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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세 Apr 16. 2023

칼퇴를 갈망하는 자

그 누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칼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아마 있을 것이다. 당장 해결해야할 내 일이 차고 넘쳐흐르는데 회사에서 강제로 PC를 꺼버리면, 조금 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강제 퇴근에 대한 책임을 회사가 다 진다고 하면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한 제도가 될 것이고 말이다.


위의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감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칼퇴를 원한다 말하고 싶다. 칼퇴를 원한다기보다는 칼퇴를 하고 다음날 정상 출근을 해도 문제없을 만큼의 업무량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 같은 경우, 칼퇴가 가능할 것 같다는 기대와 확신을 안고 출근하면, 그 기대와 확신을 당연하다는 듯이 깨부수는 상황이 무척이나 많다. 연달은 퇴직자로 인해 해당 업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그것을 커버해 줄 중간 관리자가 없기 때문이다.


저번 금요일도 그런 날이었다.


여유롭게 월요일쯤 중간보고 드려야지 했던 일을 갑자기 월요일에 본 회의에 보고되어야 하니 주말 내로 끝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무려 "주말에" 이것저것 귀찮은 데이터를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오전 일찍부터 알았더라면 칼퇴도 가능한 상황이었다만,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것은 정확히 금요일 오후 5시였다.


왜 항상 이 모든 급박한 일들은 오후 5시부터 생기는 것일까. 게다가 금요일은 오래간만에 남자친구를 만나는 날이었고, 남자친구는 칼퇴가 정말 어려운 직종에 있는 와중 간만에 칼퇴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심정은 참담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서브로 들어가는 일이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였고, 동기로 들어온 다른 직원이 메인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도움도 못 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그나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오후 5시에 받은 셈이다. (이 동료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풀도록 하겠다.) 그래도 최대한 6시 전으로라도 일을 끝마쳐 보려 했지만, 턱도 없었고 시간은 6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전화 오는 순간까지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속도로 타이핑을 했고 마우스에 힘을 주고 일한 나머지 손등이 저리기까지 했다. 노가다스러운 일이었지만 같은 포맷에 제각기 다른 결과들을 채워 넣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실수가 나오기 쉬워 더더욱 눈알이 빠지도록 보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가 내 회사 근처에 도착한 7시까지도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초안은 갖추어진 상태라 메인 동료에게 파일을 넘겨주고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으로 퇴근했다. 남자 친구와 술을 마시는 중에도 일이 신경 쓰여 미쳐버릴 것 같았다. 검토를 제대로 하지는 못한 것이 불안했다. 한참 놀고 있는데 남아있던 메인 동료가 11시 30분에 보낸 보고 메일 알림이 떴다. 11시 30분이라니? 더더욱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무거웠다. 나 혼자 책임감 없는 직원이 된 것 같은 상황에 기분이 더욱 비참했다.  


보고 메일에는 내가 정리한 엑셀 파일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실수가 가득했다. 보통은 더블체크를 해주는데, 그 팀원도 보고서를 쓰느라(그리고 어차피 나에게 부탁한 일이라)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라 짐작했다. 나는 이 불편한 마음을 토요일까지 끌고 왔다. 끝맺지 못한 일을 주말까지 가져온 것이다.


결국 집에 다시 돌아와 원격으로 파일을 수정했고 월요일에 파일을 다시 보고 드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신입이지만 중간관리자가 없는 관계로 중요한 일을 떠맡고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저지른 실수가 몇몇 있었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운 주말이었다.


그 기분은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떠날 회사라 생각하니 일을 배우는 것이 벅차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데 동시에 내게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심란하게 만든다. 오늘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실수를 또 했냐며 혼날 수도, 오히려 아무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내일 출근 직전까지도 내 마음은 아주아주 불행할 예정이다.


맘껏 잊으려 하겠지만, 사람 맘이 그리 쉽지가 않다.

에라, 맛있는 거나 먹으며 남은 주말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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