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시한폭탄
뇌동맥류입니다. 소견서 써 드릴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 보세요. 지금이라도 발견한 게 다행입니다. 치료 가능해요.
2021년 8월의 어느 날,
그날은 날이 매우 맑았고, 덥지만 제법 견딜만한 여름이었다.
나는 그렇게 언제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를 뇌동맥류를 마주했다.
어지러움증이 재발했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말이다.
약 보관함을 뒤적였는데 어지러움증 약이 전혀 없었다.
처음 진단받았던 대학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예약을 하려면 1 달반 가량 기다려야 한단다.
고민 끝에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탈 생각으로 방문했다.
얘기를 듣고 진료를 보시던 선생님께서는 간단한 몇 가지 검사를 해보시더니,
"이비인후과적 어지러움이 아닌 것 같아요. MRI 한번 찍어보시면 어떠세요? 소견서 써드릴게요."
라고 말씀하셨다. 2년반쯤전에 찍어본 적이 있다고 했으나, 건강검진한다 생각하고 찍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나는 동네 신경과를 검색하고 있었다.
당일 촬영, 당일 결과들을 수 있는 곳.
그렇게 검색 끝에 선생님의 소견서를 들고 방문한 신경과에서 선생님과 다시 한번 상담을 했다.
나의 병력 히스토리를 찬찬히 들어보시던 선생님께서는 미소 지으며
"별일 없을 것 같은데, 우선 찍어는 봅시다. 그래도 확실히 아는 게 나으니까."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에 나도 미소 지으며 별일 아니겠죠 하고는 검사에 임했다.
검사하는 내내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자율신경계 문제일 거야.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했고. 뭐 다 괜찮겠지.'
그렇게 오전 검사 후, 밖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까지 부리며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갔고, 선생님도 "한번 봅시다." 하며 큰 문제가 없다는 듯 사진을 넘기셨다.
그런데... 갑자기 멈추시며 "엇어... 엇..."을 반복하시던 선생님,
그리고 그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며 선생님을 바라보던 나를 다시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눈동자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여기 사진을 보시면... 뾰족한 무언가가 보이시죠?"
선생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정확한 판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판독 결과는 하루 이틀 걸릴 것 같고요.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히 저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판독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은 판독을 기다려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이 신경 쓰였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과 육아전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확이 이틀째 되던 날 아침,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뇌동맥류입니다. 흔히 꽈리라고 하죠. 병원 내원하셔서 상세하게 설명 들으시고,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소리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재차 확인하는 내 목소리는 사시나무 흔들리듯 떨려왔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갑자기 아이들이 달려와서 나를 붙들고는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라며 울기 시작했고,
전화기 너머의 간호사는 치료 가능하다며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너무 무서웠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도 모르게 목놓아 울었고,
영문도 모르던 아이들은 "엄마 미안해. 엄마 울지 마." 라며 함께 울었다.
내가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뇌동맥류와의 만남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