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멈춰 섰다. 저만치 인파 속에서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서서 언성을 높이고 있다.
남자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고, 여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무언가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슬퍼지는 풍경이었다. 사랑해서 함께하기로 약속했을 텐데, 지금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느껴졌다.
문득, 비유 하나가 떠올랐다. 남자는 '폴더폰' 같고, 여자는 '스마트폰' 같다는 이야기.
폴더폰처럼 비유되는 남자들은 단순하고 기능이 명확하다. 전화, 문자, 사진, 이 세 가지 핵심 기능 외에는 불필요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한 번 설정되면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 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최초의 고백이 그의 마음속에서는 영원한 진리처럼 굳어져 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가 그들의 기본 설정값이다.
반면, 스마트폰에 비유되는 여자들은 초를 다투며 진화를 거듭한다. 매일 새로운 앱이 깔리고, 소프트웨어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며, 어제의 기능은 오늘의 구식이 된다. 그들은 사랑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 새로운 소통, 새로운 표현을 원한다. 사랑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확인하고 발전시켜야 할 '현재 진행형'이자 '업데이트'인 것이다.
하나는 멈춰있고(정체/부패), 다른 하나는 매일 진화하니(변화/발효),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폴더폰에게 스마트폰의 수많은 기능은 불필요한 소음일 뿐이고, 스마트폰에게 폴더폰의 침묵은 시대에 뒤떨어진 단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랜 세월 부부로 살면서 이토록 간극이 커지는 관계가 가장 슬프다. 나이가 들수록 최고의 친구는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일진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멀어져 간다. 침묵은 단절을 낳고, 단절은 오해를 낳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연결망이 약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단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술이 익고, 장이 익듯, 사랑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되어 깊어져야 한다. 이 익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배우자다.
'배우자'라는 단어의 어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배우고자 해야 한다. 폴더폰은 스마트폰의 섬세한 감정적 연결 방식을 배우고, 스마트폰은 폴더폰의 변치 않는 안정감을 배워야 한다.
서로에게 배우면서, 굳이 같은 시선으로 같은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한 곳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한 곳'은 바로 '우리의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이다.
폴더폰이여, 멈춰 선 과거의 사랑에 안주하지 말고, '사랑 업데이트'를 시도하라. 때로는 귀찮더라도 사소한 감정을 읽어내는 새로운 '감정 앱'을 깔아보라. 아끼는 만큼 몸을 움직여 표현하고, 현재의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 곧 사랑의 발효다.
스마트폰이여,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확인을 요구하기보다, 배우자의 묵묵한 안정감이 주는 깊은 신뢰를 믿어주라. 찰나의 휘발성 메시지가 아닌,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주는 변치 않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곧 사랑의 숙성이다.
서로의 다름을 부패의 원인이 아닌, 발효의 촉매로 사용해야 한다. 폴더폰의 단단함과 스마트폰의 유연함이 만나,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새로운 기종, 즉 '발효된 사랑'을 만들어 내야 한다. 오늘도 행복해야 하니깐. 우리의 행복은 서로에게 배우려는 작은 움직임, 그 '익어 가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