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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Jun 13. 2023

이런 날엔 에어프라이어를 닦는다.

무엇이든 자주자주

 오늘은 너다. 한 손에는 소주가 희석된 스프레이통, 다른 한 손에는 키친타월과 행주를 잡는다. 정말 얼마나 안 닦았길래 이렇게 더럽지. 


 맞다. 오늘이 그날이다. 마음이 갑갑하고 답답한 날. 이런 날엔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게 가장 최선이다. 

 내 기준에서 주방에 있는 것 중에 가장 청소가 힘든 것이 바로 이 에어프라이어이다. 먹을 때는 맛난 음식으로 뿅 하고 내 놓아주니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 기계인지 모른다. 하지만 음식을 조리 후 관리가 쉽지 않다. 기계가 식으면 닦겠다는 나의 계획은 매번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음에 음식을 할 때 잊어버린 게 생각이 난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좋지만 음식의 냄새가 집 안에 퍼지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에어프라이어를 주방 베란다 쪽으로 내놓았기 때문에 더욱 안 좋은 나의 기억력은 청소를 늘 잊기 십상이다.


 마음이 답답한 날엔 에어프라이어의 찌든 기름때를 닦아낸다. 기름기는 여기저기 튀어서 굳어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좀 더 강력한 세제를 가져와 좀 더 강한 수세미에 묻혀 박박 닦아낸다. 팔이 빠지도록 여러 번 문지르면 겨우 기름때가 조금씩 지워진다. 하지만 아직 성에 찰 만큼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눔의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처럼 생겨 먹어서 네모난 입구로 팔을 넣어 요리조리 닦아내지만 영 개운치 않게 닦인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기계를 옆으로 돌리고 뒤로 뒤집고 하면서 여기저기 닦아낸다. 

 

 이걸 닦고 있자니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첫째는 무거운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좋아진다. 열심히 닦다 보면 반짝반짝 해지는 스뎅 부분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일 때는 몸을 써야 마음까지도 풀어지나 보다. 잠시나마 그 무거운 마음을 놓고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 무거웠던 마음의 부분 부분이 솜사탕처럼 아주 얇게나마 날아간다. 


 하지만 이내 두 번째 마음이 생겨난다. 그동안 쌓여서 잘 닦여지지 않는 기름때를 보니 진작에 자주자주 청소할걸 하는 마음에 답답하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의 문제 같다. 켜켜이 쌓여있던 나의 문제도 왜 진작 조금씩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자주 조금씩 들여다보았다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이 이렇게 무겁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왜 나란 인간은 미리 생각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 느껴봐야만 후회를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에어프라이어를 박박 닦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가벼웠다 한다.

그래도 닦고 나니 기분은 좀 괜찮아졌네.

당분간 에어프라이어 청소는 안 해도 되겠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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