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화해를 기다리는 법

싸우는 두 친구 사이에서 현명해진다면

by 해구
기다림을 위한 의식 '큰 숨 인간'

최근에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친구 N이 기초 애니메이팅 강의를 해줬다. 기초를 다지면서 혼자 작업한 큰 숨 인간. 완성형은 아니지만, 글의 맥락과 어울린다. 친구들의 싸움을 생각하면 갑갑하다. 하지만 갑갑한 상황에서는 한숨을 쉬지 않으려고 한다. 한숨을 쉬면 진짜 힘이 쭉 빠져버리니까. 그 싸움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장기전이다.'음 싸움이 시작됐군. 이제 시작이야. 잘 버텨보자고'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 은은한 기다림을 위해 심호흡이라고 생각하고 어깨를 크게 올렸다가 내리면서 숨을 들이 내쉰다. 다들 '그건 한숨이랑 다를 거 없지 않아?'라고 하지만, 아니. 전혀 다르다!






누구나 싸울 수 있다.

어떤 평화주의자라도 사람과 살다 보면 싸우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부터 "싸우면 안 돼!" "사이좋게 지내렴!" 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커서 그런지 '싸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친구사이의 싸움은 나쁜 게 아니다. 진짜 사이가 좋으려면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 본인은 그 방면으로는 용기가 조금 부족해서 노하우를 알려줄 파이터를 찾고 있다. 다행히도(?) 내 친구들은 그 용기가 충만한 사람들인지라 그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지 않고 부드러운 완충재가 되는 방법을 터득했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한 명도 놓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이들을 오래도록 옆에 두고 싶으므로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기술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이라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은 화해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언제가 쓰게 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당사자들의 의지이기 때문에 화해를 '시킬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지 않기 위한 조금 은밀한 방법이다.




1. 싸움의 원인을 파악한다- 문제에 답이 있다.

자 싸움이 일어났다. 그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교통정리와 같은 것이다. 왜 싸우는 건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학생 때 지겹게 듣지 않았는가. 모든 답은 문제에 나와있다고. 수능을 두 번이나 쳐보니, 그게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친구들의 싸움에는 적당히 들어맞는 말이다. 원인을 알아야 한다.


분리하기

그렇다면 원인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에이 그런 건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 싶은가?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반드시 당사자인 두 사람을 분리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가능하면 직접 만나서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을 테다. 물론 전화도 훌륭한 선택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중립 유지하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면 안 된다. 당신은 두 친구를 안고 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는 명확함 따위는 도움이 안 된다. 당신의 위치는 네가 잘했네, 얘가 잘못했네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스스로가 제삼자임을 명확히 하고 들어가야 한다. 당신은 그저 그들을 아끼는 제삼자다.







2. 공감과 이해로 마음을 녹인다- 표현에 주의할 것

두 사람을 분리하고, 사건의 정황과 원인을 알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다양한 선택지가 있겠지만, 범법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 반인륜적인 행위들이라면 공권력의 힘을 빌리자.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빠지도록 하자. 하지만 그 외의 문제라면, 두 사람이 사랑해 마지않는 친구라는 점에서 답은 나와있다. 공감하고 이해해 줘야 한다.



공감, 이해, 달래주기

공감과 이해라는 단어가 본능적으로 민망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말로 이루어진 싸움을 다루고 있지만, 몸싸움이든 말싸움이든 파이터들은 상처 입는다. 두 사람을 상처받은 채로 내버려 두지 말자. 어떤 부분이든 잘 듣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 정리하기

당신도 사람인데, 팔이 한없이 안쪽으로 굽을 수 도 있고 한 사람 편을 들고 싶을 수 있다. 혹은 사건의 원인제공자가 있다거나 명백한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당신의 생각은 중요하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 내에서, 당신의 생각을 명확히 정리하자.대충 이런 결의 생각이다.


'음, 확실히 S가 말이 심했네.'

'원인 제공은 M이 한 거 같은데, 말은 S가 더 심하게 했네. M이 먼저 사과하는 게 나으려나.




