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과 공명하는 '통섭'의 지혜

by 허훈

우리는 흔히 인생을 하나의 길로만 정의하려 애쓴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에 등 떠밀려,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진정한 생명력은 어느 한 곳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만물과 연계되고 공명하는 '경계 없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펴보자. 심신(心身) 중 어느 한 부위에만 반응하며 살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면 몸도 힘들고, 몸이 힘들면 정신이 흐릿해지는 법이다. 손가락 끝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에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우리는 전신으로 반응하고 온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존재다.

예술 또한 그러하다. 음악이 미술이 되고, 무용이 시가 되는 경계를 허무는 순간 진정한 전율이 일어난다. 어느 한 장르만을 고집하며 섭렵하는 것은 색깔 하나로만 무지개를 그리려는 욕심과 같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서 장엄한 건축물을 보고,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뜨거운 열정의 선율을 듣는 것, 그것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확장이 아닐까 싶다.


과학과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수용하는 과학의 영역과 보이지 않는 믿음을 따르는 종교의 영역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진리'라는 하나의 정점을 향해 있다. 어느 한 분야의 과학만을 수용하거나, 어느 한 종파만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편협함은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만물 어느 한 종류만을 친교 하고, 역사 어느 한 업적만을 영위하며, 자연 어느 한 영역만을 연계하겠다는 생각은 이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외면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발효'되지 못하고 '부패'하는 이유는 바로 이 고착화에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꼰대 의식'은 다른 영역과의 연계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 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기꺼이 손잡는 것이지 싶다.

역사는 어느 한 영웅의 업적으로만 흘러온 것이 아니며, 자연은 어느 한 숲의 생명력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며 온갖 시냇물과 합쳐지듯, 우리도 타인과, 자연과, 그리고 서로 다른 학문과 종교와 어우러져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내가 믿는 것, 내가 아는 것, 내가 가진 것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만물과 친교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느 한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것과 연계되어 흐를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좁은 감옥에서 벗어나 우주적인 평온을 얻게 된다.

돋보기를 쓰고 바라본 나의 주름진 얼굴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기쁨을 담아낸 지도처럼 보이듯, 우리의 삶도 모든 영역을 품어 안는 거대한 바다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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