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언제나 들어도 설렌다. 낯선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항상 나를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리고 간다.
경기도의 한 수련원이었다. 내일 우리는 에버랜드에 가는 일정 덕분에 모두들 더 들떠 있었고 오늘 밤 우리들은 반 별로 준비한 장기자랑을 하는 프로그램 준비로 분주했다. 나는 친구들과 한 달 전부터 장기자랑을 연습했다. 방과 후에 모여서 각자 외워온 파트를 가르쳐주며 연습하는 것도 모자라 친구의 집에 가서 녹화해 놓은 비디오를 돌려보며 동선을 맞추어 안무를 연습했었다.
나는 6학년 8반, A는 1반이었다. 내가 장기자랑에 참여한 이유는 A 때문이었다. 나는 과감히 센터 자리를 양보하고 제일 오른쪽 자리를 선점했다. 내 머릿속으로 수학여행 때 강당에 모이면 1반이 오른쪽에 앉을 것 같다는 구상이었다. 만약 반대로 1반이 왼쪽에 앉으면 완전 낭패였지만 나는 확률에 사활을 걸었다. 역시나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무대에 서자 가슴이 쿵쾅거리며 앞이 하얘졌다. 하지만 선명한 건 반장이라 제일 앞에 앉아있는 A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만은 그 아이만이 내 관객이었고 그 공간은 우리 둘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무대를 어떻게 하고 내려왔는지 시간은 순간이 되어 지나갔다. 지금도 그때의 그 기억과 느낌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A를 좋아했다. 나의 짝사랑은 4학년 때부터였다.
그 아이는 반장을 도맡아 했고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었으며 운동도 아주 잘했다. 특히 하얀 얼굴에 한쪽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 내 마음은 콩닥콩닥 날 뛰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A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 집 윗위층에 살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 아이의 집 앞 문고리에 내 마음을 전할 선물을 걸어놓고 오기도 했다. 때로는 비밀 쪽지를 써서 놓기도 했다. A에게는 두 살 많은 누나가 있었는데 혹시라도 선물을 먼저 발견한다면 제발 그 언니가 모른척하면서 전해주길 바랐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그 언니를 만나면 왠지 나를 보고 킥킥대며 웃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A에게 대놓고 마음을 표현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민망함이지만 그때의 나는 짝사랑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나의 정성이 닿았는지 A는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카드와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난 그 날밤 카드와 초콜릿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나에게 초콜릿을 준 사람은 아빠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린이의 나이가 지난 후로 그렇게 설레고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다. 그 후 난 그 초콜릿을 먹지도 않고 책상 서랍 깊이 넣어두고 몇 년이나 보관했었다.
나는 그렇게 다른 아이들보다 사춘기 소녀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모든 게 다 그 아이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아이 생각으로 온종일 행복했다. 그 아이가 공부를 잘하니까 나도 그에 걸맞게 공부를 열심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침에 꽃단장을 한다고 분주했으며 행여 학교 가는 길에 그 아이를 마주칠까 봐 항상 주위를 의식하며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그 아이가 나와 사귀었으면 좋겠지만 진짜 사귀진 않았음 했다. 사귀면 왠지 이 환상이 다 깨져버릴 것 같았고 내 마음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내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짝사랑은 티브이 속 연예인으로 옮겨져 가면서 A에 대한 마음은 점점 옅어져 갔다.