, 시기가 지나버리면 의미가 없는 것들 투성이기에.


의무적으로 무언갈 하기보단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버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앞만 보고 나아가면 언젠가 지친다. 해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나 스스로를 뒤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편하게, 나른한 주말 아침처럼 은은하게 나아가길.


언젠가는 소녀였던, 여전히 마음만은 소녀인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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