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의 삶
모든 것에는 장단이 있다. 우리는 그 둘을 가늠하여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는 것에 몸을 기울인다. 가끔은 그 가늠의 저울 바늘이 고장 나 단점 투성이인데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가늠의 저울을 저렇게나 대충 둬도 되나 싶을 때가 생긴다. 일명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가늠이란 단어부터가 참으로 무던한 단어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가늠이란 단어를 '사물을 어림잡아 헤아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어림잡아'이다. 그럼 어림잡다는 또 무엇인가? '대강 짐작으로 헤아려 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가늠은 대강 짐작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맙소사! 대강 짐작이라니!
조금 더 파헤쳐보자. 대강은 또 무엇인가? 대강은 '자세하지 않게 기본적인 부분만 들어 보이는 정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늠에서 대강으로 이어진 이 뭉툭함도 어떨 때는 장점이 되고, 어떨 때는 단점이 된다. 뭉툭함은 날카롭지 않아 베이지 않지만, 날카롭지 않아 베지 못 한다.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 여차하면 그 뒤로 숨어버린다. 일명 핑곗거리가 되는 그 모호한 경계는 어쩌면 몸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다. 그 위장을 위해 알고 보면 그 뭉툭함을 날카로움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스스로 그 방법을 잊어버린다. 뭉툭하게 살다 보니 뭉툭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버린다. 무뎌진 칼로 재료를 썰 듯, 한 번 무언가를 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더 소모되고, 결과물은 깔끔하지 못하다.
늘 날이 선 듯 날카롭지는 못 해도, 그런 날 섬이 필요한 때가 있다. 바로 목표가 있고 성과가 필요할 때다. 슈퍼 P형은 계획이 없는 거지,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이 거대하게 많은 덕에 목표는 쉽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에 만나는 수많은 다른 하고 싶은 거리들에 관심이 흩어지고, 어느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목표는 있지만 계획이 없으니, 목표에 가닿기 힘들다. 그 반복은 사람마다 그 크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왜 이렇지?', '역시 난 안 되나 봐.'같은 무력감은 안겨준다. 어찌 보면 유유자적한, 어찌 보면 안일한,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겠다는 태도는 편하지만 편하지 않다.
이런 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가늠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머릿속으로 대강 그려보고 시작할 것이 아니라, 종이에 머릿속을 옮겨놓고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기록의 시작이다. 뭐든, 머릿속에서 꺼내어 내가 구분할 수 있는 문자로 만들어내야 한다. 나중에 보았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의미를 적어놓아야 한다. 흩어진 가늠을 주섬주섬 모아 조각보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기록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