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반드시 온다.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본 글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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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런닝을 입고 배가 불뚝 나온 우리 아빠. 그 마음속엔 항상 낭만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곧잘 영화를 보곤 했다. 영화관보다 집에서 볼 때가 더 많았다. 아빠는 우리가 함께 볼 영화를 골라 usb에 담곤 TV에 연결했다. 어두운 거실에서 화면의 밝은 빛이 깜빡이며 거실을 밝혔다. 그러면 나는 푹 빠져 영화를 보다가 그 밝은 빛에 의지해 가족들의 얼굴을 슬쩍슬쩍 확인했다. 언니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엄마는 자주 졸려했지만, 아빠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집중하여 영화를 보았다. 그 모습이 나는 낯설었고, 좋았다.
지난주에 김장철이기도 하고 엄마의 생신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일요일 아침 엄마는 교회를 가고 아빠랑 둘이 TV를 보는데, 영화 <쇼생크 탈출>이 하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던 아빠는 그곳에 멈췄고, 내가 한 번도 <쇼생크 탈출>을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약간) 다그치며 영화를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
<쇼생크 탈출> (1995)
감독 : 프랭크 다라본트
줄거리 :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팀 로빈스 分)’는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강력범들이 수감된 이곳에서 재소자들은 짐승 취급당하고, 혹여 간수 눈에 잘못 보였다가는 개죽음당하기 십상이다. 처음엔 적응 못하던 ‘앤디’는 교도소 내 모든 물건을 구해주는 ‘레드(모건 프리먼 分)’와 친해지며 교도소 생활에 적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장의 세금 면제를 도와주며 마침내는 소장의 검은돈까지 관리해주게 된다. 덕분에 교도소 내 도서관을 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신참내기 ‘토미(길 벨로우스 分)’로부터 ‘앤디’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지만, 노튼 소장은 ‘앤디’를 독방에 가두고 ‘토미’를 무참히 죽여버리는데...
- 출처 : 네이버 영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거대한 감옥을 탈출할 줄은.
누명을 쓰고 두 번의 종신형을 받은 앤디(주인공)는 19년간 복역했고, 그리곤 탈출했다. 탈옥을 꿈꿔본 적 없는 재소자가 있을까? 다른 이들과 달리 앤디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자유를 향한 희망이 있었고, 벽 밖에 자신의 자유가 있다 믿었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철저히 준비했다.
희망은 다른 시각을 이끌어낸다. 같은 조건, 같은 상황 하에 있더라도 희망이 없으면 주저앉을 뿐이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행동, 도구, 장면의 의도적인 반복으로 희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먼저, 벽에 생채기를 내는 행동이다.
50년을 감옥에서 보내 노인이 된 브룩스는 어느 날 가석방을 받아 출소한다. 그러나 그에게 밖의 세상은 너무나 낯설었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두려움뿐이던 그는 결국 자신의 방 안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자살을 택한다. 'Brooks was here' 그러나 레드는 달랐다. 그 역시 3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가석방을 받아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앤디로부터 건네받은 희망은 그를 살게 했고, 고통이 아닌 자유를 향해 떠났다. 가장 대조되는 점은 사실 앤디다. 앤디는 방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려다 벽이 생각보다 무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벽을 파내어 탈출구를 만든다. 그에게 희망이 없었다면 벽이 무르건 말건 감히 벽을 파내 탈출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망'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두 번째로, '줄'이다.
브룩스는 줄을 얻어 벽에 걸었고, 그 길에 생을 마감했다. 앤디가 궁지에 몰린 상황, 그는 그의 동료에게 줄을 구했고 동료들은 앤디가 브룩스의 뒤를 따라갈까 걱정한다. 하지만 앤디는 달랐다. 그는 그 줄을 발목에 매달아 탈출의 과정에 두 손이 자유롭도록 했다.
세 번째로, 브룩스와 레드의 마지막 장면이다.
오랜 기간 복역을 한 브룩스와 레드는 갑자기 가석방이 되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다시는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이란 두려움을 느끼고, 자살의 충동을 느낀다. 방에 도착하는 장면, 슈퍼마트에서 물품을 봉지에 담아주는 장면, 방에 앉아 무력감을 느끼는 표정이 매우 흡사하다. 또한 레드는 브룩스처럼 벽에 이름을 새기곤 방을 떠난다. 떠나며 읊는 대사도 같다.
"물론 내가 사라진다고 소란을 피우진 않겠지. 나 같은 늙은 도둑놈 하나쯤이야"
브룩스는 그 길로 삶을 끝냈고, 레드는 새 삶을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든 힘든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와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광명을 찾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 희망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러한 때를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앤디가 음악을 품고 살았듯이 , 그리고 나의 아빠가 평생 영화를 마음에 품고 살았듯이 나는 이야기를 품고 살고자 한다. 언젠가 앤디처럼 자유를 얻어 내 꿈을 이룰 날이 올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자. 내 앞에 벽이 있을지라도.
희망만이 그 벽을 허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