표현, 전달에 주의하기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단계는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다. 이 과정은 당신 혼자! 속으로만! 일기장에서만! 해야 한다. 전혀 접점 없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는 것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당사자인 두 친구가 당신의 생각을 알게 해선 안된다. 왜냐고? 그들은 아직 감정적인 상태라서 당신의 생각을 들어도 감정만 더 격해질 확률이 높다. 만약 정리한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상처가 덧나지 않게 신경 쓰자.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차가운 뇌로 정리된 정답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3. 기다린다 - 밀고 당기기의 미학

이 글의 제목은 [친구들의 화해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기다리는 방법에 대한 글이다. 장기전인 싸움에서의 기다림이다. 어, 기다리는데 방법이 어디 있어. 그냥 기다리는 거지. 싶지만 이게 참 쉽지 않다. 세상에는 친구일을 제 일처럼 여기는 앙큼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하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오지랖이지만, 그런 앙큼한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이 꽤 유용하다. 격한 감정은 생각보다 매력 없고 효용성이 떨어진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꽤 있다. 또한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좋은 약이다. 운이 좋으면, 친구들의 관계를 수월하게 개선할만한 타이밍이 올 수도 있다.




앙큼하게 믿음을 줘라

삼총사가 싸웠을 때 한 명이 낙오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되어버리는 건 누군가가 나쁘거나 못나서 그런 게 아니다. 보통 한 명이 불안해서 도망치게 된다. 놓아버린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건 슬픈 일이다. 당신은 할 수 있다. 반드시 친구 모두에게 말해주자.

"너희들이 싸운 건 슬픈 일이지만 이건 해결될 수 있는 일이고, 해결되거나 화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와 나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너랑 나는 아무 일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이건 꽤나 앙큼한 전법인데, 이렇게 말한다면 친구들은 불안을 덜어 낼 수 있다. 게다가 혹시 다시 한번 싸울 때 내 생각이 나서 덜 싸우게 된다. 운 좋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번외) 타이밍을 낚아채자

기다리라더니, 낚아채라니 이게 무슨 말이요. 싶지만, 사실 필자는 기다리는 걸 엄청 싫어한다. 하하. 그래서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타이밍을 만들고 있다. 장기전의 경우에는 몇 개월 뒤에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나의 경우 높은 확률로 당사자들이 물어왔다.


'S랑은 연락해?'

'M은 어떻게 지내?'


아니면 먼저 미끼를 던지는 것도 괜찮다.


"나 어제 S 만났어. 잘 지내던데?"

"여름휴가? 난 M이랑 여행 가기로 했어. 너랑은 어디 가지?"


이렇게 이야기에 서로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면, 자주 생각하게 되고 분노나 짜증 같은 감정이 휘발되고 남은 자리에는 미안함, 후회 같은 것들이 채워진다. 당신은 그때를 낚아채서 말을 전달하는 것이다!


떠보는 것 같은가? 맞다. 떠보는 거다.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다. 나는 둘 중 아무도 놓칠 수 없는 욕심쟁이기 때문에 앙큼한 전법을 쓴다. 친구들도 날 사랑할 테니, 이 정도는 귀엽게 봐줄 거라 믿는다.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2년 넘게 S와 M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니, 적성에는 안 맞지만 나름 잘해나가고 있다.(아마)






친구들의 화해를 2년 넘게 기다리고 있자니, 약간 도사가 된 것 같아서 재미 삼아 정리해봤다. S와 M의 화해를 기다리는 동안 느낀 것은 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얽힌 애정이 없으면 화해고 뭐고 기다릴 것도 없다. 특히 이런 장기전의 싸움은 좀 더 진득한 애정 사이에 껴있는 자잘한 섭섭함들이 얽혀있다. 이런 경우의 화해는 매우 섬세한 과정이다. 나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만큼 이 섬세한 화해의 과정에 함께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우리의 칠순잔치에 놀림거리 안주가 될 테니, 즐거운 노후 준비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S와 M은 사랑스럽게도 나와 만날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의 근황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된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연락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이다지도 아날로그적인 소통수단이 있나 싶지만, 참 깜찍하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의 애정을 바탕으로 이어나가는 싸움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누가 먼저 사과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흥미롭게 화해를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달까.


당연히 둘의 싸움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다, 둘 다 진심이고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화해에는 명확한 교통정리와 사과와 수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의 날들이 편안하게 즐거울 것이다. 사실 나로서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화해했으면 싶긴 하지만... 애초에 승자가 있나? 하하. 다만 너무 늦게 화해해서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조금 곤란하지만, 화해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기대한다. 영광스러운 그날에 몇 년간 가장 고생한 나를 위한 파티를 열 테다!








이 글은 실제 필자 J와 친구 M과 S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 내가 이만큼 기다리다 이런 글도 썼어. 엄청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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