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가영 Dec 01. 2022

떠나고픈 그대에게

고민은 덜고 용기는 더하는 주문을 걸어요.

 나에게 여행은 사치품이다. 여행을 떠나는 생각만 해도 괜스레 마음이 들떠 씀씀이가 헤퍼진다. 물론 나도 여행의 환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뉴욕 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앤 해서웨이가 어찌 그리 멋있는지. 바쁘고 구박받는 신입 사원일지라도 뉴욕의 거리를 걷는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하지만 하늘길을 지나는 값, 따듯한 밤을 보내는 값, 맛과 멋을 즐길 값을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을 접게 되었다. 그때마다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다.


    "여행이 과연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너무나 좋아하기에 상대적으로 여행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있었지만, 떳떳한 명분이 있지 않고서는 여행에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 고이 접어두었던 여행에 대한 갈망이 오늘 다시금 떠올랐다. 


 오늘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간 친구와 오랜만에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 할 말이 많았다. 재미있게 대화를 하는데 중간중간 친구가 마시는 음료가 무슨 맛일지 궁금해졌다. 친구는 아이스티에 가까운 맛인데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라 했다. 친구가 있는 네덜란드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가 대부분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그 말에 나는 다시 여행을 갈망하게 되었다. 내가 자란 곳과는 다른 아주 소소한 차이들이 궁금했다. 


 어느덧 나는 여행을 갈 구실을 찾고 있었다. '외국어 공부할 겸...', '휴학 곧 끝나니까...', '여행은 젊을 때 많이 가는 게 좋다던데...', '다들 가던데'. 그중 어떤 것도 썩 마음에 드는 핑계가 아니었다. 다시금 포기하려 마음을 접을 때 이 영화가 생각났다. 


 <카모메 식당>. 핀란드로 떠나 일본 음식점을 차린 일본인의 이야기다.


<카모메 식당>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줄거리 :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 이곳은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경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이다.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 달째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음식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언제쯤 손님이 찾아올까?

 일본 만화 마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 대뜸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가 하면,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이곳까지 왔다는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가 나타나는 등 하나둘씩 늘어가는 손님들로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더해간다. 사치에의 맛깔스러운 음식과 함께 식당을 둘러싼 사연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는데….


 일본에서 핀란드로 가려면 2번을 경유하여 약 30시간 정도 비행해야 한다. 값은 편도로 120만 원 이상이다. 일본인 핀란드에서 일본 가정식 전문 음식점을 한다니. 굉장한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사치에(주인공)는 별 이유가 없다. 아니,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이유를 해명하기를 거부한다. 어느 날 사치에에게 왜 핀란드였는지 묻지만, 그녀는 "판란드도 일본도 다 연어를 좋아하니까!"라는 황당한 변명을 내놓을 뿐,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솔직하고 거짓 없는 사치에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태도는 주인공이 핀란드로 오게 된 사정을 감추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사정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연, '미도리'도 역시 핀란드로 오게 된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떠나려 결심했고, 눈을 감은 채 지구본을 손가락으로 찍은 결과 핀란드를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여행은 단지 과정일 뿐이다. 여행이 꼭 성과에 대한 보상일 필요도 없고, 성과 그 자체일 필요도 없다. 그들이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솔직했고, 대담했다. 그 대담함이 나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일본이든, 네덜란드든, 핀란드든. 

 극의 중반에 사치에는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주문을 배운다. 바로, 커피를 내리기 전 원두에 손을 대고 진심으로 '맛있어져라!'하고 외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주문을 건 커피를 마신 손님들은 커피가 맛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오늘 나도 주문을 외치고 싶다. 떠나고픈 모든 이들에게, '발걸음아 가벼워져라!'하고 말이다. 다소 환상적인 연출로 진행되는 영화라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재미가 없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 또한 과정일 뿐. 부담 없이 본다면 인생에서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영화라 자신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께 오늘 <카모메 식당>을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