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마루에 앉아 어머니의 키질을 구경하는 것이 나의 소소한 놀이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햇볕에 바짝 말린 콩을 커다란 키에 담아 위아래로 잽싸게 흔드셨다. 콩은 키의 한쪽으로 차르르 모이고, 그 사이 섞여 있던 돌멩이들은 '탁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어린 나는 그 돌멩이들이 괜히 미워서 "엄마, 저 돌 좀 봐! 콩보다 더 많아 보여!" 하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돌을 골라낸 콩 무더기를 가리키셨다.
"이것 봐라. 그래도 돌보다는 콩이 많지 않니? 살림하는 재미가 뭐겠니. 돌을 골라내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잘 골라낸 이 콩으로 밥 짓고 떡 해 먹을 기쁨은 오래가는 거란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 깊숙이 박혔다. '그래, 맞다! 돌멩이에 집중하면 세상은 온통 거칠고 불순한 것들뿐인 것 같지만, 콩에 시선을 맞추면 세상은 풍요롭고 얻을 것이 가득한 곳이 되는구나.' 그날의 깨달음은 단순한 살림의 지혜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긍정의 시각'이 되었다.
긍정의 시각은 곧 에너지다. 부정은 에너지를 소모시키지만, 긍정은 에너지를 생성한다. 키질하는 어머니의 손이 콩을 향해 움직이듯, 나의 시선이 좋은 것에 머물 때 비로소 나는 움직일 힘을 얻는다.
나무를 보라. 나무는 오로지 한 곳에서 모진 비바람과 태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란다. 옆에 아무리 비옥한 땅, 햇살이 잘 드는 명당이 있다 한들, 나무는 스스로 한 치도 옮겨 갈 수 없다. 나무에게 이동의 자유란 없다. 그들의 성장은 오직 '견디는 힘'에 의존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생각'이라는 놀라운 기동력이 있다. 우리는 극한의 시련에 처할 수 있다.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바닥이 나무에게는 종말일지 모르나, 인간에게는 새로운 도약대가 된다.
즐겨 쓰는 표현처럼, "바닥을 딛고 일어서면 그 어떤 세상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바닥은 끝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를 수 있는 지지대인 셈이다.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긍정의 힘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정말 행복할 텐데." 모두가 희망을 품고 있지만, 정작 그런 '환상적인 행복'을 꿈꾸는 10명 중 9명은 로또를 사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왜일까?
로또를 사지 않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부정적인 계산기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안 될 거야', '그 많은 확률을 뚫을 리가 없지', '돈 아까워'. 그들은 바닥을 박차고 일어설 생각을 하기 전에, 발을 떼기도 전에 '안 될 이유'에 먼저 굴복하고 만다. 로또는 사지 않더라도, 다른 수많은 기회와 도전 앞에서 이 '안 될 거야'라는 부정의 습관이 그들을 멈춰 세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말이 번뜩 떠오른다. "최고의 대학은 '들이대'라고!" '들이대'라는 말은 무모함이나 막무가내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행동하는 긍정'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보는 것.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결국 나를 성장시킬 것을 믿는 것이다. 로또를 사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든, 짝사랑하는 이에게 용기를 내든, 중요한 것은 '긍정의 생각은 바닥을 딛고 몸을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면, '나는 이제 끝났어'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 바닥은 나를 더 높이 밀어 올릴 수 있는 기회야'라고 생각해 보자. 이 긍정의 힘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한 곳에 뿌리박고 살아야 하는 나무와 달리, 전진하고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축복이다.
콩과 돌멩이를 구별하는 어머니의 지혜처럼, 인생의 키질에서 돌멩이 같은 시련보다는 콩알 같은 기회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바닥을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임을 믿을 때, 우리는 힘껏 '들이댈' 용기를 얻는다. 돌멩이가 섞인 콩도 밥이 되는 세상, 바닥을 치고 일어설 기회가 무궁무진한 세상. 그래서 이 세상은, 정말로 살맛 나는 세상이다. 콩알만 한 긍정의 힘이 우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