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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세 Apr 26. 2023

잘 먹고 잘 살고 싶은데 열정이 없다.

열정 없는 내가 먹고사는 법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열정이 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건지,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가? 이루고 싶은 확고한 꿈이 있나? 궁금하면서도 내심 부럽다.



열정 넘치게 일을 한다고 확실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어떤 것에 대해 확고한 열정을 갖고 일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열정도 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대로 사는 나를 발견할 때면, 내 미래가 정해진 것 같아 조금 슬프다. 같은 직장 내에 나와는 다른, 열정 넘치는 팀원이 있을 때 이런 생각은 더욱 깊게 파고든다. 


연차가 비슷하든, 한참 높은 직급이든,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일단 내겐 참 신기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멋있다'라고 느끼는 건 사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내게 멋지기 이전에 신기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한 때는 열정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되고 싶은 것도 있었고, 꼭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꼭 해내는 사람이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내 노력과 열정이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처럼 텅 비어있는 상태가 지속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가정을 했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쓸 수 있는 열정의 절대량은 정해져 있고, 그 절대량의 대부분을 과거에 다 써버린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태도와 가치가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모범생 축에 속했고, 무척 뛰어나지는 않아도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꼭 잘 해내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당연스럽게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긍정적인 성장의 기회를 많이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시절로 남아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현재, 어떻게든 잘될 줄로만 알았던 나는 몇 번의 성적하락과 취업실패를 겪었고, 그나마 들어간 곳에서도 사회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일을 그다지 잘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나는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열정이 없어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 핑계라도 댈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열정을 따라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 상, 이런 방식은 아마 내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 딱히 성장이라는 목표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경쟁과 열정을 통한 성장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크긴 하지만 스스로의 가치 기준에 따라 그런 삶을 선택한 것도 맞고 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스스로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열정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내심 부러우면서도, 그렇게 될 자신이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니. 내가 생각해도 모순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생계유지가 불안해지지 않는 선까지만 열정을 발휘하지 않을까. 그 정도의 열정만 있어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열정 없는 스스로를 비관하는 대신, 이 만큼의 열정이라도 발휘하는 내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종종 평생 평범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내 삶에 슬픔을 느끼긴 할 것이다. 열정 있는 태도로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왜 못했지, 하고 괜히 배도 아플 것이다. 하지만, 사주에서는 별 일 없이 평탄하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사주를 좋은 사주라고 평가한다. 대박을 치면 그만큼 바닥도 깊게 찍는 것이라나 뭐라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박과 쪽박을 오가지 않는 평탄한 내 삶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그게 아마 열정 없는 내가 먹고사는 방식이다. 이것도 꽤 멋진 삶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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