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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세 May 16. 2023

팀원 탓 하는 팀장

마무리는 사람 좋은 가스라이팅


오래간만에 돌아온 일기는 우울한 기운을 모조리 끌고 왔다. 


오늘 팀장에게 단단히 깨졌기 때문이다. 



지시 업무에 대한 중간보고를 두 번이나 했다. 보더니 잘한다며 칭찬하더라, 그래서 나는 문제 없는 줄로만 알고 최종 보고를 제출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라며 윽박지르는 말투로 나를 먼저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잘했다며 칭찬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당연히... 이런 것은 알고 일하고 있는 줄 알았다.'며 언제나와 같은 말로 나를 가스라이팅 했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옆 동료도 팀장의 피드백을 듣더니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내가 그 표정을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얼어붙은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고 귀를 쫑긋 세워 무슨 이야기를 하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의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자 긴장이 되었다. 이것은 뭐고 저것은 뭐냐는 팀장의 말에 분명 혼자 할 때는 다 알았던 것들을 흐지부지 늘어놓았다. 내가 결국 팀장의 페이스에 말려버린 것이다. 팀장은 본인이 챙기지 못한 업무를 자연스럽게 내 탓으로 몰아갔다, 은근한 조소와 윽박지름을 내비치면서! 그러자 더욱 긴장이 됐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려 해도, 한쪽 입꼬리만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팀장의 레퍼토리는 간단했다. 뭣도 모르는 신입에게 자기가 감당 안 되는 업무를 대충 던져준다. 던져진 업무를 처리해 여유롭게 가져가면 대강 보고 잘한다고 칭찬한다. 00 씨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다 어쩐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기한이 다가오면, 부랴부랴 그것은 어떻게 되었느냐며 재촉한다. 그 시점이 되면 팀장이 안절부절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다가 때론 컹컹 짖는다. 그런 모습에 덩달아 불안해진 팀원들은 실수를 한다. 그리고 팀장은 그 실수를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 실수를 굉장히 과장하며 본인 이야기는 쏙 뺀 채로 팀원들 즉, 실무자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 탓으로 넘긴다.


실무자들은 고작, 입사 3개월 차다. 






아, 이제야 왜인지 알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이 회사를 왜 과장, 대리, 사원 줄줄이 뛰쳐나갔는지. 왜 중간관리자가 단 한 명도 없는지. 하지만, 그걸 이해하여 내가 후다닥 뛰쳐나간다 한들, 팀장은 결코 잘못을 본인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전 실무자가 제대로 일을 못해 그만두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고는 업무 중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역시 전임자 탓을 할 것이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만둔 자들에 대해 팀장이 항상 말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충실한 부하였던(이라고 말하고 발닦개라고 읽는다.)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얼마나 잘, 열심히 했는지에 대해 논파하며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스라이팅 하고, 그저 그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글쎄, 사실 난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밑밥을 깔면서 은근한 돌려 까기를 시전 한다. 






본인의 투명한 태도에 대해 이해를 하는지 못하는지, 오늘도 일을 던져주고 칼같이 퇴근한 팀장의 빈자리를 보니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팀장의 빈자리를 뒤로한 채 나는 밤늦게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며 야근을 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채용 사이트의 공고를 이리저리 들추어 보았다. 이리저리 정착하지 못하는 신세에, 그리고 남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내 자리, 내 일은 있을까. 힘들어도 꾹 참고 일하는 것이 능사인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어리광일까, 가족과의 문제, 무너진 자존감과 자라나는 열등감, 회사에 대한 환멸과 분노로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서 브런치에 팀장 뒷담을 줄줄이 늘어놓는 나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내일도 팀장 안면을 볼 생각에 치가 떨리는 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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