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하다 보면 예고 없이 거친 파도를 만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당혹스러운 파도는 바로 '불쑥 찾아온 질병'이다. 건강을 자신하던 이에게, 혹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진단서는 삶의 궤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같은 병을 얻고도 누군가는 그 질병은 '약'이 되고, 누군가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이 차이는 질병의 경중이 아니라, 그 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관점에서 갈라진다.
질병을 '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병은 곧 '고통' 그 자체가 된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원망과 억울함에 갇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를 표류한다. 병에 잠식된 마음은 신체의 통증보다 더 깊은 독을 퍼뜨리고, 결국 삶의 모든 의지를 무너뜨린다. 그들에게 병은 인생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며,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는 불행의 마침표일 뿐이다.
반면, 질병을 '약'으로 바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병을 고통이 아닌, 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Signal)'로 받아들인다.
"너무 빠르게 달려왔으니 이제 좀 쉬어가라", "네 몸을 돌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만 신경 썼으니 이제는 거울 속의 너를 보라"는 내면의 경고등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에게 질병은 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수정하게 하는 신호등이 된다. 병을 계기로 식단을 바꾸고,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길 위를 걷기 시작하며,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병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건강한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저는 강연장에서 종종 "질병은 독인가, 약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고통 그 자체에는 색깔이 없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입혀질 뿐이다.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희미해지는 노화의 과정조차 '감사한 필터'로 받아들였을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던 것처럼, 불쑥 찾아온 질병 또한 '나를 정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병은 우리에게 강제로 멈춤을 명하지만, 그 멈춤의 시간 동안 우리는 비로소 '발효'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낡은 습관을 비워내고, 독선과 고집을 덜어내며,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 말이다.
구십 한 해를 살아오신 어머님이 병원 침상에 누워 계신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육체는 쇠하고 병들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영혼의 향기는 달라진다. 병을 신호로 받아들여 삶을 정돈한 사람의 얼굴에는 고통 너머의 평온함이 서려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혹은 병이 들었다고 아파하며 원망한다. 질병이라는 불청객이 노크할 때, 그것을 내 삶의 나쁜 물을 비워내고 맑은 물을 채우라는 '웃는 양동이'의 신호로 바꾸면 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질병을 약으로 고쳐 쓸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시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명품 인생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