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이 되어도 어쩔티비를 쓰는 이유
"어쩔티비 저쩔티비 안물티비 안궁티비 뇌절티비 우짤래미 저짤래미 쿠쿠루삥뽕 지금 화 났죠? 개 킹 받죠? 죽이고 싶죠? 어차피 내가 사는 곳 모르죠? 응 못 죽이죠? 어? 또 빡치죠? 아무것도 모르죠? 아무것도 못하죠? 그냥 화났죠? 냬~ 알걨섑니댸~ 아무도 안물안궁? 물어본 사람? 궁금한 사람? 응 근데 어쩔티비죠? 약오르죠? 응 어쩔저쩔~ 안물안궁~" 듣기만 해도 킹 받는 이 밈은 누구나 한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의 시작인 '어쩔티비'는 2021년 하반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밈이다. 초등학생들로부터 시작하여, '어쩔냉장고', '어쩔청소기'와 같은 말들로 우리를 경악케 했다.
초등학생에서 멈출 것 같았던 이 밈은 성인들까지 퍼졌다. SNL 코리아 ‘열일곱이지만 서른입니다’ 편에서 주현영과 신혜선이 어쩔티비 배틀을 붙었던 장면은 장안의 화제였다. 열심히 연마한 '어쩔티비'를 쏟아내는 신혜성의 연기와 딕션에 모두가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쩔 초고속 진공 블렌딩 믹서기'와 같은 끝없는 뇌절로 이어진 이 밈은 점차 공중파까지 등장하며 밈으로써 역할을 다 하고 사그라들었다. 이제 유행이 끝난 것 같은 이 밈을 왜 이렇게 공들여 서론에 쓰고 있을까? 바로 이 밈이 최근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다시 유행했기 때문이다. 25살인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어쩔티비가 없으면 말도 못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밈이 우리들 사이에 다시 등장한 것은 이번해 4월 중순부터다. 내 친구 A가 언젠가부터 이 말투를 쓴 것이 시작이었다. A는 자꾸 말 끝마다 '~티비'를 붙이며 우리에게 이 말투를 전파했다. 예를 들어, 카톡을 하던 중간에 '미안티비~' 라던지, '아숩티비... '라던지, 모든 단어에 ~티비를 붙이는 것이다. A와 나는 학교에서 내내 붙어 다녔기에, 이 말투는 자연스레 나에게까지 스며들었다. 이젠 말이든, 카톡이든, ' ~티비' 없으면 대화가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배곱티비, 졸립티비, 부럽티비, 몰라티비, 슬퍼티비, 대박티비... 티비의 종류도 다양했다. 거의 모든 말의 어미에 티비를 붙이는 정도였다.
우리끼리 '이제 진짜 이런 말 쓰지 말자!'라고 서로 약속한 적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밖에서 육성으로 쓰다가 다른 사람과 몇 번 눈을 마주친 경험을 하고 나서 이런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다짐도 잠시, 어김없이 30분 만에 몰라티비~ 하며 거리를 걷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집에서도 이 말을 하도 쓰니, 친언니에게 티비 금지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하루동안 온종일 함께 하니, 언니도 결국 티비 말투에 중독되었다.)
술을 마시던 어느 날, 우리는 진지하게 왜 이 말투를 쓰는지 고민해 보았다. 우리끼리 내린 결론은, 각박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일상을 지탱해 주는 우리만의 재미라는 결론을 내렸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만의 현실도피 방법이다. 현재 둘 다 4학년 1학기, 곧 본격 취준을 해야 하는 막학기를 앞두고 있다. 일상은 매번 똑같다. 수업을 듣고, 돈을 아끼기 위해 학식을 먹고, 밀린 과제를 하고, 알바를 한다. 별거 아닌 일상처럼 보이겠지만, 여기다 더해진 것은 취준에 대한 압박감이다. 새내기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물가 상승과 경제적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자 새내기 때와 똑같던 대학생활도 2배로 힘들게 느껴졌다. 이런 우리에게 ~티비 라는 장난은 초등학생들처럼 마냥 해맑게 놀고 싶은 우리의 심리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이상한 말투를 쓰는 서로를 보며 깔깔 웃고, 왜 저러냐며 장난치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건 아닐까.
이러한 현실 도피의 양상은 일상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재수 때 수능 전날, 나는 생전에 보지도 않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찾아서 보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미지인 사건들만 골라서 보았다. 그때 당시엔 나도 이유를 몰랐다. 이상하게 수능 전날엔 그런 게 막 보고 싶었다. 수능이 끝나고 함께 재수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똑같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는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둘 다 수능과는 아예 관련도 없고, 심지어 지금 내 현실과도 아예 상관없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람들은 현실이 힘들 때 저마다의 현실 도피용 방법을 찾는다. 나의 또 다른 방법은 봤던 드라마를 돌려본다는 것이다. 두세 번이 아닌 대여섯 번을 본 드라마를 다시 돌려본다. 최신 드라마도 아니다. 2012년에 나온 ‘로맨스가 필요해 2’, 2014년에 나온 ‘연애의 발견’, 그나마 최신이 2019년에 나온 ‘멜로가 체질’이다. 여자 주인공이 대사를 치면, 남자 주인공의 다음 대사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지만, 드라마들을 다시 돌려보면 그 사람들과 또 다른 세계와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또 다른 나의 친구는 짱구를 본다고 한다. 짱구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몽글몽글한 기분도 느낄 수 있고, 애니메이션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최근에 자주 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행동에 '현실도피'보다는 '현실지탱'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진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이러한 현실 속 나를 잘 지탱하여 잘 살기 위해서니까. 이런 생각까지 이르니 '~티비' 라는 말투도 그냥 쓰기로 했다. 남들은 왜 저러냐고 할지도 모르고, 네가 어린애냐고 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끼리 즐겁고 버거운 일상을 버틸 수 있다면 뭐 어떠랴 싶다. 사람마다 현실을 지탱해 주는 힘은 다르다. 누군가는 운동이 될 수도, 누군가는 CSI 드라마를 볼지도 모르지만 각자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화이팅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